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흐느적대는 저녁 바다에 한줄기 소란이 날뛰었다. 소리의 중심에는 작은 배가, 그리고 그 배 위에 넘실대는 두 사내의 거친 투닥임이 노을을 휘저었다. 


도플라밍고는 예의 그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들러붙는 루피의 고무 팔을 밀쳐냈다. 루피의 팔은 그의 실을 피하고 피하다 괴상하게 뒤엉켜 결국은 다른 크루들의 짜증까지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제서야 조금 수그러든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 긴 손가락을 두어번 흔들었다. 조종되던 실이 모두 끊어지고 루피가 다시 몸을 추스리기 전, 도플라밍고는 그의 몸을 잡아 질질 끌고 배의 후미로 향했다. 


상디의 담배연기가 높게 올라 흔들렸다. 사랑싸움? 그의 장난스런 말에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위협하는 도플라밍고와 묘한 표정을 짓는 루피. 어깨를 으쓱한 검은 다리의 요리사는 바람에 스며든 담배향만 남겨두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두어군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바닥. 루피는 볼을 통통하게 부풀리고 도플라밍고의 다리 한 쪽을 잡곤 늘어졌다. 도플라밍고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번득이는 선글라스에 얼핏 붉은 리본이 비치고, 무언가에 놀란 듯한 그는 루피를 떼어내고 급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까지 쫓지는 못한 루피가 볼을 긁적이다 그의 코트에서 떨어진 깃털 한 조각을 들곤 터덜터덜 방으로 내려갔다. 오후 7시였다. 


하늘로 도망치다시피 오른 도플라밍고는 얼굴에 한가득 구름 내음을 묻혀 돌아왔다. 하늘섬 같을까? 눈을 빛내는 쵸파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고 자리에 앉은 그는 끈질긴 루피의 시선을 끝끝내 마주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여전히 달라붙어오는 루피의 애정공세를 냉정하게 끊어낸 그가 두번째 신문을 펼쳐들었다. 또 신문 봐? 루피의 투정이 들려왔지만 그는 아침에 읽었던 이 신문을, 다시한번 들여다 보는 것 이 외에 관심을 둘 만한게 없었다. 눈이 검은 점자로 향하고, 그것이 하나의 의미로 저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그리고 그 의미 사이사이에는 루피가 있었다. 


안 돼. 도플라밍고는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루피를 향해 움직이는 손을 저지하고 가까스로 다음 장을 펼쳤다. 저녁이 한참 넘어 도착한 어느 섬에 배를 조용히 댄 그들은 팀을 짜서 생필품을 사러 나섰고, 배를 담당하게 된 루피와 쵸파를 두고 나머지는 각각 배당받은 물건을 사러 마을의 야시장으로 향했다. 


3미터의 키에 시선을 뺏는 분홍색 깃털코트는 누가 봐도 드레스로자의 전 국왕 도플라밍고였기에, 나미의 엄한 명령 아래 코트를 벗어두고 망토를 두른 그는 나미와 조를 짜서 장을 보러다녔다. 야시장의 불빛이 두 사람의 망토를 어지럽혔다. 어둠 아래 또 한 겹의 어둠이 도플라밍고를 감쌌다. 선글라스를 벗지도 않는 그에게 나미가 타박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 어느 옷가게에서 주인과 흥정을 시작한 그녀에게 잠깐 눈을 뗀 도플라밍고는 아무도 모르게 선글라스를 내려 맨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야시장은 육지의 은하수였고, 그는 그 흐름을 버티지 못했다. 몸을 휘청이자 흥정을 하다 말고 나미가 그의 망토자락을 잡아왔다. 괜찮아? 별 거 아니다. 도플라밍고는 짤막한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손이 자꾸 움크러들었다. 코가 씰룩였다. 이윽고 마음은 더 낮은 곳으로 침잠했다. 한계의 물줄기가 말라 있었다. 


"밍고?"


힘들면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나미의 말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다. 도플라밍고는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 하나하나 오롯히 감정이 스며들었다. 어느새 쇼핑을 가장한 협박을 끝낸 나미가 그를 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여전히 멍 한 듯한 그의 모습에 혀를 쯧, 하고 찼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나미의 말에 그는 고개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 애매하다는 것의 우울은 그를 좀먹어 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긴 한숨이 침묵을 감싸고 돌았다. 


"밍고!"


익숙한 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거의 동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눈물겨운 향기가 품에 안겨 들어왔다. 비틀대다 중심을 잡은 그의 턱 아래에 살랑살랑 검은 머리칼이 춤추었다. 야시장의 불빛에 반사되는 조금 거친 머리칼. 도플라밍고의 크고 길다란 손이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만졌다. 제 손 안에, 제 품에 느껴지는 익숙한 모습에 도플라밍고는 잠깐 넋을 잃었다. 나미가 빙긋 웃는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조용하게 얘기하고 바로 따라 와? 짐 많으니까!"

"응!"


루피는 나미를 향해 빙긋 웃어주곤 아직도 벙 쪄 있는 밍고를 데리고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한두 걸음 나가면 번쩍이는 야시장이지만 그 옆의 기묘할 정도로 한적한 어둠. 루피는 그의 앞에서 대뜸 허리에 손을 얹더니, 자! 나를 안아 주도록 해! 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피식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당당한 그의 모습에 도플라밍고는 손을 내저으려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야시장 초롱을 반사하는 검은 눈동자가 저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파장은 울렁거리며 온 몸을 뒤덮었고, 그것은 새카만 소름과 이어졌다. 그는 천천히 거대한 장신을 구부려 루피를 안았다. 아니, 그의 품에 파묻혔다. 


도플라밍고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루피가 간지럽다고 히힛 웃었다. 웃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마흔 너머 아저씨의 얼굴에 옮았다. 제 품에 안긴 도플라밍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루피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왜 자꾸 피한 거야?"


글쎄. 도플라밍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 안에 온전히 들어온 그의 흔적은 도무지 줄이려 해도, 흐리려 해도 말썽이었다. 내 마음 안에서도 난동을 피우는 군, 밀짚모자. 하루종일 빠져있던 퍼즐의 조각이 온전히 들어맞았다. 퍼즐의 완성도는 모르겠으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다. 한참 그의 품에서 무언가를 느끼던 도플라밍고는 몸을 떼어 일어나며 루피의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키스했다. 어둠이 흘낏 눈을 돌렸다. 


"오늘은 숨이 막히니 혼자 잘 거다, 루피."


루피. 입 안에 동그랗게 돌았다. 너의 존재와 의미는 이미 내게 고쳐지지 않을 습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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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대의 버릇과 습관 따위가 나를 점점 옥죄어와요 / 숨이 막히니 오늘 밤은 혼자 잠을 잘래요


쏜애플-백치.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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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우리 배에 지도 어느덧 1주가 지났다. 루피는 그가 있는 방으로 종종 찾아갔다. 쵸파는 방에서 피에 젖은 붕대와 약을 한움큼 안고 나오곤 했다. 드레스로자의 국왕, 도플라밍고. 그가 루피와의 전투를 마치고 패밀리들을 잃고 쓰러진 것을 루피가 들쳐업고 이후였다. 나미와 상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름 뿐 듯한 부선장, 조로 또한 의견에 동의했다. 로빈도 선선히 오케이를 내주었고 우솝은 왕을 태우면 죽는 병이라고, 프랑키는 떨떠름한 표정을, 브룩은 아무말 없이 차를 마셨다. 쵸파는 만셸리에게 도움을 받지못한 도플라밍고를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일주일이 흐르고, 여전히 도플라밍고는 베드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매일 악몽을 꾸는듯 흐느끼는 소리에 나미가 질색을 했지만, 쵸파는 나아가는 와중이라 그렇다며 나미를 안심시켰다. 그가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통째로 갈기갈기 잘라버릴 같은 형색에 조로도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렇듯 아무 없이 수련에 열중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쵸파가 들고나오는 붕대에서 핏자국의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어날 같다는 이야기에 안이 다시 술렁였으나 루피가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다들 말을 삼켰다. 어째서 루피가 저와 목숨을 걸고 싸운 이를 힘들게 업어와서 심지어 모든 악의 근본인 사내를 자기 배에서 치료시키려 하는지. 그것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로빈 만이 미묘한 웃음으로 제일 가까운 추측을 하곤 있었다. 왜냐면, 또한 루피에게 그렇게 구원받았기에

 

그가 깨어난 것을 제일 먼저 목격한 상디였다. 화장실 빼곤 그의 주변을 지키던 쵸파였지만 과로에 졸고  있던 탓에 간식이라도 넣어줄까 싶어 먹을 것을 들고온 상디가 그의 미묘하게 달라진 숨소리를 눈치챘다.  그의 발목에 채워진 해루석 수갑때문에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상디였지만, 약간의 경계는 늦추지 않으며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마실거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마른 입술을 달싹이다 힘없이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상디는 쵸파의 쟁반에서 물컵을 들어 그의 입술에 대어주었다. 꼼짝하지도 않는 그의 모습에 상디는 내밀었던 물컵을 도로 쟁반 위에 올려놓곤 쵸파를 깨웠다. 환자는 의사에게, . 몇번 흔들자 고개를 드는 쵸파는 환자의 상태부터 눈치챘는지 작은 발로 내려와 청진기를 들이밀었다. 손끝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상디가 넌지시,

 

"미음이라도 끓여올까?"

", 양은 아주 적게 해줘. 바로 뭔갈 많이 먹지는 못할거야."

 

루피는 다르지만. 헤헤 웃는 쵸파를 뒤로하고 상디는 도로 부엌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던 로빈에게 녀석이 깨어났다는 말을 전하곤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머. 로빈은 빙그레 웃으며 갑판 위에서 시끌벅적하게 놀고있는 루피와 우솝, 프랑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우솝과 프랑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루피가 주먹을 쥐었다. 내가 볼게. 결연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루피를 보고 조로도, 로빈도, 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뛰어온 나미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루피가 들어가자 그는 몸을 꿈틀거렸다. 아직 움직이면 안돼! 라고 외치는 쵸파의 말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그를 루피가 강제로 눕혔다

 

"쵸파가 아직 움직이지 말래. 쵸파는 유능한 의사니까 말을 들어야해."

