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흐느적대는 저녁 바다에 한줄기 소란이 날뛰었다. 소리의 중심에는 작은 배가, 그리고 그 배 위에 넘실대는 두 사내의 거친 투닥임이 노을을 휘저었다. 


도플라밍고는 예의 그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들러붙는 루피의 고무 팔을 밀쳐냈다. 루피의 팔은 그의 실을 피하고 피하다 괴상하게 뒤엉켜 결국은 다른 크루들의 짜증까지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제서야 조금 수그러든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 긴 손가락을 두어번 흔들었다. 조종되던 실이 모두 끊어지고 루피가 다시 몸을 추스리기 전, 도플라밍고는 그의 몸을 잡아 질질 끌고 배의 후미로 향했다. 


상디의 담배연기가 높게 올라 흔들렸다. 사랑싸움? 그의 장난스런 말에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위협하는 도플라밍고와 묘한 표정을 짓는 루피. 어깨를 으쓱한 검은 다리의 요리사는 바람에 스며든 담배향만 남겨두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두어군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바닥. 루피는 볼을 통통하게 부풀리고 도플라밍고의 다리 한 쪽을 잡곤 늘어졌다. 도플라밍고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번득이는 선글라스에 얼핏 붉은 리본이 비치고, 무언가에 놀란 듯한 그는 루피를 떼어내고 급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까지 쫓지는 못한 루피가 볼을 긁적이다 그의 코트에서 떨어진 깃털 한 조각을 들곤 터덜터덜 방으로 내려갔다. 오후 7시였다. 


하늘로 도망치다시피 오른 도플라밍고는 얼굴에 한가득 구름 내음을 묻혀 돌아왔다. 하늘섬 같을까? 눈을 빛내는 쵸파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고 자리에 앉은 그는 끈질긴 루피의 시선을 끝끝내 마주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여전히 달라붙어오는 루피의 애정공세를 냉정하게 끊어낸 그가 두번째 신문을 펼쳐들었다. 또 신문 봐? 루피의 투정이 들려왔지만 그는 아침에 읽었던 이 신문을, 다시한번 들여다 보는 것 이 외에 관심을 둘 만한게 없었다. 눈이 검은 점자로 향하고, 그것이 하나의 의미로 저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그리고 그 의미 사이사이에는 루피가 있었다. 


안 돼. 도플라밍고는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루피를 향해 움직이는 손을 저지하고 가까스로 다음 장을 펼쳤다. 저녁이 한참 넘어 도착한 어느 섬에 배를 조용히 댄 그들은 팀을 짜서 생필품을 사러 나섰고, 배를 담당하게 된 루피와 쵸파를 두고 나머지는 각각 배당받은 물건을 사러 마을의 야시장으로 향했다. 


3미터의 키에 시선을 뺏는 분홍색 깃털코트는 누가 봐도 드레스로자의 전 국왕 도플라밍고였기에, 나미의 엄한 명령 아래 코트를 벗어두고 망토를 두른 그는 나미와 조를 짜서 장을 보러다녔다. 야시장의 불빛이 두 사람의 망토를 어지럽혔다. 어둠 아래 또 한 겹의 어둠이 도플라밍고를 감쌌다. 선글라스를 벗지도 않는 그에게 나미가 타박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 어느 옷가게에서 주인과 흥정을 시작한 그녀에게 잠깐 눈을 뗀 도플라밍고는 아무도 모르게 선글라스를 내려 맨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야시장은 육지의 은하수였고, 그는 그 흐름을 버티지 못했다. 몸을 휘청이자 흥정을 하다 말고 나미가 그의 망토자락을 잡아왔다. 괜찮아? 별 거 아니다. 도플라밍고는 짤막한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손이 자꾸 움크러들었다. 코가 씰룩였다. 이윽고 마음은 더 낮은 곳으로 침잠했다. 한계의 물줄기가 말라 있었다. 


"밍고?"


