"형."

토르는 뒤를 돌아보았다. 웅장한 대리석 조각 옆에서 슬그머니 나타나는 개구진 얼굴의 로키가 보였다. 로키는 특유의 걸음걸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듯 걸어왔다. 무슨 일이냐, 브라더. 토르가 고개를 갸웃 했다. 구불거리는 금발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스가르드의 해는 미드가르드의 것보다 조금 더 옅은 빛을 띄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토르는 찬란하게 빛나는 미드가르드의 해 마냥 빛나고 있었다. 로키는 빙긋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아홉세계 최고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갑옷. 토르는 늘 그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제 자신이 아스가르드의 다음 왕이란 사실을 자각해서일까, 아님 그저 아스가르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저, 그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것일까-. 로키는 토르의 맞은편에 서서 그를 향하는 햇살을 제 등으로 막아섰다. 저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로키를 보며 토르는 파란 눈을 반짝였다. 로키의 등 뒤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하늘이, 평소의 배는 아름다워 보였다. 로키. 토르는 입을 조그맣게 벌려 그의 이름을 혀 위에 굴렸다. 로키가 천천히 허리를 숙여 토르가 앉은 협탁에 두 손을 짚었다. 달칵, 하고 그릇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젖은 것일까? 토르의 입에 침이 고였다. 차마 삼키지도 못한 채 두 손을 내려 짚어 그를 내려다보는 제 아우를 올려다 보았다. 우아하고 깔끔하게 빗어넘긴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색이지. 토르는 세상의 모든 검은색 중 로키의 머리 빛깔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가볍게 손을 올려 로키의 머리 끝자락을 만지작거리자 로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형은 정말 내 머리카락을 좋아해."
"맞는 말이다. 네 머리카락은 참으로 아름…."
"그리고 정말, 날 좋아해."

그렇지? 로키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토르의 심장을 두들겨왔다. 토르는 굳어버린 제 손을 로키의 머리카락에서 떼지도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녹색 눈이 짙어진다. 로키의 오른손이 다가와 토르의 턱을 부여잡는다. 왜, 모르는 줄 알았어? 부여잡은 턱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며 로키가 하하, 웃었다. 빳빳하게 굳은 제 형을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줄 알았다고 믿었다는 게 더 놀라운데. 로키는 빙글빙글 웃으며 거리를 좁혔다. 토르가 움찔거리는 것이 손으로 느껴졌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로키는 제 머리카락을 만지던 그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 잡았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토르의 것을 희롱하다 손가락 사이에 제 것을 넣어 손을 꽉 그러쥐었다. 그의 금빛 속눈썹이 떨릴 때 마다 깍지 낀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형.
로키가 자그맣게 그를 불렀다. 고개를 쳐든 상태에서 눈만 내리깔고 있던 토르가 제 파란 눈을 다시 내보였다. 로키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형이랑 키스하고 싶어. 로키의 말에 토르의 눅눅하게 젖은 눈이 흔들렸다. 

"나는 형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형은 날 어떻게 좋아하는 지 모르겠어."
"……."
"그래서 말인데, 키스를 해 보면 형도 알 것 같아서 말이야. 날 향한 마음이 어떤 건지."

로키의 말은 머리를 빠르게 뚫고 지나갔다. 내가, 널? 마음, 키스? 토르의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로키가 다시 한번 부추겼다. 응? 그게 제일 확실할 것 같지 않아? 낮게 속삭이는 로키의 목소리는 선악과를 먹으라 이브를 달콤하게 유혹하던 뱀과 같은 것이었다. 로키의 목소리가 저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아 잡 생각을 떨쳐내자 로키가 깍지 낀 손을 돌려 토르의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대었다.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손등에 감겨오는 뜨거운 숨. 토르는 고장난 기계처럼 삐걱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야. 로키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로키의 숨결이 코끝으로 느껴졌다. 숨결마저 손이 되어 저를 어루어 만지는 듯한 기분에 토르가 파르르 눈꺼풀을 닫았다. 

로키의 향이 나는 숨결은 토르의 코끝과 입술을 간질였다. 눈꺼풀을 닫고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기다리던 토르는 뒤이은 접촉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꼭 감았던 눈의 힘을 스르르 풀곤 눈을 떴다. 그의 눈 앞에 들어온 로키는 애증과 소유욕, 집착이 뒤섞인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로키를 부르려는 찰나, 로키의 조금 말랐다 싶은 입술이 토르의 것을 덮어왔다. 밀려들어오는 뜨뜻한 근육과 로키의 맛에 토르는 당황할 새도 없이 입을 열어 받아들였다. 토르의 턱을 부여잡은 손은 슬그머니 움직여 그의 뒷목을 끌어 안았고 덕분에 더 깊게 침투한 로키가 진득한 눈을 뜬 채로 토르를 잡아먹을듯 내려다 보았다. 토르는 크게 뜬 눈을 다시 반쯤, 그리고 더 많이 감았다. 눈을 감자 모든 집중이 다른 감각으로 향했다. 저를 붙잡고 들어오는 로키의 체온과 혀, 코끝에서 떠나지 않는 로키의 향과 아스가르드의 냄새, 민망하다 싶은 질척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가운데 입 안에서 진한 로키의 맛이 났다. 

'키스가, 싫지 않다….'

토르는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제가 동생을 아낀다 생각한 것은 다 거짓 이었던 건가. 자신은, 동생을, 사랑하고 있던 것이었나. 눈을 감은 채 온 몸으로 로키를 느꼈다. 로키는 그에게 있어 더 이상, 아껴주고 지켜줘야 할, 가끔은 싸움도 하고 티격태격 거리기도 할 동생이 아니었다. 한 명의 어엿한 남자로 제 안에 들어왔다. 로키가 긴 키스 끝에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어때, 알 것 같아? 낮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로키를 향해 토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대답 안 해 줄거야? 로키가 재차 물어왔으나 토르는 애꿎은 제 허벅지만 쥐어 뜯었다. 

"…그럴 리 없는데."

로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냐면 난 형이 날 사랑하는 걸 알거든. 토르의 눈이 미드가르드의 하늘 빛처럼 푸르게 밝아졌다. 로키가 햇살에서 비켜나고 다시 둘의 앞엔 아스가르드의 풍경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날 위해서 이 아스가르드도, 아홉세계의 왕좌도 포기할 걸 안다고. 로키의 녹색 눈이 반사되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토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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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뭐냐... 호스트가 키스할 때 눈 감으면 기다렸다가 눈 뜨면 GO라는 글 보고 쪄낸 로키토르인데 분위기가 너무다름잼;;;
당황스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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