 

그는 흐릿하게 사이로 증오를 내비쳤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이 루피를 매섭게 쏘아보다 곧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다시 달싹였으나, 이내 포기하곤 몸에서 힘을 뺀 채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너 이주만에 일어난거야. 종알대는 쵸파의 목소리가 도플라밍고의 귀에 꽂혔다. 그는 눈꺼풀조차 미동하지 않았다. 루피는 도플라밍고의 치료약을 제조하는 쵸파의 옆에 앉아서 발을 까딱이며 눈을 감고 있는 도플라밍고를 내내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느끼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밀짚모자. 너는 어째서 날 살린 것이냐. 마음 속에 꾹꾹 눌러담은 의문이 똘똘 뭉쳐 가슴을 세게 내려치는 기분이 들었다. 저의 몸에는 힘이 없었다. 2주동안 잠을 잤다는 이야기는, 이미 이 배에 태워져서 드레스로자와는 먼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일까. 그는 녀석의 동료들에게 당한 제 패밀리를 떠올렸다. 분노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잡혀버린, 패배한 노예였다. 이제 이 녀석들이 자신을 팔아먹든 이때까지의 복수를 위해 죽여버리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승자가 정의다. 자기가 항상 말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루피와의 싸움에서 승자는, 도플라밍고 그 자신이 아니었다. 


'나는…패배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없었다. 도플라밍고는 혀를 깨물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곧 관두었다. 그는 남을 상처입히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제 몸을 스스로 상처입히는 것에는 굉장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도 아마, 어릴 적 그 사건 이후겠지. 평소때엔 제가 상처를 입힐 리가 없었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것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와버린 상황에 대해 헛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다른 패밀리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후지토라 녀석에게 다 붙들려 임펠다운으로 끌려갔을까. 자신이 없는 돈키호테 패밀리는 더 이상 칠무해로서 남아 있을 수도- 아니, 그 전에 이미 나라를 하나 말아먹은 것에 의해 이미 칠무해의 자리에서는 쫓겨났을 터. 다른 패밀리의 걱정에 잠시 생각이 미쳤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 이후의 걱정이었다. 현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쉽게 확정짓기는 어려웠다. 도플라밍고는 손끝 하나도 까딱일 수 없는 제 몸을 향해 쓴 웃음을 날렸다. 



*



첫날은 미음 한 입, 둘쨋날은 세입, 등 천천히 미음의 양을 늘려가고 물도 입술을 적셔주는 것에서 입 안에 흘려넣어주는 것, 그리고 입에 대 주는 것 정도로 천천히 방법을 바꾸어가며 도플라밍고의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루피는 매일 한두번씩 그의 방을 들락거렸다. 도플라밍고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밝게 웃거나 농담따위를 하며 쵸파와, 혹은 그 외의 멤버들과 시시덕거렸지만 늘 도플라밍고와 눈을 맞출 때면 진지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음식을 먹어도 아직 말 하는 것은 무리라며 말하는 의사 때문에 도플라밍고는 일어난지 1주일이 되어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의외로 착하게 말을 잘 듣는 그의 행동에 쵸파는 꽤나 놀라면서도 안심하고 있었다. 이윽고 저 혼자 팔을 움직이거나 도움을 받아서 가까스로 앉을 수 있게 될때까지 도플라밍고는 아무 내색없이 묵묵히 치료를 따랐다. 이제 어느정도 쵸파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정도로 회복한 도플라밍고는 로빈이 가져다준 신문을 읽거나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등의 것으로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루피는 자주 드나들었다. 귀찮다는 티 조차 내지않는, 아예 있다고 인식조차 하지 않는 듯한 그의 모습에 질린 다른 멤버들과 달리 루피는 여전히 하루에 두어번씩 들러 도플라밍고의 옆에서 가만히-물론 완전한 정지상태가 아니라 고기를 먹거나 코를 파거나 쵸파의 약을 건드리거나 했지만- 앉아 있었다


도플라밍고가 깨어난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쵸파의 의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듯 도플라밍고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조금 지친듯한 눈으로, 때로는 멍한 눈으로 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굳게다문 입술은 소리를 뱉어내지 않았다. 


"말 하기 싫은 게 아닐까?"


쵸파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이미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거부가 아닐까. 그 의견에 조로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안나온다던지 그런 건 아냐?"

"가능성 있네."


우솝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라도 다친 건 아냐? 쵸파는 고개를 저었다. 목에는 문제가 없어.


"아마 계속 말을 못하는 거면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겠네."


로빈이 턱을 괴었다. 그 말에 나미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까부터 내내 듣기만 하고있던 프랑키와 브룩에게 눈을 돌렸지만 둘 다 머리를 긁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 정말이지 무슨 생각인거람, 루피는. 한탄처럼 내뱉는 나미의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루피니까. 누군가가 던진 말이 파문처럼 모두의 사이에 스며들었다. 




*




어느덧 1달이 훌쩍 넘고, 도플라밍고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었다. 몸은 나아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무리를 해선 안되었고, 무엇보다 저번에 루피가 데리고 방을 나갔다가 바다에 빠트릴 뻔한 후로 엄중 간호를 받고있는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침대에 눕거나 앉아있으니 엉덩이와 허벅지등이 짓물렀고 그에 대한 치료도 병행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픈 소리 하나 내지않고 조용한 도플라밍고였다. 짓무른 것이 빨리 낫기엔 몸 상태가 너무 나빴기에 회복은 더뎠고, 쵸파는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그를 방 밖으로 나돌수 있도록 허락했다. 단지 항상 그를 제어할 수 있는 누군가가 붙어있어야 했고, 그 역할은 쵸파-조로-프랑키-상디-로빈-루피 가 되었다. 나미와 우솝은 3미터의 그를 제어하기에 힘들었고, 루피는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드므로 안시키려 하였으나 바득바득 우기는 탓에 억지로 넣어주었다. 그렇게 도플라밍고는, 사우전드 서니 호에 탑승한 지 약 2개월만에 바닷바람을 쐴 수 있었다. 


오랜만에 쐬는 바다향은 낯설고, 정겨우며, 그리고 썼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이지러지고 나서야 제 눈에 눈물이 고였다는 것을 눈치챈 도플라밍고는 키가 큰 것에 감사하며 눈을 깜빡여 눈물을 말려냈다. 2개월간 이 배에서 치료를 받으며, 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 잊었다. 신문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저 눈을 감고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되새기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루피가 제 옆에서 귀찮게 굴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도플라밍고는 그렇게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다시한번 패배를, 이 지독한 쓰림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슴푸레한 빛이 어지러웠다. 


오늘 또한 바람의 향은 달랐다. 어느 곳에서 피냄새를, 어느 곳에서 음식 냄새를 싣고 오는 것일까. 도플라밍고는 쓸데없는 생각을 내달리는 뇌를 가만히 두었다. 오늘 저의 산책 당번은 루피였다. 녀석은 기적적인 회복력으로 약 2주만에 완벽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바보는 회복력도 좋은 건가. 도플라밍고는 제 앞에서 난간에 올라타 발을 까닥이고 있는 루피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이 난간에서 밀어버려도 나쁘지 않을테지. 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마 그라면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 정도로는 바다에 빠지지 않을 터. 도플라밍고는 제 몸을 난간에 기대며 깊게 바다향을 들이마셨다. 


별이 내렸다. 빛을 마저 집어삼킨 바다는 주변을 어둡게 물들이고, 찰싹이는 파도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이제 곧 들어갈 시간인가. 도플라밍고는 멍하니 루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발걸음을 돌릴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난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는데 루피가 난간 위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돌려 그를 향해 섰다. 난간 위에 선 루피의 키는 도플라밍고에게 조금 못 미쳤다. 도플라밍고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뒤의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 그 모든것이 루피에게 스며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어둠의 앞에서 이다지도 빛나는 사람이, 왜 내가 아니라 너인지. 도플라밍고의 눈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한가득 눈물을 고여냈다. 루피는 묵묵히, 평소답지 않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루피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플라밍고는 폐부 한가득 어둠을 들이마셨다. 들이마신 어둠은 호흡을 타고 눈물에 전해지는지, 무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저를 말없이 쳐다보는 루피에게 눈물을 보기는 것이 꼴사납다 여겨, 도플라밍고는 고개를 홱 하니 돌렸다. 


밤과 슬픔과 기억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한번 흘러내린 무거움은 쉴새없이 도플라밍고의 뺨을 적셨다. 눈물이 제 모든 것을 흘려버릴 듯한 두려움에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여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볼을 적시는 뜨끈한 것이 제 몸의 전부인 것 마냥 하염없이 들썩이며 도플라밍고는 소리없이 울었다. 그의 모든 것은 이제 모두 바다로 침잠해 버리는 것일까. 그치지 않는 흐느낌사이로 루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 잡아줄테니까."


피가 나도록 움켜쥔 주먹 위로 온기가 다가왔다. 도플라밍고는 그 온기를 물리치지 못했다. 조금 더운 손길이 제 손 위를 덮었다. 온기가 손을 파고들어 가슴을 붙들었다. 이미 그 곳엔 드레스로자를 지배하던 국왕은, 천룡인의 후손은 없었다. 단지 한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상처투성이인, 그러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불쌍한 사내. 루피의 손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도플라밍고의 눈물을 닦아내었다. 서툰 손길. 그 끝에는 아직 그가 눈치채지 못한 애정이 뚝뚝 흘러 넘쳤다. 


미안. 루피의 말이 차마 입을 나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네 패밀리들 모두 구하지 못해서 미안. 너만 데려와서 미안. 널… 데려와서 미안. 


그를 안아줄 수도, 달래줄 수도 없는 루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제 온기를 나눠주는 것 정도일까. 루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손을 모아 도플라밍고의 조금 차가운 손에 얹었다.


자, 내 온기를 가져가. 내가 너를 안아줄 수 없는 슬픔만큼.





 

 ---

루돞 50제 첫타는 25번으로 끊는다!

25. 손을 잡아주고 싶은데 / 안아주고 싶은데 / 왜 내가 조심스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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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은 바닷빛이 유독 푸르른 날이었다. 상디는 그렇게 기억했다. 물 빛이 푸른 날은 밤 바다가 한층 더 맑았다. 마치 쏟아지는 별빛을 한 컵 가득 담아낼 수 있을 것 처럼. 에이스가 아닌 루피의 다른 형제. 사보에 대한 상디의 첫 인식은 그정도였다. 그 외에 그를 정의할 단어가 상디에겐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알라바스타에서 에이스가 그랬듯 이번 인연도 쉽게 스쳐지나가겠지. 상디는 후추를 갈아내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보았다. 식당이 평소보다 더 살가웠고 힘찼다. 이미 사보를 부여잡고 한바탕 눈물콧물을 쏟아낸 후 조잘거리며 어린 아이마냥 사보를 부여잡고 얘기를 하는 루피와 늘 그렇듯 흥미 없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조로, 코알라라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레이디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솝과 쵸파는 루피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주고 프랑키는 배를 수리하러 나가고 없었다. 


"아, 상디 씨. 차 한잔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아아-."