힘들면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나미의 말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다. 도플라밍고는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 하나하나 오롯히 감정이 스며들었다. 어느새 쇼핑을 가장한 협박을 끝낸 나미가 그를 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여전히 멍 한 듯한 그의 모습에 혀를 쯧, 하고 찼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나미의 말에 그는 고개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 애매하다는 것의 우울은 그를 좀먹어 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긴 한숨이 침묵을 감싸고 돌았다. 


"밍고!"


익숙한 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거의 동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눈물겨운 향기가 품에 안겨 들어왔다. 비틀대다 중심을 잡은 그의 턱 아래에 살랑살랑 검은 머리칼이 춤추었다. 야시장의 불빛에 반사되는 조금 거친 머리칼. 도플라밍고의 크고 길다란 손이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만졌다. 제 손 안에, 제 품에 느껴지는 익숙한 모습에 도플라밍고는 잠깐 넋을 잃었다. 나미가 빙긋 웃는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조용하게 얘기하고 바로 따라 와? 짐 많으니까!"

"응!"


루피는 나미를 향해 빙긋 웃어주곤 아직도 벙 쪄 있는 밍고를 데리고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한두 걸음 나가면 번쩍이는 야시장이지만 그 옆의 기묘할 정도로 한적한 어둠. 루피는 그의 앞에서 대뜸 허리에 손을 얹더니, 자! 나를 안아 주도록 해! 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피식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당당한 그의 모습에 도플라밍고는 손을 내저으려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야시장 초롱을 반사하는 검은 눈동자가 저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파장은 울렁거리며 온 몸을 뒤덮었고, 그것은 새카만 소름과 이어졌다. 그는 천천히 거대한 장신을 구부려 루피를 안았다. 아니, 그의 품에 파묻혔다. 


도플라밍고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루피가 간지럽다고 히힛 웃었다. 웃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마흔 너머 아저씨의 얼굴에 옮았다. 제 품에 안긴 도플라밍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루피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왜 자꾸 피한 거야?"


글쎄. 도플라밍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 안에 온전히 들어온 그의 흔적은 도무지 줄이려 해도, 흐리려 해도 말썽이었다. 내 마음 안에서도 난동을 피우는 군, 밀짚모자. 하루종일 빠져있던 퍼즐의 조각이 온전히 들어맞았다. 퍼즐의 완성도는 모르겠으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다. 한참 그의 품에서 무언가를 느끼던 도플라밍고는 몸을 떼어 일어나며 루피의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키스했다. 어둠이 흘낏 눈을 돌렸다. 


"오늘은 숨이 막히니 혼자 잘 거다, 루피."


루피. 입 안에 동그랗게 돌았다. 너의 존재와 의미는 이미 내게 고쳐지지 않을 습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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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대의 버릇과 습관 따위가 나를 점점 옥죄어와요 / 숨이 막히니 오늘 밤은 혼자 잠을 잘래요


쏜애플-백치.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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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우리 배에 지도 어느덧 1주가 지났다. 루피는 그가 있는 방으로 종종 찾아갔다. 쵸파는 방에서 피에 젖은 붕대와 약을 한움큼 안고 나오곤 했다. 드레스로자의 국왕, 도플라밍고. 그가 루피와의 전투를 마치고 패밀리들을 잃고 쓰러진 것을 루피가 들쳐업고 이후였다. 나미와 상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름 뿐 듯한 부선장, 조로 또한 의견에 동의했다. 로빈도 선선히 오케이를 내주었고 우솝은 왕을 태우면 죽는 병이라고, 프랑키는 떨떠름한 표정을, 브룩은 아무말 없이 차를 마셨다. 쵸파는 만셸리에게 도움을 받지못한 도플라밍고를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일주일이 흐르고, 여전히 도플라밍고는 베드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매일 악몽을 꾸는듯 흐느끼는 소리에 나미가 질색을 했지만, 쵸파는 나아가는 와중이라 그렇다며 나미를 안심시켰다. 그가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통째로 갈기갈기 잘라버릴 같은 형색에 조로도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렇듯 아무 없이 수련에 열중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쵸파가 들고나오는 붕대에서 핏자국의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어날 같다는 이야기에 안이 다시 술렁였으나 루피가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다들 말을 삼켰다. 어째서 루피가 저와 목숨을 걸고 싸운 이를 힘들게 업어와서 심지어 모든 악의 근본인 사내를 자기 배에서 치료시키려 하는지. 그것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로빈 만이 미묘한 웃음으로 제일 가까운 추측을 하곤 있었다. 왜냐면, 또한 루피에게 그렇게 구원받았기에