브룩이 어느새 비어버린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그의 차 사랑은 실로 엄청나서, 배 안에는 늘 찻잎이 대량으로 실려있었다. 나미 씨가 농담으로 배가 가라앉으면 주변이 찻물바다가 될 거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상디는 브룩이 손짓하는 차를 꺼내주며 다시한번 힐끗 루피네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 같은 루피를 마주보고 사랑스럽다는 듯 응응 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보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상디를 향해 방긋 웃었다. 그 순간 시간이 조금 느려진 듯한 착각. 조금은 얼룩진 바닥이 삐걱이며 그의 웃음을 담아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제가 가벼운 에피타이저로 만들던 음식이 꽤나 본격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불판 위에서 벌겋게 달아오르는 새우 몇 마리가 크림 가득한 몸을 제멋대로 선보였다. 젠장. 상디는 혀를 가볍게 한번 차고 메인 요리로 전환시켰다. 찻물을 내린 브룩이 요호호호 웃으며 몸을 돌렸다. 창가에 걸어둔 마른 꽃에서 얇게 마른 붉은 꽃잎이 떨어졌다. 상디는 두어장 남은 꽃잎을 가냘프게 달고있는 꽃다발을, 이제는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디, 라고 했나?"
"…아아. 루피 형씨 아냐."

사보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다구. 그는 짧게 웃으며 상디의 맞은편에 삐딱하게 섰다. 어느새 다른 녀석들은 밖에 나가버린 걸까, 식당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의 손에 마른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상디의 눈이 커졌다. 아까 제가 갈아두려 했던 것. 턱짓으로 그걸 가리키자 그가 눈치챈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장갑 위에서 바스라지는 꽃다발이 아슬아슬해보였다. 

"다 마른 거 같아서 말이야. 내가 새 꽃으로 갈아 끼워도 될까?"
"그래주면 좋지."

상디의 입에 웃음이 잠깐 걸렸다. 사보는 꽃다발을 쥔 손을 살짝 폈다 다시 쥐었다. 손에서 화르륵 하고 불이 치솟았다.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르고 꽃잎을 잃은 추한 꽃다발은 사보의 손에서 한 줌의 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능력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 어색하게 미소짓는 그를 보며 상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 또한 이 나이가 되어 악마의 열매를 먹는다면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보면 에니에스로비의 녀석들, 열매를 먹자마자 싸웠던 거 같은데 꽤나 대단했던 건가. 상디는 잡다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잠시 숙였다 들어올렸다. 사보의 눈이 지긋이 그를 향했다 떨어졌다. 상디가 재료를 손질하는 쪽에 다가가 제 몸을 기울여 그의 하는 양을 구경했다. 정갈하게 잘려진 고기들과 새파랗게 날이 선 칼날, 그리고 손의 상처들. 사보는 저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손에 상처가 많네."
"뭐, 일단 요리사니까 말이야."
"꽤나 멋진 걸."
"감사."

사보의 굽슬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흉터. 상디는 그 흉터에 잠시 눈을 두었다 내렸다. 상디의 구역에 제멋대로 침범한 이 치곤, 그는 꽤나 신사적이었다.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는 이윽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밖에 녀석들한테 가 보지 그래. 상디의 조금 퉁명스러운 말에도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걔네들 이야기는 대충 다 들었으니까 괜찮아. 그러는 그에게 상디는 한숨을 내쉬며 로빈양을 위해 만들어두었던 아이스크림을 내주었다. 로빈양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지만 꽤 담백하니까 그도 좋아할 듯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자마자 꽤 밝은 표정으로 바뀌는 그를 본 상디는 잠깐 웃음을 그렸다. 

"저기, 상디."
"엉."
"에이스… 말이야."

조금 뜸을 들이는 듯 말을 꺼내는 사보. 상디는 그런 그를 힐긋 쳐다보곤 다시 도마로 눈길을 돌렸다. 에이스의 이야기라니. 그 자신이 아는 것은 알라바스타, 그 모래 폭풍의 속에서 만났던. 의외로 상식적이고 쾌활했던 루피의 형. 그 정도였다. 흰수염 배의 대장이던가. 다 피운 담배 끝을 오물거리며 옛 기억을 되살려보는 상디의 귀로 사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썼던 기술이라던지, 혹시 기억해? 상디는 오물거리던 담배를 퉷 하고 뱉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었다. 기술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엄청난 위력이긴 했었다. 거대한 사막 몬스터를 통구이로 만들어버리는 정도였으니까. 

"글쎄, 요리하기 참 좋을 듯한 기술이라고 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과연 요리사 다운 생각인걸?"

사보가 빙긋 웃었다. 그럼 나도 네 요리를 도울 수 있을까? 두 손을 장난스럽게 뻗어보이며 손 끝에서 불을 일으키는 사보를 보고 상디가 고개를 삐딱하게 젖혔다. 불조절을 잘 한다면 말이야. 상디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보의 몸에서 발화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불의 입김에 휩쓸렸고 의도치 않았던 일인 듯 사보의 얼굴에 당혹이 비쳤다. 재빨리 근처에 있던 물 양동이를 들어 사보를 적신 상디는 자기가 부은 물 양동이가 냉동된 생선을 녹이던 얼음물이었다는 사실과 어짜피 능력자인 사보는 아무 피해가 없고 애꿎은 의자만 홀랑 타버렸다는 사실을 늦게 눈치챘다.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땐 이미 사보는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어… 음… 고마워…?"
"…미안."

상디가 멋쩍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손님에게, 그것도 선장의 형이자 혁명군의 2인자라 소문이 무성한 이에게. 일단 옷부터 말려야겠군. 젖은 옷을 하나씩 벗는 사보를 앞에두고 상디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어깨에서 무겁게 떨어지는 코트와 목을 축축하게 감싼 셔츠. 방울방울 물기를 떨어트리는 머리칼. 자신과 같은 금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느낌에 상디는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옷을 벗다말고 상디를 쳐다본 사보는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미안하지만 옷 좀 빌려주겠어? 



밤바다가 거룩했다. 넘실거리는 물결 아래에 존재할 각종 재료들을 상상하며 상디는 낮에 있었던 일을 머리에서 털어내려 애썼다. 담배연기가 뿌옇게 어두운 하늘 위로 스며들었다. 입 안에서 혀로 이리저리 굴리던 연기들은 후우 하는 날숨과 함께 상디의 각종 고민을 싣고 흩어지는 듯 했다. 옅게 흩어진 담배 연기사이로 별똥별이 하나 긴 꼬리를 달고 바다로 잠겼다. 오. 짧은 감탄과 함께 눈을 끔뻑이던 상디는 소원을 빌지 못했다는 걸 인지하고 아쉬운 듯 입을 다셨다. 

"별이 내리는 밤이네."
"…형씨?"

사보라니까. 그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조로의 옷은 도무지 입어줄 만한게 못 되어, 제 셔츠를 건넸더니 저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탓에 허리쪽 단추 두어개만을 겨우 잠근 그는 상디의 반바지를 조금 타이트하게 입곤 약간 껄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묘한 모습에 상디가 픽 하고 웃음을 짓자 따라 웃는 사보의 웃음이 싱그러웠다. 새 담배를 꺼내려 담뱃갑을 열자 자잘한 담뱃가루만 남은 텅 빈 꼴에 담뱃갑을 한 손으로 구겼다. 그런 상디의 앞으로 담배가 내밀어졌다. 형씨…아니, 사보. 흡연자였어? 의왼데? 상디의 동그란 눈에 담긴 사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네 옷이잖아. 주머니에 들어있던데. 가슴 주머니를 툭툭 치는 사보에게서 담뱃갑을 받아든 상디가 두어개비 든 것을 확인하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그의 흰 손가락이 다가왔다. 장갑도 젖어서 벗어버린 것인지. 깨끗할 줄 알았던 흰 손의 군데군데에는 상처와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이 일었다. 어두운 주변을 순식간에 밝히는, 조금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작은 불꽃. 불꽃은 푸석한 담배잎 사이로 스며들어 온기를 나누곤 스르륵 사라졌다. 땡큐. 상디가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사람은 죽으면 말이야, 누군가의 수호신이 된대."

사보가 짤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상디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헤에, 하고 낮은 호응을 해 왔다. 사보의 얼굴에 순간 스친 후회와 아쉬움의 표정을 캐치해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마, 에이스의 이야기겠지. 루피의 형인, 그리고 우리와도 꽤나 인연을 쌓았던 에이스는 2년 전 정상전쟁에서 해군 대장의 손에서 루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루피의 형이라는 에이스. 루피의 형이라는 사보. 아마 셋은 꽤나 끈끈한 유대로 다져진 관계였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보았던 루피의 태도가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했다. 상디는 폐부를 연기와 바닷바람으로 채웠다. 사보의, 조금 마른듯한 입술이 다시 열렸다. 

"에이스는, 아마 루피의 수호신이 됐을거야."

녀석, 아닌 척 루피를 엄청 아꼈었으니. 그의 말에 상디 또한 공감했다. 루피의 주위 모든 인물에게서 위험요소를 훑어내던 그, 속성과 다른 얼음같은 눈동자를 잊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는지 사보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난 네 수호신이 되고싶어."

사보가 밤하늘처럼 웃었다. 그의 웃음에 별무리가 내려앉은 것일까, 상디는 담배를 문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나서야 겨우 한 모금 빨아들일 수 있었다. 쿨럭 하고 사래가 들린 듯 젖은 기침이 나왔다. 기침이 잦아지고 나서야 그는 물을 수 있었다. 대체 왜…? 그의 물음에 사보가 몸을 돌려 제 두 팔과 배 난간 사이로 상디를 가두었다. 어안이벙벙한 채로 그를 올려다보는 상디를 내려다보며 순식간에 이마에 쪽 하고 키스한 사보는 구불거리며 흘러내린 머리칼로 상디의 볼을 간지럽혔다. 글쎄, 이유가 뭘까? 의문형인 대답이었지만 답이 뻔히 보이는 물음에 상디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타들어가는 담배가 상디의 손 끝에서 아슬하게 걸려있다 바다 위로 도망쳤다. 키스해도 돼? 별들이 어둠의 장막에서 빼꼼이 나와 반짝였다. 달빛이 두 사람의 금발에 섞여 내리는 밤, 푸른 밤 바다는 달과 별, 어두운 하늘과 두 사람을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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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님 @MONSTERx_xMODE  리퀘로 사보산... 길이 조절을 장렬히 실패하고 인크루트 기준으로 3833자.....

왜때문에 저는 리퀘를 두번 다 이 새벽에 쓰는걸까욬ㅋㅋㅋㅋㅋㅋ 헤헤 에밀리님 에이산 사약 영업해주셔서 토테모 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
그리구 징베 오야붕 갠봇 오셨을때 젤 먼저 축하해주셔서 넘 감사해욧!!!!! 진짜 에밀리님 제가 많이...많이 아껴요..흑흑 사랑합니다!!!!!



+사담) 징베 오야붕 와주셔서 넘넘 좋은!! 우리 헤어지지말아요!(?) 알랍유!!!!!!!!!!!! 



요 근래들어 가장 화창한 날이었다. 점심 먹기 전 2교시라서인지 아직 졸음을 담지 못한 아이들의 눈이 들어오는 햇볕에 반짝거리며 빛났다. 칠판 가득 육각형과 화학 기호가 그려지고, 이미 화학이란 과목을 포기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에 띄이지 않도록 책상 아래로 무언갈 주고받았다. 언뜻 보이는 하얀 모습은 쪽지인 듯 했다.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던 조로와 그 옆에 앉은 상디에게도 쪽지가 도달했다. 전해주는 녀석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쪽지를 받아든 상디. 상디는 제 손에 들어온 꾸깃꾸깃한 쪽지를 펼쳤다. 반 전체를 돌고 저들에게 마지막으로 온 것인 듯 쪽지에는 여기저기 낙서와 더러운 손때가 가득했다. 사내새끼들이 더러워가지곤... 상디는 혀를 쯧 차며 쪽지의 내용을 읽었다. 


쪽지를 한참이나 읽던 상디는 푸스스 새어나오는 웃음을 꿀꺽 삼켰다. 미친 새끼. 저 앞에 보이는 까만 뺀질거리는 뒷통수를 노려보았다. 녀석은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리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곤 헤벌쭉 웃었다. 그는 웃음을 삼켜 칼칼해진 목을 두어번 침을 삼켜 다듬곤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조로를 깨웠다.


"야-."

"…으음?"

"그만자고 이거나 읽어봐."


제 손 앞으로 들이밀어지는 꾸깃한 종이. 조로는 오전 햇살이 낮잠자기 최고라고 생각하며 상디의 손에서 쪽지를 집어들었다. 잠에서 막 깬 눈은 앞이 흐릿해, 열심히 두 눈을 깜빡이지 않고서야 촛점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겨우 잡은 촛점으로 그리 길지 않은 문장을 대충 읽은 조로는 씨익 웃으며 종이를 도로 접었다. 


"저 미친 새끼."

"그렇지?"

"그래서 너 할거냐?"


조로가 선생이 뒤돌지 않는 틈을 타서 기지개를 쭈욱 폈다. 상디가 어깨를 으쓱 했다. 반장이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냐-. 선생님을 따라 다음 페이지를 펼치자 조로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렇긴 한데 말이지. 눈물 고인 눈을 팔등으로 대충 비빈 조로는 저도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상디와 그림이 다른 것은 기분 탓인가. 아무렴 어때. 상디가 그런 조로를 보곤 미간을 찌푸리며 제대로 된 페이지를 펼쳐 주었다. 화학을 선택한다던 녀석 치곤 꽤나 여유로운 폼인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의 실행시간은 정오 12시였다. 한창 수업 중일 시간. 심지어 반장이란 녀석은 오늘을 엄청나게 기대하는 듯 하더니 결국 반 단위로 끌어들일 줄이야. 상디는 볼펜 끝으로 코를 긁었다. 사람 모으는 데에 재주있는 녀석이라곤 생각했지만, 어째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야, 근데 그러다가 학주한테 걸리면 어떡하냐?"

"…에이, 봐주겠지…?"

"그 학주가 장난을 봐준다고?"


음. 그건 아니려나. 상디와 조로의 머릿속에 무시무시한 표정의 위압감 넘치는 학생부장 크로커다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워낙에 더러운 성격에 엄하기도 보통이 아니라 전교생의 두려움의 존재였다. 얼굴에 그어진 커다란 상처는 그가 선생을 하기 전 어떤 삶을 살아왔나에 대한 루머에 크게 기여했고, 그 대부분의 루머는 조폭이나 폭주족 등 위험한 쪽이었다. 반장 녀석은 워낙에 낙천적인 놈이라 그에게 한번 혼나고 나서도 친한 척 들러붙는 녀석이라 아무 걱정 없이 시도하는 것 같았지만. 재밌겠는데, 귀찮아. 조로가 중얼댔다. 그건 나도 동감. 상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은 제가 일을 벌여놓고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옆 짝꿍과 키득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12시 5분 전. 이미 교실을 한바퀴 다 돈 쪽지는 결국 조로의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고 반 내부에는 평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평소 녀석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지만 샹크스는 곧 다가올 중간고사의 걱정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반장인 루피의 얼굴이 주위를 한차례 훑었다. 다들 알지…? 굳은 눈빛을 주고받는 반 녀석들을 보며 조로가 가볍게 웃었다. 12시 2분 전. 시간이 촉박해졌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이는지 루피의 몸이 꿈틀거렸다. 짜식, 티 좀 내지 말지. 상디의 낮은 타박이 조로에게만 들렸다. 어짜피 안 듣는 녀석인데 뭐. 조로가 맞받아쳤다. 12시 1분 전. 반의 모든 녀석들의 몸이 조금씩 움찔거리고 나 이제부터 뭔가 할 거요! 라는 양상을 띄기 시작하자 아무리 수업땐 수업에 열중하는 샹크스라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가 화학책을 몸에서 조금 떼고 아이들을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12시에 정확하게 초침이 도달했다. 샹크스의 머리 너머에 높게 걸린 시계를 목빠지게 바라보던 루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을 하려다 말고 놀란 나머지 혀를 씹을 뻔한 샹크스가 루피를 바라보자 제 책상을 박차고 일어난 루피가 두 손을 높게 들고 교실이 쩌렁쩌렁하도록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


당황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는 샹크스를 보고 루피가 한번 더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제서야 루피를 따라 목소리륻 더하는 반 녀석들. 솔직히 이렇게까지 큰 목소리로 할 줄은 저들도 모른 탓이었다. 벌떡 일어난 루피가 체육복을 깃발처럼 휘두르며 일어나! 를 외치더니 제 주위의 두세녀석을 강제로 일으켜세워 끌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맞다, 이거 나가는 거였지!"


그제서야 기억해낸 듯 아이들이 우르르 떼거지로 일어났다. 30명이 넘는 사내자식들이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일어나 루피의 뒤를 따라 달렸다. 앞문을 박력있게 열어젖힌 루피가 복도로 향해 달려나가며 체육복을 흔들어댔다. 샹크스는 저도 모르게 분필자국 가득한 칠판에 등을 대었다. 고등학생이나 되는 녀석들이 떼거지로 일어나니 저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코 끝으로 미끄러진 안경을 느끼고 있는데 뒷 반에서 다시 와아아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조센징들 잡아라!!!"

"와아아아!!!!"


샹크스는 열린 교실 앞문으로 비치는 복도 풍경에 기가 막혔다. 뒷 반 녀석들이 떼거지로 우르르 지나간 탓이었다. 녀석들은 한 손에 다들 볼펜이나 자, 필통 등을 하나씩 들고 방금 달려나간 제 반 녀석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려 교실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뒷 반에서 수업중이던 버기가 황당한 얼굴로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대한 독립 만세!!!"

"잡아라, 한 명도 놓치지 마라!!"

"대한 독립 만세!!!!"

"조센징들 잡아!!!"


3층 복도가 떠들썩했다. 길고 넓은 복도를 가득 메우는 함성과 머리통들. 앞에 녀석들은 체육복을 태극기마냥 휘둘렀고 뒤에 따라오는 녀석들은 손에 새총이나 자 등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앞 녀석들을 위협했다. 선봉에 나선 루피는 애들을 이끌고 3층 복도를 한바퀴 돌 생각에 우오오 기합을 넣어 달렸고, 귀찮아하던 조로와 상디도 끝물 쪽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메꿔오는 놈들의 선두에는 우솝과 쵸파가 달리고 있었다. 


로시난테는 제가 교무실에 재료를 두고 온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가지러 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계단을 올라 교무실을 향해 몸을 옮기는데 바닥이 시끄럽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곤 고개를 들자 코 앞에 루피네가 와 있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지며 창틀에 허리를 박고 다시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 모습에 계단 맞은편의 교실에 앉아있던 로우가 수업 중인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로시난테에게 달려갔다. 


"코라상!!!"

"어이, 로우 어딜 가…?!"

"와아아!!! 대한독립만세!!!"

"조센징 잡아라!!"


로우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가는 바람에 사치와 펭귄은 얼떨결에 저들도 저 장난에 합류된 줄 알고 벌떡 일어났고 키드는 재밌는 장난거리를 찾았다며 반 애들을 선동해서 우르르 끌고 나갔다. 대신 독립군인가 일본군인가는 정하지 않았기에 엉망진창의 구호를 외치면서도 희희낙락하는 녀석들. 로우는 그런 그들을 다 무시하고 넘어진 로시난테를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한 순간에 반 아이들을 잃어(?)버린 도플라밍고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교실 밖으로 로시난테를 부축한 로우와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버기와 샹크스가 보였다. 


"이게 대체…?"



"와아아!!"


함성소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루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는 장난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저 코너만 돌면 3층 복도는 모조리 점령하는 것이 된다. 루피는 시시싯 웃으며 체육복을 더 거칠게 휘둘렀다. 


"대한 독립 만…으윽!!"


코너를 돌자마자 누군가와 강하게 부딪힌 루피가 상대의 품에 안겨들었다. 펄럭이던 체육복이 상대의 얼굴을 덮었고 꽤 장신의 사람인지 루피는 저를 가뿐히 받아드는 이를 느꼈다. 루피가 정지한 탓에 뒤에 우르르 몰려오던 루피네 반 녀석들과 우솝네 반 녀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속도를 줄였다. 루피의 체육복이 스르르 떨어져내렸고, 하얀 체육복 사이로 드러나는 짜증 순도 100%의 무시무시한 얼굴. 


"학, 학주쌤이다!!"


크로커다일이었다. 크로커다일은 제 얼굴로 날아든 체육복을 한 손으로 끌어 내리고 제 품에 부딪혀 온 루피를 나머지 한 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복도에서 뛰면 안되는 거 모르냐, 이 멍청한 꼬맹이들아."


이를 득득 갈며 한 자 한 자 씹듯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모든 애들이 숨을 죽였다. 저 뒤에서 따라오던 키드네 반 녀석들도 속도를 늦추곤 무슨일인가 웅성대며 앞으로 다가왔다. 루피도 그제서야 제가 부딪힌 이가 크로커다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복 목덜미를 구겨잡는 크로커다일의 손을 본 루피가 다시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띄우고 외쳤다. 


"으악! 일본 순경 킹한테 잡혔다!!!"

"…와하하하!! 그렇다! 우리 일본 순경 킹은 역시 쎄다!!!"

"자, 순경 킹! 당장 루피를 감옥으로 보내시죠!"

"순경 킹! 순경 킹!"

"안 돼!!!!"