 

그가 깨어난 것을 제일 먼저 목격한 상디였다. 화장실 빼곤 그의 주변을 지키던 쵸파였지만 과로에 졸고  있던 탓에 간식이라도 넣어줄까 싶어 먹을 것을 들고온 상디가 그의 미묘하게 달라진 숨소리를 눈치챘다.  그의 발목에 채워진 해루석 수갑때문에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상디였지만, 약간의 경계는 늦추지 않으며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마실거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마른 입술을 달싹이다 힘없이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상디는 쵸파의 쟁반에서 물컵을 들어 그의 입술에 대어주었다. 꼼짝하지도 않는 그의 모습에 상디는 내밀었던 물컵을 도로 쟁반 위에 올려놓곤 쵸파를 깨웠다. 환자는 의사에게, . 몇번 흔들자 고개를 드는 쵸파는 환자의 상태부터 눈치챘는지 작은 발로 내려와 청진기를 들이밀었다. 손끝도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상디가 넌지시,

 

"미음이라도 끓여올까?"

", 양은 아주 적게 해줘. 바로 뭔갈 많이 먹지는 못할거야."

 

루피는 다르지만. 헤헤 웃는 쵸파를 뒤로하고 상디는 도로 부엌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던 로빈에게 녀석이 깨어났다는 말을 전하곤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머. 로빈은 빙그레 웃으며 갑판 위에서 시끌벅적하게 놀고있는 루피와 우솝, 프랑키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우솝과 프랑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루피가 주먹을 쥐었다. 내가 볼게. 결연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루피를 보고 조로도, 로빈도, 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뛰어온 나미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루피가 들어가자 그는 몸을 꿈틀거렸다. 아직 움직이면 안돼! 라고 외치는 쵸파의 말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려는 그를 루피가 강제로 눕혔다

 

"쵸파가 아직 움직이지 말래. 쵸파는 유능한 의사니까 말을 들어야해."

 

그는 흐릿하게 사이로 증오를 내비쳤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이 루피를 매섭게 쏘아보다 곧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다시 달싹였으나, 이내 포기하곤 몸에서 힘을 뺀 채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너 이주만에 일어난거야. 종알대는 쵸파의 목소리가 도플라밍고의 귀에 꽂혔다. 그는 눈꺼풀조차 미동하지 않았다. 루피는 도플라밍고의 치료약을 제조하는 쵸파의 옆에 앉아서 발을 까딱이며 눈을 감고 있는 도플라밍고를 내내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느끼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밀짚모자. 너는 어째서 날 살린 것이냐. 마음 속에 꾹꾹 눌러담은 의문이 똘똘 뭉쳐 가슴을 세게 내려치는 기분이 들었다. 저의 몸에는 힘이 없었다. 2주동안 잠을 잤다는 이야기는, 이미 이 배에 태워져서 드레스로자와는 먼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일까. 그는 녀석의 동료들에게 당한 제 패밀리를 떠올렸다. 분노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잡혀버린, 패배한 노예였다. 이제 이 녀석들이 자신을 팔아먹든 이때까지의 복수를 위해 죽여버리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승자가 정의다. 자기가 항상 말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루피와의 싸움에서 승자는, 도플라밍고 그 자신이 아니었다. 


'나는…패배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없었다. 도플라밍고는 혀를 깨물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곧 관두었다. 그는 남을 상처입히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제 몸을 스스로 상처입히는 것에는 굉장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도 아마, 어릴 적 그 사건 이후겠지. 평소때엔 제가 상처를 입힐 리가 없었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것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와버린 상황에 대해 헛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다른 패밀리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후지토라 녀석에게 다 붙들려 임펠다운으로 끌려갔을까. 자신이 없는 돈키호테 패밀리는 더 이상 칠무해로서 남아 있을 수도- 아니, 그 전에 이미 나라를 하나 말아먹은 것에 의해 이미 칠무해의 자리에서는 쫓겨났을 터. 다른 패밀리의 걱정에 잠시 생각이 미쳤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 이후의 걱정이었다. 현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쉽게 확정짓기는 어려웠다. 도플라밍고는 손끝 하나도 까딱일 수 없는 제 몸을 향해 쓴 웃음을 날렸다. 