우솝과 키드가 그 장난을 받아주었다. 한 순간에 일본 순경 킹(?)이 되어버린 크로커다일이 험상궂은 얼굴을 구겼다. 누가 순경이고 킹이냐, 꼬맹이 자식들아. 크로커다일의 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만우절이라고 장난 치는 건 알겠다만 적당히 쳐야지 넘어가주는거다. 으르릉 거리는 위협적인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도 떠들썩하게 굴던 녀석들의 입이 실로 동여맨 것 마냥 조용해졌다. 한숨을 푹 내쉬며 이 녀석들을 어떻게 혼낼지 고민하던 크로커다일은 갑자기 저를 꽉 안아오는 손을 느꼈다. 


"내가 바로 루논개다…! 다들 도망쳐!!"


루피가 두 팔을 크로커다일의 허리에 꽉 감았다. 그리곤 단단히 깍지를 낀 채 크로커다일의 몸에 매달렸다. 무서운 부장 선생님의 몸이 루피에게 잡히자 그제서야 난동을 피운 녀석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네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게…!! 오오!! 알 수 없는 사내들만의 눈물어린 우정이 꽃피고 합세한 세 반 녀석들이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 멀어져갔다. 남자 반의 소란에 고개를 내밀어 기웃거리던 여자반 아이들이 루피에게 옴싹달싹 못하는 크로커다일을 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웃는 놈 누구냐, 으르릉거리는 크로커다일의 목소리도 여자애들에겐 통하지 않는 듯 웃음 소리는 커져만 갔다.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루피는 학생이라구요!"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 로맨틱~!!"

"이제 선생님 루피 책임지셔야 겠다~!!!"


휙휙 거리는 휘파람소리와 함께 여자 반 앞에서 꽈악 끌어안겨진 크로커다일은 시싯 거리며 웃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웃는 얼굴에 차마 꿀밤도 먹이지 못하겠고…. 그는 루피의 이마를 두 손으로 쓸어넘겨 얼굴을 두 손에 꽉 쥐었다. 시시싯 하고 웃는 녀석과 얼굴을 잡자마자 여학생 반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 이걸 어떡한다. 크로커다일은 제 손에 들어온 루피의 볼따귀를 쭈욱 늘렸다. 볼이 늘어나면서도 이히히 거리며 웃는 루피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왜 또 나이에 안맞게 이렇게나 귀여운 건지.


'정말이지 지치는 녀석이라니까.'


어느새 교무실에서 나왔는지 미호크와 버기, 샹크스, 그리고 도플라밍고까지 기웃거리며 구경하러 왔고 크로커다일은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표시했다. 빨리 가서 자기 반 정리하시지 뭘 구경하러 오셨습니까. 뼈 있는 말에 슬금슬금 물러가는 네 선생님들과 주임 선생님이야 말로 교무실로 돌아가시죠, 라며 태클을 걸어오는 마르코를 째려보며 달라붙은 루피를 떼어내어 질질 끌고가는 크로커다일이었다. 


















욕주의)

캐번로메캐번주의)

루피커플링(?)주의)





오다 시, 그랜드 고등학교에는 사천황이 있다.


"야! 이거 존맛…!!! 커어……."


먹다 잠들기의 귀재, 어마어마한 식사량을 자랑하는 숟가락의 에이스!


"하하, 네일 정돈 받아줘야 용의 발톱을 유지하지 않겠니?"


남자 네일계의 큰손, 항상 뷰티손을 유지하는 큐티클의 사보!


"정말이지, 못생긴 것들이랑은 대화가 안 통해!"


여자보다 예쁜 남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장미의 캐번디시!


"곰인형은 세계평화를 가져온다…!"


소문난 곰 인형덕후, 한시도 품에서 곰인형을 놓지않는 테디베어의 로우!


이 네 명은 그랜드 고등학교를 주름잡는 사천황이다. 집안이면 집안, 싸움이면 싸움, 능력이면 능력 모두 최상위를 달리는 이 사천황들을 위협하는 신성들이 올해 입학했다는 말에 그랜드고등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타칭 사천황이긴 했지만 그 사천황이라는 자리를 받아들이고 꽤나 즐기고 있던 네 명은 새로운 신성으로 그들을 위협한다는 이들을 보러 1학년 층으로 건들거리면서 내려갔다. 


소문은 퍼질대로 퍼졌고, 그 위협적인 녀석들을 보러 어느 교실에 벌떼마냥 우글우글 거리는 인파를 뚫기 위해선 꽤나 힘들 듯 했으나, 괜히 사천왕이 아니었다. 


"야, 여기서 나보다 못생긴 것들 당장 꺼져."


우르르르르. 캐번디시의 한마디는 우글거리던 놈들을 한순간에 제 반으로 귀향(?)시켰고, 그 덕분에 천천히 내려오던 에이스와 사보, 로우는 편하게 됐다며 시시덕거렸다. 이 일에 가장 화가 난 건 캐번디시였다. 왜냐면 캐번디시는 인기로 먹고사는 아이돌 기질이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이 반에 어느 못생긴 애가 감히 사천황을 위협한다고 할까?"


장미를 우아하게 든 캐번디시가 교실에 들어서자 찬란한 그의 미모를 목격한 학생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으윽, 눈부셔! 라는 브금을 넣어주며 쓰러진 녀석들 사이에 멀쩡한 몇 녀석들. 캐번디시는 그 녀석들을 스캔했고, 그의 뒤로 교실에 어기적어기적 들어온 휘황찬란한 그 이름, 사천황.


"꺄악! 테디베어의 로우 님이야!!! 어쩜, 오늘은 베포를 들고계셔!!"


하얀 곰인형을 들고 시크하게 서 있는 로우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로우는 모든 곰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중 가장 아끼는 것은 베포라는 이름의 하얀 곰인형이었다. 


"숟가락의 에이스 님과 큐티클의 사보님도 있어..!"

"미친, 사천황이 진짜 제대로 모였어..!!"


이런저런 브금을 깔고 등장한 그들의 앞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몇 녀석이 있었다. 유명인들이 한 반에 모인건가. 사보가 손톱을 매만졌다. 에이, 어제 정리했는데 피묻히기 싫은데. 옆에서 밥은 언제먹냐며 들고온 주먹밥을 우물거리는 에이스의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나도 한 입만!!"


갑자기 나타난 1학년생은 에이스의 손에 들린 주먹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눈 앞에서 주먹밥을 강탈당한 에이스는 어이가 없었다. 감히 니깟 일학년이 내 주먹밥을 먹어?! 분노에 불타 남은 주먹밥을 내던지고 멱살을 잡자, 일학년이 씨익 웃었다. 


"너 씨발 지금 내 주먹밥 쳐먹고 웃음이 나지?"

"응! 맛있다, 히히!"


천연덕스러운 표정에 열이 이글이글 올라온 에이스가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는데 녀석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 에이스의 입술에 쪽 하고 입술을 댔다. 


"?!?!!!!!"

"에이스!!!"

"숟가락!!!!"

"밥팅이!!!"


모두들 기겁을 하는 와중에 겁없이 에이스의 입술을 가져간 녀석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밥풀, 아깝잖아!"


방싯방싯 웃는 모습에 에이스는 순결(?)을 빼앗긴 충격 + 천연의 공격에 당해 얼굴을 붉히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사천황 한명이 당했어…! 누군가의 나레이션과 함께 충격에서 서서히 깨어난 세 명은 그제서야 얼굴을 펑 하고 붉혔다. 


"미, 미친!! 너 지금 저 밥팅이한테 키…키스 한거야?!"


캐번디시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삿대질을 하자 그 녀석은 표정을 구겼다. 


"내 이름은 루피야! 너가 아니야!"


명찰에도 써 있잖아! 투덜투덜대는 녀석을 보며 사보는 웃음이 빵 터졌다. 야, 이거 재밌는게 하나 굴러들어 왔는데? 큭큭거리는 그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야, 루피. 너 여기 있었냐?"

"젠장, 이 학교는 왜이렇게 복잡한거야?"

"지 교실도 못 찾는 니 뇌 구조가 너무 단순한거다, 병신."

"오오, 키드! 조로! 상디!"


하나 둘 등장하는 화려한 머리색의, 딱 봐도 이 녀석들이다 싶은 녀석들이 루피라는 녀석이 있는 반으로 낑겨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교실 뒤편을 차지하고 선 세 명의 상급생들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머리 빨간 녀석, 키드가 로우의 인형을 쿡쿡 찔렀다.


"뭐냐, 이건? 다 커가지고 곰인형이나 들고다니냐?"

"뭐, 씨발. 니가 내가 뭘 들고 다니던 무슨 상관이야. 선배한테 반말이나 하고."

"선배면 선배답게 이런건 들고다니면 안되지, 말이야?"


시비를 거는 키드를 툭툭 차는 노란머리 녀석, 상디가 고개를 내저었다. 미친놈아, 여기서도 시비 털지마. 정학 당하고 싶냐. 그러는 상디 옆에서 캐번디시를 빤히 보던 초록머리 녀석, 조로가 손을 쭉 뻗더니 캐번디시의 가슴을 만졌다. 


"아, 뭐냐. 남자냐."

"씨발 눈은 장식이냐!!!"


갑자기 가슴을 만짐당한 캐번디시는 조로의 멱살을 부여잡았고 유일하게 사보 혼자 빵 터져서 큭큭거리고 있었다. 얼굴까지 붉혀가며 웃는 그의 앞에 루피가 다가왔다. 


"와! 너 손 예쁘다!"

"…고, 고마워."


사보의 손을 잡아든 루피가 그의 깔끔하게 정리된 손을 보며 감탄을 토하자 사보의 얼굴이 조금 당황으로 물들었다. 루피는 사보의 손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갑자기 제 볼에 대고 부볐다. 


"헤헤, 엄청 보들보들해."


퍼엉. 갑작스런 어택에 얼굴이 새빨개진 사보의 뒤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새끼 보통이 아닌 거 같다…. 에이스의 목소리였다. 사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위험해. 


베포를 쿡쿡 찌르는 손을 짜증나게 쳐낸 로우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 항복을 선언한 사보와 에이스를 쳐다보았다. 멍청이들, 니들이 그러고도 사천황이냐? 빈정대며 로우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사보의 손에 볼을 비비던 루피가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반짝이며 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와아악!!"


갑작스런 달려듬에 공격자세를 취하려 한 로우였으나 루피는 로우의 품에 파고들었다. 와!! 곰인형!!! 곰인형을 껴안으며 그걸 들고있던 로우까지 껴안아버린 루피를 보고 로우는 그를 떼어내려 애썼다. 


"미친, 야! 좀 떨어져! 베포 찌그러져!!"

"이름도 붙였냐?"


옆에서 키드가 다시 빈정댔지만 이미 로우는 루피를 떼어내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루피는 어지간히도 세게 껴안고 있었는지 잘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곰인형과 로우에게 부비적대며 헤실헤실 웃어댔다.


"폭신폭신해!! 폭신한거 짱 좋아!! 곰인형 좋아!!"