*



첫날은 미음 한 입, 둘쨋날은 세입, 등 천천히 미음의 양을 늘려가고 물도 입술을 적셔주는 것에서 입 안에 흘려넣어주는 것, 그리고 입에 대 주는 것 정도로 천천히 방법을 바꾸어가며 도플라밍고의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루피는 매일 한두번씩 그의 방을 들락거렸다. 도플라밍고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밝게 웃거나 농담따위를 하며 쵸파와, 혹은 그 외의 멤버들과 시시덕거렸지만 늘 도플라밍고와 눈을 맞출 때면 진지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음식을 먹어도 아직 말 하는 것은 무리라며 말하는 의사 때문에 도플라밍고는 일어난지 1주일이 되어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의외로 착하게 말을 잘 듣는 그의 행동에 쵸파는 꽤나 놀라면서도 안심하고 있었다. 이윽고 저 혼자 팔을 움직이거나 도움을 받아서 가까스로 앉을 수 있게 될때까지 도플라밍고는 아무 내색없이 묵묵히 치료를 따랐다. 이제 어느정도 쵸파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정도로 회복한 도플라밍고는 로빈이 가져다준 신문을 읽거나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등의 것으로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루피는 자주 드나들었다. 귀찮다는 티 조차 내지않는, 아예 있다고 인식조차 하지 않는 듯한 그의 모습에 질린 다른 멤버들과 달리 루피는 여전히 하루에 두어번씩 들러 도플라밍고의 옆에서 가만히-물론 완전한 정지상태가 아니라 고기를 먹거나 코를 파거나 쵸파의 약을 건드리거나 했지만- 앉아 있었다


도플라밍고가 깨어난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쵸파의 의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듯 도플라밍고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조금 지친듯한 눈으로, 때로는 멍한 눈으로 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굳게다문 입술은 소리를 뱉어내지 않았다. 


"말 하기 싫은 게 아닐까?"


쵸파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이미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거부가 아닐까. 그 의견에 조로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안나온다던지 그런 건 아냐?"

"가능성 있네."


우솝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라도 다친 건 아냐? 쵸파는 고개를 저었다. 목에는 문제가 없어.


"아마 계속 말을 못하는 거면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겠네."


로빈이 턱을 괴었다. 그 말에 나미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까부터 내내 듣기만 하고있던 프랑키와 브룩에게 눈을 돌렸지만 둘 다 머리를 긁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 정말이지 무슨 생각인거람, 루피는. 한탄처럼 내뱉는 나미의 목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루피니까. 누군가가 던진 말이 파문처럼 모두의 사이에 스며들었다. 




*




어느덧 1달이 훌쩍 넘고, 도플라밍고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었다. 몸은 나아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무리를 해선 안되었고, 무엇보다 저번에 루피가 데리고 방을 나갔다가 바다에 빠트릴 뻔한 후로 엄중 간호를 받고있는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침대에 눕거나 앉아있으니 엉덩이와 허벅지등이 짓물렀고 그에 대한 치료도 병행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픈 소리 하나 내지않고 조용한 도플라밍고였다. 짓무른 것이 빨리 낫기엔 몸 상태가 너무 나빴기에 회복은 더뎠고, 쵸파는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그를 방 밖으로 나돌수 있도록 허락했다. 단지 항상 그를 제어할 수 있는 누군가가 붙어있어야 했고, 그 역할은 쵸파-조로-프랑키-상디-로빈-루피 가 되었다. 나미와 우솝은 3미터의 그를 제어하기에 힘들었고, 루피는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드므로 안시키려 하였으나 바득바득 우기는 탓에 억지로 넣어주었다. 그렇게 도플라밍고는, 사우전드 서니 호에 탑승한 지 약 2개월만에 바닷바람을 쐴 수 있었다. 