"야, 이거 놔…? 너. 곰인형, 좋아하냐?"


고등학생이 된 후로 곰인형 덕후를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기에 외로운 테디베어의 길을 걸어가던 로우는 오랜만에 동지를 발견한 느낌에 그를 떼어내는 걸 멈추었다. 쯧쯧, 너도 당했구나. 사보와 에이스가 혀를 찼다. 그걸 어처구니 없이 쳐다보던 캐번디시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 너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얘네가 소문의 그 녀석들이라고!! 뭘 헤롱헤롱거리고 있어, 멍청하긴!"


늘 아름답고 우아한 이미지를 고수하자는 게 제 원칙이던 캐번디시답지않게 소리를 지르자 사보, 에이스, 그리고 로우가 동시에 대답했다. 


"""야, 너는 애인 있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ㅁ, 뭐?!!!!"


캐번디시가 벌개진 얼굴로 화를 내려던 찰나 문 안으로 누가 한 명 더 들어왔다. 조로의 초록머리보다 더 형광스러운 머리색의 남자, 바르톨로메오였다. 야, 서방님 오셨네. 아냐, 마누라지. 사보와 에이스가 킥킥댔고 로우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캐번디시를 보았다. 


"야, 트라팔가. 니새끼가 쳐불렀지."


으르릉거리는 목소리의 캐번디시는 꽤나 위협적이었지만 그 목소리에 겁먹을 이는 그 곳에 없었다. 형광초록빛 머리를 자랑하며 들어온 바르톨로메오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캐번디시에게 다가갔다. 


"아, 뭐야! 왜 왔는데!"


신경질적으로 꺼지라는 티를 풀풀 내는 캐번디시를 귀찮다는 듯 본 바르톨로메오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구부정한 자세로 


"쟈가 니가 난동핀다고 잡아가라고 안 혔냐."

"내가 언제 난동을 피웠어?!"


딱 보잉께 피우고 있구먼. 그는 캐번디시의 셔츠자락을 붙들고 질질 끌고 나가려고 하다 로우 품에서 곰돌이를 만지작 거리는 루피를 발견하고 캐번디시를 내던졌다. 야! 씨발 사람을 왜 던져! 미쳤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캐번디시를 뒤로하고 그는 루피에게 달려갔다.


"루피 아닝교!!!"

"어? 로메오다!!"


갑자기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을 뭔가 싶어 지켜보던 이들 중, 상디가 발로 루피를 툭툭 차며 물었다. 


"뭐냐? 너 아는 사람?"

"니 지금 아를 왜 발로 까는겨? 이게 확 디져부릴러구…."

"어? 나 이사하기 전 옆집 형이야! 상디 내 친구니까 화내지마!"

"응, 그려그려. 루피가 말하면 그래야제."


루피 말 한마디에 방긋방긋 표정을 바꾸는 로메오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된 건 캐번디시였다. 건방지게도 사천황을 위협하려 든다해서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 왔더니 저 빼고 나머지 놈은 다 당했(?)고, 마지막엔 제 애인까지 당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야, 씨발!! 바르톨로메오!! 오늘부터 각방 써!"

"와, 너네 같은 방 쓰냐?"

"미친 놈들."

"왜? 보기 좋잖아. 사이좋고."


에이스, 로우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고 사보가 빙긋 웃었다. 나머지 세 놈은 모르겠으나 루피라는 애한테는 그랜드고등학교 사천황은 단단히, 당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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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좀더 병신같이 쓰고싶었는ㄷ.... 병신력이 모자라 칙쇼...





해가 높고 푸르게 떠 있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 그의 방문은 놀랄만큼 갑작스러웠다. 바다의 사황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해적단은 다들 어디에 둔 건지, 그는 제 본선 한 척만 끌고 유유자적하게 등장했다. 망루에서 망을 보던 녀석이 전보벌레로 그 사실을 빠르게 알렸다. 현 칠무해 중 한 명, 천냥광대 도화의 버기는 땀을 뻘뻘 흘리는 전보벌레를 받곤 뒤로 우당탕 넘어졌다. 


"뭐? 붉은 머리 녀석이 오고있다고?"

-예!! 틀림 없이 녀석입니다!


젠장, 이번엔 또 무슨 일이래. 버기는 넘어진 의자를 주울 생각도 안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자식이랑 엮여서 좋을 일은 한번도 없었지. 버기는 입술을 비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전보벌레가 놓여진 책상의 옆에 있던 녀석이 달려나갈 폼을 잡으며 선전포고로 한 발 쏠까요? 라고 물었다. 


"미쳤냐!! 그 자식은 사황이라고!!"

"선장님은 칠무해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버기는 입술을 짓씹었다. 계속 들려오는 전보벌레의 목소리에 의하면 이미 사정거리 내로 들어왔다고 했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쪽에서 포를 쏘는 듯한 자세나 위협을 가할 만한 상황을 조성하진 않고 있는 듯 했다. 샹크스 자식. 버기는 그 빨간 머리통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이글이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스러움. 제가 팔려 했던 악마의 열매를 먹게 한 그 분노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닥 자세하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버기는 옆을 지키던 선원이 다시 바르게 세워준 의자에 앉았다. 삐걱삐걱 의자 까딱이는 소리가 났다. 버기의 얼굴이 한차례 붉어졌다 돌아왔다. 


"어떻게 할까요?"


재차 물어오는 녀석을 향해 콧방귀를 흥 뀌는 버기. 올 테면 와 보라고 그래! 이 몸이 어디 여기서 끝날 것 같으냐?! 말도 안되는 허풍을 뻥뻥 치는 그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던지는 뭇 선원들과 그 꼴을 옆에서 보고있던 미스터 3은 혀를 끌끌 차며 읽던 신문을 접었다. 선원들을 다 내보내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고 일러두고 미스터 3과 둘이 선장실에 남았다. 


"무슨 생각인 거냐네?"


신문을 부스럭거리며 곱게 접은 미스터 3은 버기를 향해 의문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버기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자넨 그 빨간 머리 자식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이 참에 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말이네. 미스터 3의 말이 이어졌다. 시끄러워, 그게 가능하면 이 몸이 이러고 있겠냐. 버기가 짜증을 팍팍내며 중얼거렸다. 미스터 3은 흐응, 영혼없는 대답을 하곤 말았다. 붉은 머리 해적단의 본선은 점점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




"여어- 버기! 오랜만~!"


샹크스의 접근은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중간에 배를 멈춘 그는 작은 배를 하나 끌고 내려왔다. 버기를 향해 확성기를 쓰며 우렁차게 외치는 사황, 붉은 머리의 샹크스는 꽤나 친근한 모습이었고, 그에 버기네 해적단의 선원들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샹크스를 향해 뭐라고 한 마디 던지려 확성기를 붙잡은 선원 하나가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다. 주변 공기가 찌릿찌릿하게 느껴졌다. 한 명을 향해 패기를 쓴 샹크스가 다시 넉살좋은 웃음을 흘리며 여어~! 라고 버기를 외쳐댔다. 참다 못한 버기가 쓰러진 녀석한테서 확성기를 뺏어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무슨 일이냐, 빨간 머리!!"

"뭐, 우리가 일이 있어야만 만나나?"

"ㄱ, 개소리 말고 온 목적이나 말하시지! 안 그럼 이 몸이 요번에 새로 개발한 특제 머기탄을 다발로 쏴 줄테니까 말이야!"


앞부분에 살짝 더듬은 듯한 말에 선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버기가 한두번 더듬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허세 좋은, 조금 악독하면서도 조금 다정한 저희들의 선장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이건 확성기로 말하기 조금 그런 이야긴데 말이야~!"


샹크스가 말 꼬리를 늘리며 빙글빙글 웃었다. 버기는 섬광처럼 스쳐가는 감각이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녀석에게 제 발을 붙들고 있으라 명령하고 버기는 제 몸을 날려 샹크스가 타고 있는 조각배를 향해 다가갔다.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다가간 버기를 보며 붉은 머리 해적단의 쪽에서도 오오, 거리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보이냐, 이게 이 몸의 능력!! 버기는 한껏 잘난척을 내뿜으며 샹크스에게 다가갔다. 결코 무작정 가까이 다가가선 안돼. 버기는 저번에 있었던 치욕스러운 사건을 기억하며 샹크스에게서 1여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마주섰다. 샹크스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인데, 악수도 안 할거야?"

"왜 이 몸이 너 따위랑 악수를 안하면 안되는 거지?!"

"하하, 여전하구나."


틱틱대는 버기의 말투도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버리는 샹크스. 그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제법 비밀스러운 투로 장난스럽게 속삭이는 그 단어는 버기의 귀를 궤뚫고 들어왔다. 


'역시, 이 몸은 보물과 무슨 인연이 있는 게 틀림없어.'


아니나 다를까, 샹크스는 꽤나 흥미로운 보물 이야기를 들고왔다. 버기 그가 샹크스와의 악연을 끊으려해도 끊을 수 없는 이유. 그가 물고오는 보물 지도 및 보물섬 이야기는 꽤나 쏠쏠한 것이었고, 버기는 그것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탐스러운 빨간 코를 씰룩이며 버기가 흥미를 보이자 샹크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거뭇한 수염이 둘러싼 그의 입술이 몇 번 더 움직였다. 버기의 눈이 반짝였다. 둘의 거리가 급작스럽게 좁혀졌다. 버기가 샹크스의 멱살을 단단히 부여잡고 들어올렸다. 


"네 녀석, 그 정보 쓸만한 거겠지?"

"물론이지~ 내가 너한테 언제 보물가지고 거짓말 한 적 있냐?"


있잖아!! 엄청 많다고?! 호러스러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샹크스의 목을 조를 듯 보이는 그의 모습에 샹크스를 태우고 온 선원이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샹크스는 그의 남은 손을 들어 뒤의 사내를 진정시켰다. 버기와는 이게 익숙하니까 말이야. 벤이나 야솝 등 초창기 멤버들이 배를 몰았다면 뒤에서 시시덕 댔을텐데. 샹크스는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픽 웃었다. 미안미안. 진심이 들지 않은 사과에 더더욱 열이 받은 버기였지만 확실히 그, 정상전쟁 때 이후로 그가 자신에게 거짓 보물정보를 얘기한 적은 없었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가 있었지만.


"심지어 이 근처라고?"

"…그래?"

"마침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좋은 섬도 있고 말이야."


어때, 딱이지? 찡긋 윙크하는 샹크스의 멱살을 서서히 내려준 버기는 잠깐 고민하는 척 하다 냉큼 샹크스의 확성기를 뺏아 제 배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 이제부터 우리 배는 붉은머리 해적단 배를 뒤따라 간다! 웅성거리는 제 선원들을 본 버기는 꽤나 민망했다. 안그래도 아침에 한번은 붉은머리 해적단을 갈아 마실거라 외치고 다녔기 때문이겠지. 샹크스의 웃는 낯을 힐끗 본 뒤 그는 다시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부터 약 일주일 간 휴식이다! 알겠냐!!"


갑작스런 통보긴 했지만 그들도 일단 버기를 선장으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었다. 칠무해가 된 이후로 수입도 짭짤했고 보물을 찾아 맴도는 버기를 따라 다니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심지어 파티도 좋아하는 선장이라니! 이번에도 일주일 간 신나게 먹고 마실 걸 예상한 선원들은 그들의 무기를 던져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선장을 닮아 파티를 좋아하는 구만? 샹크스의 말에 버기가 뭐가 나쁘냐! 라며 버럭거리느라 출발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곧 두 대의 본선은 근처의 어떤 섬을 향해 움직였다. 





*





"보물 이야기 인거냐네?"

"어…? 뭐, 그런거지!"


날 속이려고 하다니. 미스터 3의 한심한 눈길을 받으며 버기는 선장실을 나갔다. 제 크루들은 이미 대부분 갑판으로 나와있었다. 그의 뒤로 천천히 미스터 3이 선장실에서 나왔다. 아마 정박한 김에 책을 사러 가는 것이겠지. 버기는 갑판의 녀석들이 다 잘 보이도록 하늘로 둥둥 떠올랐다. 오오- 환호성이 나오는 제 크루들을 만족스럽게 보며 버기가 실실 웃었다. 


"네놈들!! 니들이 나 같이 화끈하게 훌륭한 선장 만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멋진 약탈을 위해서!!"

"당신같은 훌륭한 해적을 따랐다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즐거운 해적질을 위해서!!"


다 틀렸다!!! 버기가 호탕하게 웃었다. 제 선원들을 향해 손가락을 쫙 펴보인 그는 굉장히 악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건 바로 놀 때 화끈하게 노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 가서 인생에 남을 만큼 화끈하게 놀다 오라고!!"

""와아아아!!!!!!!!!""


우렁찬 외침이 몸을 저릿저릿하게 해 왔다. 역시, 명성이란 좋은 거야. 버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내려왔다. 마침 정박한 섬은 꽤나 놀이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붉은머리 해적단의 배에서도 다수가 내려 마을 내를 즐기러 들어갔다. 두 배가 함께 정박하여, 섬을 공유하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싸우는 것은 좋지만, 그들의 선장 앞에서 싸울 것. 해적에게 쌈박질을 하지 말라는 것도 우스웠다. 물론 선장이 없을땐 부선장이 선장 대리를 맡는 조건으로. 버기는 아까 공중에 떴을 때 봐둔 샹크스가 있는 지점으로 내려갔다. 제 멤버들이 배를 떠나 노는 것을 응원하는 샹크스를 보며 파티 좋아하는 건 그렇게도 닮았을 수가 없는데, 어째서 사이가 나쁜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는 버기였다. 샹크스는 하하 웃던 얼굴을 돌려 버기를 맞이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제 오른 손으로 버기를 홱 끌어당긴 샹크스는 휙휙 불어대는 제 크루 휘파람을 음악 삼아 버기를 질질끌고 갔다. 해변의 한쪽 끝에 작은 배가 놓여있었다. 


"뭐야, 이거 타고 가는거냐?"

"어쩔 수 없어. 배를 끌고 가기엔 해안이 좀 얕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다 나눌 건 아니잖아?"


찡긋 윙크를 하는 샹크스 탓에 버기가 입술을 삐죽일 때 샹크스가 언질도 없이 그를 배로 밀어넣었다. 물론 동강동강 열매 능력자로써 볼썽사납게 넘어지거나 하지 않을 듯 했지만, 버기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배 안으로 엉덩이부터 들어갔다. 


"네 녀석!! 화끈하게 죽여버린다!?"

"날 죽이면 보물 위치를 모르잖아?"


이건 정보지, 지도로 표시된 게 아니라고? 능글거리며 웃는 샹크스가 노를 가지고 배에 올라탔다. 짜증을 버럭버럭내며 엉덩이를 매만진 버기는 배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봐도 샹크스는 노를 저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하냐, 네놈 노 안 저어? 버기의 물음에 샹크스는 한쪽 팔을 드러냈다. 


"난 손이 하나라서, 이 손이 지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손이 멀쩡한 네가 저어야지."

"아주 뻔뻔스럽게 말하는 구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천하의 붉은 머리가, 노 조금 젓는다고 손을 못 쓸 일은 없다고도 생각했지만 버기는 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 감사. 냉큼 자리를 옮기며 버기에게 노 젓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준 샹크스는 망토를 입고 짜증나는 얼굴로 노를 젓는 버기를 올려다보며 실실 웃었다. 작은 배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갈랐다. 


도착한 곳은 그렇게 멀진 않지만, 그렇다고 수영으로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저 멀리 가물가물하게 신형이 보이는 저의 배를 확인한 버기는 갑자기 배가 기우뚱거리는 게 느껴졌다. 


"야, 빨간 머리. 이 배 좀 위험한 것…?"


문장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두어번 뒤뚱거리던 배는 어쩌지도 못할 상황에서 갑작스레 뒤집혔고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다에 빠졌다. 버기는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느껴졌다. 아이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보물을 찾으러 왔다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나…. 힘이 빠지고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는 데 강한 힘이 그를 끌어당겼다. 


"푸학학!!"

"버기, 괜찮아?"

"괜찮, 쿨럭- 괜찮아 보이냐…!"


해수에 닿아 힘조차 나지 않는 버기는 저를 끌어올린 샹크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마치 땅에 선 듯 올곧게 서서 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읏챠. 그의 손을 잡혀 있던 팔이 한 차례 크게 아프더니 샹크스의 팔이 제 등을 감싸고 버기를 부축했다. 


"야, 넌 팔 없는 놈한테 부축당하니까 좋냐? 좀 일어나라고."

"너… 어떻게 서 있지…?"

"어떻게라니, 여기 물이 허리까지만큼도 안 온다고. 일어서, 버기."


물만 나가면 되는 거였지? 샹크스가 중얼거리며 버기를 해안가로 끌어냈다. 해수에서 떨어지고 나서도 몸에 푹 젖은 옷이 달라붙은 탓일까, 영 힘을 못 찾는 버기를 위해 샹크스가 머릴 긁적이더니 어디선가 모닥불을 만들어선 버기를 불렀다. 일단 뭐가 됐든, 너 옷 부터 좀 말려야 겠는데? 버기가 흐느적거리면서 걸어왔다. 나이스 아이디어. 그는 조금 덥다 싶은 모닥불 앞에서 윗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이놈의 망토 때문에 더 몸이 무거운 듯 했다. 상반신 탈의를 해 버린 버기는 모닥불 근처에서 더위를 참으며 바지를 말렸고, 샹크스는 그런 버기를 보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근데 배는 어떻게 되는 거냐?"


버기가 배의 파편으로 보이는 것들을 가리키며 묻자 샹크스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암초 따위에 부딪혀서 뒤집힌 것 같은 배는 쓸 수 없는 상태로 망가져 있었다. 몰라, 나중에 구조신호 하지 뭐. 벤 정도는 나 여기 있는 거 아니까. 그의 무덤덤한 말에 버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벤이라면 믿을 만 하지. 그가 샹크스의 배에서 가장 탐나는 선원이었으니. 대충 마른 거 같으니 갈까? 샹크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옷은 그다지 마른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버기는 제 바지가 대충 말랐으니 샹크스 따위 어찌되든 좋았다. 그러지. 이 몸을 어서 보물에게 안내하라고. 버기 특유의 자존감이 듬뿍 묻어나는 말에 샹크스가 가볍게 웃었다. 그래, 어서 찾으러 가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무인도였다. 사람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길에서 그들은 야생동물마냥 낯선 길을 탐험했다. 중간중간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간 버기가 대충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전달하면 샹크스가 그걸 토대로 길을 터는 방식이었다. 특제 머기탄으로 날려버리자는 버기의 첫 의견은 어디에 있을 지 모를 보물 및 그 보물을 향해 난 길을 부셔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소거되었다. 한참동안 숲을 나아갔을까, 그들은 꽤나 맛나 보이는 과일을 발견하곤 독이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서로에게 먹이려 한바탕 난리를 쳤다. 결국 그 과일은 독이 없었고,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먹긴 했지만. 


샹크스가 예상하는 지점까지 1/2 정도 온 그들은 잠시 쉬기로 했다. 교대로 길을 튼 두 사람은 꽤나 피곤해져 있었다. 특히나 아까부터 하품을 연발하던 샹크스는 잠깐 멈추기만 해도 졸기 일쑤였고, 버기는 그가 없으면 안되므로 짜증을 버럭버럭 내며 그를 깨우곤 했다. 휴식을 정하고나서, 샹크스는 냉큼 바닥에 주저앉아 나무에 제 등을 기대고 자기 시작했다. 버기는 그런 그의 옆에 제 발을 잠시 두곤 공중에 떠서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제가 먼저 찾아서 나가면 샹크스 녀석과 나누지 않아도 되겠지! 그가 잠드는 동안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켈켈거리며 공중을 맴돌던 버기는 곧 그 자신이 어느 쪽 길로 왔었는지 감을 잃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곤 조금 침울해져서 도로 내려왔다. 키가 허리를 훌쩍 넘기고, 가끔은 키를 넘기는 식물들을 베어나가며 진전한 탓에 거꾸로 돌아간다면 아마 알겠지만 공중에서 보는 것으로 추측하기엔 이 숲, 아니 정글이 너무 넓었고 무성했다. 버기는 샹크스의 옆에 퍼져 앉았다. 입까지 벌리며 새액 새액 자는 꼴을 보아하니 며칠간 잠을 못 잔 것일까.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머리칼이었지만 그의 그을린 피부와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버기는 제 견습 동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자식도 입만 다물고 있으면 멀쩡하게 생긴 얼굴인데 말이야. 그는 때아닌 얼굴 품평을 시작했다. 영 산적같아 졌는걸? 원래도 그랬지만 예전 그의 모습은 조금 더 미청년인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그런 그가 어느새 떡 벌어진, 조금 위협스런 얼굴의 사내로 성장해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렸을 적 저와 투닥대던 밉상인, 어린 얼굴을 떠올리는 건 버기에게도 쉽다고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버기는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그의 붉은 머리가 그의 코를 간지럽히는 걸 보곤 킥킥거리며 웃었다. 잠결에도 간지러운지 코를 움찔대며 표정을 구기는 샹크스가 재미있어 근처 풀을 꺾어 샹크스의 코를 간지럽혔다. 입을 벌리고 자는 그의 입 속에 풀을 넣어보기도 하며 혼자 낄낄대던 버기는 제 코에 톡 하고 닿는 물기를 느꼈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그가 느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 양을 늘렸고, 곧 후두둑 소리가 나며 나뭇잎과 풀들을 두들겨댔다. 비 맞는데서 잠들면 안되지! 버기는 샹크스를 흔들어 깨워 그를 질질 끌곤 오던 길에 있던 커다란 나뭇잎의 식물 아래로 몸을 숨겼다. 커다란, 아니 거대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그 식물은 한 장의 잎으로도 두 사람을 충분히 가리고도 남았다. 