오랜만에 쐬는 바다향은 낯설고, 정겨우며, 그리고 썼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이지러지고 나서야 제 눈에 눈물이 고였다는 것을 눈치챈 도플라밍고는 키가 큰 것에 감사하며 눈을 깜빡여 눈물을 말려냈다. 2개월간 이 배에서 치료를 받으며, 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 잊었다. 신문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저 눈을 감고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되새기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루피가 제 옆에서 귀찮게 굴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도플라밍고는 그렇게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다시한번 패배를, 이 지독한 쓰림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슴푸레한 빛이 어지러웠다. 


오늘 또한 바람의 향은 달랐다. 어느 곳에서 피냄새를, 어느 곳에서 음식 냄새를 싣고 오는 것일까. 도플라밍고는 쓸데없는 생각을 내달리는 뇌를 가만히 두었다. 오늘 저의 산책 당번은 루피였다. 녀석은 기적적인 회복력으로 약 2주만에 완벽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바보는 회복력도 좋은 건가. 도플라밍고는 제 앞에서 난간에 올라타 발을 까닥이고 있는 루피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이 난간에서 밀어버려도 나쁘지 않을테지. 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마 그라면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 정도로는 바다에 빠지지 않을 터. 도플라밍고는 제 몸을 난간에 기대며 깊게 바다향을 들이마셨다. 


별이 내렸다. 빛을 마저 집어삼킨 바다는 주변을 어둡게 물들이고, 찰싹이는 파도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이제 곧 들어갈 시간인가. 도플라밍고는 멍하니 루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발걸음을 돌릴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난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는데 루피가 난간 위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돌려 그를 향해 섰다. 난간 위에 선 루피의 키는 도플라밍고에게 조금 못 미쳤다. 도플라밍고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뒤의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 그 모든것이 루피에게 스며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어둠의 앞에서 이다지도 빛나는 사람이, 왜 내가 아니라 너인지. 도플라밍고의 눈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한가득 눈물을 고여냈다. 루피는 묵묵히, 평소답지 않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루피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플라밍고는 폐부 한가득 어둠을 들이마셨다. 들이마신 어둠은 호흡을 타고 눈물에 전해지는지, 무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저를 말없이 쳐다보는 루피에게 눈물을 보기는 것이 꼴사납다 여겨, 도플라밍고는 고개를 홱 하니 돌렸다. 


밤과 슬픔과 기억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한번 흘러내린 무거움은 쉴새없이 도플라밍고의 뺨을 적셨다. 눈물이 제 모든 것을 흘려버릴 듯한 두려움에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여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볼을 적시는 뜨끈한 것이 제 몸의 전부인 것 마냥 하염없이 들썩이며 도플라밍고는 소리없이 울었다. 그의 모든 것은 이제 모두 바다로 침잠해 버리는 것일까. 그치지 않는 흐느낌사이로 루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 잡아줄테니까."


피가 나도록 움켜쥔 주먹 위로 온기가 다가왔다. 도플라밍고는 그 온기를 물리치지 못했다. 조금 더운 손길이 제 손 위를 덮었다. 온기가 손을 파고들어 가슴을 붙들었다. 이미 그 곳엔 드레스로자를 지배하던 국왕은, 천룡인의 후손은 없었다. 단지 한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상처투성이인, 그러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불쌍한 사내. 루피의 손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도플라밍고의 눈물을 닦아내었다. 서툰 손길. 그 끝에는 아직 그가 눈치채지 못한 애정이 뚝뚝 흘러 넘쳤다. 


미안. 루피의 말이 차마 입을 나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네 패밀리들 모두 구하지 못해서 미안. 너만 데려와서 미안. 널… 데려와서 미안. 


그를 안아줄 수도, 달래줄 수도 없는 루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제 온기를 나눠주는 것 정도일까. 루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손을 모아 도플라밍고의 조금 차가운 손에 얹었다.


자, 내 온기를 가져가. 내가 너를 안아줄 수 없는 슬픔만큼.





 

 ---

루돞 50제 첫타는 25번으로 끊는다!

25. 손을 잡아주고 싶은데 / 안아주고 싶은데 / 왜 내가 조심스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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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보에이가 많네... 타르트님의 영향인가..! 에이사보도 좋지만!! 


무튼 서울에서 전학온 사보라는 남학생...과 서울 남학생을 극딜하는 부산 일찐 에이스. 에이스가 맨날 시비털고 그러는데 첨에 며칠간은 사보가 꾹 참았음. 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서. 근데 에이스가 짱인거 같거든, 그래서 에이스만 꺾음 학교생활 편하겠다싶어서 제대로 에이스랑 붙었는데 무승부인 거. 사보도 서울에서 일찐물 좀 먹고 산 남고생이었던거짘 에이스도 의외로 비실해보이던 사보가 보통이 아니라서 깜짝 놀라고, 그때부터 배틀호모의 역사가 시작이 되는데..! 부산 싸나이 에이슈는 특유의 친화력&쿨함으로 사보를 맘에들어서 계속 뱅뱅 주위 맴돌고 사보가 귀찮다는 듯 손짓하면 낄낄거리면서 책상 자꾸 걷어차고 그러는ㅋㅋ 수업 시간중에도 자꾸 꼼질꼼질 괴롭히고 그러는ㅋㅋㅋ 


아님 에슈가 사보랑 진짜 퐈잍떠서 내내 둘의 신경전때문에 고등학교 피말렸으면ㅋㅋㅋㅋㅋㅋㅋㅋ 예술계 고등학교인거짘 사보는 바이올린 그런거 잘어울린답! 그리고 에슈는 뭐냐... 조각 같은? 사보는 바이올린 케이스 붕붕 휘두르면서 싸우곸ㅋㅋㅋㅋ 에슈는 조각칼로 존나 위협..근데 칼부분 아니구 뒷부분 그 나무손잡이? 그거를 무슨 무기처럼 쓰는거짘ㅋ 물론 칼은 손다치니까 빼고. 약간 광기어린 캐도 좋고.... 


하루가 멀다하고 싸워서 맨날 교무실에서 벌서고 복도에서 벌서고 그랬는데 이상한데서 쿵짝 맞아라. 예를 들면.. 덕질 같은? 에이스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존나 기분나쁘다는 표정으로, 건들면 다 죽일거란 표정으로 씨이발... 이러면 애들 다바들바들떠는데 사실 알고보면 사보가 자기 최애캐 네타에 나온다고 말했는데 그게 구라였던ㅋㅋ뭐 그런? 아님 사보가 맛있다고 했던 케이크가게 초코케익이 자기 코앞에서 다 팔려서 존빡친ㅋㅋㅋㅋㅋ 먹는 거에 엄청 민감한 에이스니까ㅋㅋㅋ짜증나서 책상 발로 까고 뒤집어엎고 난리지랄을하곸ㅋㅋㅋㅋ근데 사실 알고보니 사보가 일찍 등교하면서 에이스몫까지 사둔거.. 그래서 이글이글끓어 터져넘칠듯한 분노가 가라앉는... 사보는 한정판 씨디를 동생이 뿌셔먹었는데 화는 차마 낼 수 없어서 하루종일 반을 무겁게 물들이는 오오라를 풍풍 뿜으면서 있고. 물론 동생은 루피 ㅋㅋ 반 애들은 미친놈이 둘이나 있다면서 부들부들. 

 그 날은 바닷빛이 유독 푸르른 날이었다. 상디는 그렇게 기억했다. 물 빛이 푸른 날은 밤 바다가 한층 더 맑았다. 마치 쏟아지는 별빛을 한 컵 가득 담아낼 수 있을 것 처럼. 에이스가 아닌 루피의 다른 형제. 사보에 대한 상디의 첫 인식은 그정도였다. 그 외에 그를 정의할 단어가 상디에겐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알라바스타에서 에이스가 그랬듯 이번 인연도 쉽게 스쳐지나가겠지. 상디는 후추를 갈아내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보았다. 식당이 평소보다 더 살가웠고 힘찼다. 이미 사보를 부여잡고 한바탕 눈물콧물을 쏟아낸 후 조잘거리며 어린 아이마냥 사보를 부여잡고 얘기를 하는 루피와 늘 그렇듯 흥미 없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조로, 코알라라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레이디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솝과 쵸파는 루피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주고 프랑키는 배를 수리하러 나가고 없었다. 