"덕분에 화끈하게 살았다."


버기가 샹크스를 바닥에 내팽겨쳤고, 끌려오던 도중에 깬 샹크스는 잠이 덜 깬 눈을 껌뻑거리며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 뭐야. 그건가, 스콜? 샹크스의 납득한 듯한 말에 버기가 스콜? 하고 되물었다. 응, 스콜. 샹크스는 그의 되물음의 의도를 잠시 파악하는 듯 하더니 비웃는 듯한 얼굴로 시비를 걸어왔다. 너 스콜 모르는 거 아니지? 그의 전매특허인 버기 짜증 불러일으키는 표정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난 정글 따위 모른다고! 그거야 항해사가 알면 되지!! 빽빽거리며 불만있냐고 흥분하는 버기를 계속 놀리며 샹크스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짧은 시간내에 다량의 비가 오는 현상을 말해. 아마 금방 그치겠지. 그의 말에 버기가 툴툴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샹크스가 몸을 일으키려다 윽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뭐야?"

"아, 여기 왠진 모르겠지만 피가 나서 말이야."


샹크스가 제 손등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아마 버기가 끌고 오다 아무렇게나 내팽겨친 탓에 근처에 돌이나 풀에 긁힌 거겠지. 버기는 딴청을 피우며 비도 많이 오는데 씻던가? 라며 비아냥댔다. 앗, 그러고보니. 샹크스가 무언갈 깨달았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 말라고, 이 바보 자식아. 비 들어온단 말이야!"


계속 내리니까 추워 죽겠구만. 버기의 투덜거림이 곧 조금 축축하지만 따뜻한 것으로 덮혔다. 음? 버기가 위를 올려보자 샹크스가 그의 망토를 벗어 버기에게 걸쳐준 것이었다. 뭐냐? 버기가 제 몸에 걸쳐진 망토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들며 묻자 샹크스는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서운한데? 난 네가 추울까봐 벗어준 거라고?"

"피, 필요없거든?!"

"이빨 딱딱 부딪히며 그런 말 해도 아무 의미가 없거든, 버기?"


그, 그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네가 줬으니 친절한 이 몸이 받아주지! 버기는 냉큼 샹크스의 망토를 둘둘 감았다. 아까 바닷물에 빠진 탓에 조금 젖어있긴 했지만 샹크스의 체온으로 말랐는지 데워졌는지 조금 뜨뜻했다. 


스콜은 생각보다 그렇게 금방 멎지는 않았다. 아까 샹크스의 망토를 안 받았으면 어떻게 됐었을까? 버기는 제 맨몸의 상체 위에 그의 망토를 조금 더 꼭꼭 덮으며 잎사귀 바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 


"야, 빨간머리. 너 아까 피난 건 괜찮냐?"

"아, 어어. 이런 건 침바르면 낫지. 그러는 너야말로 다친덴 없냐?"

"이 몸이 다칠 리가 있냐!"


가슴을 팡팡 치는 버기를 돌아본 샹크스가 빙긋 웃었다. 갑자기 그가 가까워지는 듯 하더니 버기의 조금 식은 볼에 따뜻하고 축축한, 마치 샹크스의 망토 같은 것이 닿았다. 그것보단 조금 더 높은 온도일까. 멍 하니 무언가를 당해버린 버기가 넋을 빼고 샹크스를 쳐다보자 샹크스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거기, 다쳤는 거 같아서 침 발라뒀어. 고맙지? 뻔뻔하게 감사를 요구하는 샹크스를 보며 버기가 얼굴을 발갛게 달아올리며 악악댔다. 


"옷도 벗어주고, 상처도 치료해주는 이런 친절한 적이 어디있냐?"


버기의 악담을 한귀로 흘리며 샹크스가 허허 웃었다. 버기의 악담이야 익숙했고, 오히려 없으니 그리울 지경이었으니까. 야, 옷 필요 없거든? 네놈도 셔츠 젖어서 안이 다 비치는데 뭔 양보야, 양보는! 필요없어! 바락바락 지르는 악에 목소리가 상하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버기는 악을 써댔다. 하하, 버기. 그렇게 소리지르면 목 쉰다고? 샹크스는 빙글빙글 웃었다. 


"그보다 말인데, 내 속살이 비쳐서 만지고 싶은거야? 굉장히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는 걸?"

"누, 누가!!"


버기가 버럭 화를 냈다. 누가 네놈 속살 따윌 궁금해 한다고 해!? 망토나 도로 가져가시지! 화를 내면서도 끝까지 망토를 벗어주지 않는 버기를 보며 샹크스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왜? 난 네 속살 궁금한데. 넌 아닌가봐?"

"…? 야, 다-당연하지! 이 몸은 말이야…!"


말을 더듬는 버기의 앞으로 샹크스의 얼굴이 들이닥쳤다. 바닷물과 비에 젖은 샹크스의 얼굴은 꽤나 퇴폐적인 미를 자랑했다. 미소년이 미쳥년, 미중년으로 자란다던가. 버기는 산적같은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그의 참을 수 없는 퇴폐미에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응, 이 몸은, 뭐? 날 좋아한다고?"


바닷물에, 비에, 그리고 샹크스에 젖은 웃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농염했고, 버기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겨우 열어 더듬거리며 내뱉은 말은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누, 누가 네 녀석 따윌!"


그 말에 단 하나의 상처도 받지 않은 듯한 샹크스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고 그 얼굴이 가까워짐에 따라 버기는 고였던 침을 꼴깍, 하고 삼켰다. 침, 맛있게 삼키네. 샹크스의 말은 귀가 아니라 입술로 들려왔다. 입김이 닿는 거리에서 버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말캉한 것이 입술에 닿아왔다. 


키스는 하는 사람의 성격을 닮은 것일까. 구렁이가 꿈틀대듯 유연하게 버기의 안으로 밀고 들어온 샹크스는 그의 뒷목을 한 손으로 붙든 채 고개를 틀어 깊게 파고들었다. 샹크스의 느낌 답게, 끈적하고 어른스러운. 그러면서도 퇴폐적이고 야성적인 키스는 버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떨어져나갔다. 얼굴 색이 코랑 비슷해 졌는데? 샹크스의 장난 어린 말에도 대답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닦은 버기가 그를 노려보며 헉헉댔다. 


"너… 키스 왜 이렇게 화끈하게 잘하냐?"

"왜? 그래서 맘에 들었어?"


아니-.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키스는 끝내주게 했지만, 그게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버기는 제 마음에서 샘솟는 이 짜증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젠장. 잘해서 짜증나. 툭 하고 내뱉은 말에 샹크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거, 질투야?"

"이 몸은 질투 같은 거 안 한다고!!"


어이어이, 태클 걸 곳이 거기인거야? 조금 풀린듯한 웃음을 짓는 샹크스를 바로 마주보지 못하는 버기가 한 손으로 얼굴을 틀어쥐곤 고개를 돌렸다. 말하고 나서야 눈치챈 것 같았다, 자신의 감정에. 이건 질투가 맞았다. 답지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리자 뒤에서 포근하게 안아오는 품이 있었다. 


"뭐야, 이거 치…!"

"다 널 줄게."


뭐? 버기가 되물었다. 그의 뒤에서 안아오는 손을, 품을 뿌리치지 못한 채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더 꼬옥 안아오는 팔. 버기는 아차 싶었지만 어깨 즈음에서 들려오는 샹크스의 약간, 어리광 부리는 듯한 말투는 다분히 오랫만이었고 늘 밉상 이던 녀석의 별 없는 귀여운 점이었기에 가만히 두었다. 샹크스는 버기의 어깨에서 턱을 꿈지럭대며 말을 이었다. 


"니가 맘에 들어하는 내 키스실력이고 뭐고, 다 줄게. 너한테. 나를 온전히."


빗방울이 잎사귀를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톡, 투욱 툭. 꽤나 묵직한 빗방울이 서너번 떨어진 후일까. 버기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 몸이 그런 거 준다고 좋아할 줄 알면 화끈하게 오산이라고. 샹크스는 제 품에 담긴 버기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응, 알아. 그래도 주고 싶은 걸. 샹크스의 나지막한 말이 잎사귀의 바람과 함께 들어왔다. 버기의 몸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의 귀가 빨갛게, 코 마냥 붉어져 있었다. 그의 뒷통수까지 귀여워 샹크스는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젠장… 보물 못 찾으면 너도 화끈하게 거절당할 줄 알라고."

"응응, 그러자."


샹크스가 쪽 하고 버기의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에 키스했다. 허락 없이 그런데 키스하면 죽여버릴 테니까…! 버기의 수줍은 듯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샹크스가 팔을 풀고 버기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거, 허락 맡으면 해도 된단 얘기지? 제 좋을대로 해석한 샹크스는 고개를 푹 숙인채 빨갛게 익어가는 버기를 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시끄러워. 


버기의 투정과 같은 말이 내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그럼 거절당하기 싫으니까 보물이나 찾으러 가 볼까?"

"어이어이, 이유가 화끈하게 불순한데?"


좋은 게 좋은거지. 샹크스가 몸을 일으키는 버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샹크스의 미소가 정글 속으로 비쳐들어오는 개인 하늘의 햇살과 같이 반짝였다. 뭐, 나쁘지 않을지도. 버기는 그의 굳은살 박힌 손을 꽉 잡고 일어났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정글, 그 위에 무지개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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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님@croyance_F  리퀘!! 졸린 와중에 써서 제대로 썼는지도 잘 모르겠는... 눈을 반쯤 감고 썼지만ㅋㅋㅋㅋㅋㅋㅋ 


총 3013자 입니다! 기준은 젠라이터... 왜냠 제가 글자수 세는게 지금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


꾸금꾸금을 써달라던 팡님의 은근한 부탁은 못 들어 드렸군요~ 아쉽아쉽~ 생각보다 진도가 넘 느려서 걍 관뒀읍니다 ㅋㅋ 떡씬까지 쓰면 아마 1만자는 넘기지 않을까...(글자조절고자임


샹버기는 처음이라 많이 쑥스럽군요. 저도 좋아하는 커플링입니다 헤헤. 덕분에 써봐서 넘 기뻐요!



+사담) 그리구 뭣보다 우리 징베 오야붕 와주어서 너무너무 기쁜 요즘♡ 행복을 담아 썼읍니다!  오야붕 저랑 오래오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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