"아, 상디 씨. 차 한잔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아아-."

브룩이 어느새 비어버린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그의 차 사랑은 실로 엄청나서, 배 안에는 늘 찻잎이 대량으로 실려있었다. 나미 씨가 농담으로 배가 가라앉으면 주변이 찻물바다가 될 거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상디는 브룩이 손짓하는 차를 꺼내주며 다시한번 힐끗 루피네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 같은 루피를 마주보고 사랑스럽다는 듯 응응 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보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상디를 향해 방긋 웃었다. 그 순간 시간이 조금 느려진 듯한 착각. 조금은 얼룩진 바닥이 삐걱이며 그의 웃음을 담아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제가 가벼운 에피타이저로 만들던 음식이 꽤나 본격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불판 위에서 벌겋게 달아오르는 새우 몇 마리가 크림 가득한 몸을 제멋대로 선보였다. 젠장. 상디는 혀를 가볍게 한번 차고 메인 요리로 전환시켰다. 찻물을 내린 브룩이 요호호호 웃으며 몸을 돌렸다. 창가에 걸어둔 마른 꽃에서 얇게 마른 붉은 꽃잎이 떨어졌다. 상디는 두어장 남은 꽃잎을 가냘프게 달고있는 꽃다발을, 이제는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디, 라고 했나?"
"…아아. 루피 형씨 아냐."

사보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다구. 그는 짧게 웃으며 상디의 맞은편에 삐딱하게 섰다. 어느새 다른 녀석들은 밖에 나가버린 걸까, 식당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의 손에 마른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상디의 눈이 커졌다. 아까 제가 갈아두려 했던 것. 턱짓으로 그걸 가리키자 그가 눈치챈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장갑 위에서 바스라지는 꽃다발이 아슬아슬해보였다. 

"다 마른 거 같아서 말이야. 내가 새 꽃으로 갈아 끼워도 될까?"
"그래주면 좋지."

상디의 입에 웃음이 잠깐 걸렸다. 사보는 꽃다발을 쥔 손을 살짝 폈다 다시 쥐었다. 손에서 화르륵 하고 불이 치솟았다.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르고 꽃잎을 잃은 추한 꽃다발은 사보의 손에서 한 줌의 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능력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 어색하게 미소짓는 그를 보며 상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 또한 이 나이가 되어 악마의 열매를 먹는다면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보면 에니에스로비의 녀석들, 열매를 먹자마자 싸웠던 거 같은데 꽤나 대단했던 건가. 상디는 잡다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잠시 숙였다 들어올렸다. 사보의 눈이 지긋이 그를 향했다 떨어졌다. 상디가 재료를 손질하는 쪽에 다가가 제 몸을 기울여 그의 하는 양을 구경했다. 정갈하게 잘려진 고기들과 새파랗게 날이 선 칼날, 그리고 손의 상처들. 사보는 저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손에 상처가 많네."
"뭐, 일단 요리사니까 말이야."
"꽤나 멋진 걸."
"감사."

사보의 굽슬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흉터. 상디는 그 흉터에 잠시 눈을 두었다 내렸다. 상디의 구역에 제멋대로 침범한 이 치곤, 그는 꽤나 신사적이었다.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는 이윽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밖에 녀석들한테 가 보지 그래. 상디의 조금 퉁명스러운 말에도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걔네들 이야기는 대충 다 들었으니까 괜찮아. 그러는 그에게 상디는 한숨을 내쉬며 로빈양을 위해 만들어두었던 아이스크림을 내주었다. 로빈양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지만 꽤 담백하니까 그도 좋아할 듯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자마자 꽤 밝은 표정으로 바뀌는 그를 본 상디는 잠깐 웃음을 그렸다. 

"저기, 상디."
"엉."
"에이스… 말이야."

조금 뜸을 들이는 듯 말을 꺼내는 사보. 상디는 그런 그를 힐긋 쳐다보곤 다시 도마로 눈길을 돌렸다. 에이스의 이야기라니. 그 자신이 아는 것은 알라바스타, 그 모래 폭풍의 속에서 만났던. 의외로 상식적이고 쾌활했던 루피의 형. 그 정도였다. 흰수염 배의 대장이던가. 다 피운 담배 끝을 오물거리며 옛 기억을 되살려보는 상디의 귀로 사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썼던 기술이라던지, 혹시 기억해? 상디는 오물거리던 담배를 퉷 하고 뱉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었다. 기술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엄청난 위력이긴 했었다. 거대한 사막 몬스터를 통구이로 만들어버리는 정도였으니까. 

"글쎄, 요리하기 참 좋을 듯한 기술이라고 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과연 요리사 다운 생각인걸?"

사보가 빙긋 웃었다. 그럼 나도 네 요리를 도울 수 있을까? 두 손을 장난스럽게 뻗어보이며 손 끝에서 불을 일으키는 사보를 보고 상디가 고개를 삐딱하게 젖혔다. 불조절을 잘 한다면 말이야. 상디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보의 몸에서 발화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불의 입김에 휩쓸렸고 의도치 않았던 일인 듯 사보의 얼굴에 당혹이 비쳤다. 재빨리 근처에 있던 물 양동이를 들어 사보를 적신 상디는 자기가 부은 물 양동이가 냉동된 생선을 녹이던 얼음물이었다는 사실과 어짜피 능력자인 사보는 아무 피해가 없고 애꿎은 의자만 홀랑 타버렸다는 사실을 늦게 눈치챘다.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땐 이미 사보는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어… 음… 고마워…?"
"…미안."

상디가 멋쩍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손님에게, 그것도 선장의 형이자 혁명군의 2인자라 소문이 무성한 이에게. 일단 옷부터 말려야겠군. 젖은 옷을 하나씩 벗는 사보를 앞에두고 상디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어깨에서 무겁게 떨어지는 코트와 목을 축축하게 감싼 셔츠. 방울방울 물기를 떨어트리는 머리칼. 자신과 같은 금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느낌에 상디는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옷을 벗다말고 상디를 쳐다본 사보는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미안하지만 옷 좀 빌려주겠어? 



밤바다가 거룩했다. 넘실거리는 물결 아래에 존재할 각종 재료들을 상상하며 상디는 낮에 있었던 일을 머리에서 털어내려 애썼다. 담배연기가 뿌옇게 어두운 하늘 위로 스며들었다. 입 안에서 혀로 이리저리 굴리던 연기들은 후우 하는 날숨과 함께 상디의 각종 고민을 싣고 흩어지는 듯 했다. 옅게 흩어진 담배 연기사이로 별똥별이 하나 긴 꼬리를 달고 바다로 잠겼다. 오. 짧은 감탄과 함께 눈을 끔뻑이던 상디는 소원을 빌지 못했다는 걸 인지하고 아쉬운 듯 입을 다셨다. 

"별이 내리는 밤이네."
"…형씨?"

사보라니까. 그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조로의 옷은 도무지 입어줄 만한게 못 되어, 제 셔츠를 건넸더니 저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탓에 허리쪽 단추 두어개만을 겨우 잠근 그는 상디의 반바지를 조금 타이트하게 입곤 약간 껄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묘한 모습에 상디가 픽 하고 웃음을 짓자 따라 웃는 사보의 웃음이 싱그러웠다. 새 담배를 꺼내려 담뱃갑을 열자 자잘한 담뱃가루만 남은 텅 빈 꼴에 담뱃갑을 한 손으로 구겼다. 그런 상디의 앞으로 담배가 내밀어졌다. 형씨…아니, 사보. 흡연자였어? 의왼데? 상디의 동그란 눈에 담긴 사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네 옷이잖아. 주머니에 들어있던데. 가슴 주머니를 툭툭 치는 사보에게서 담뱃갑을 받아든 상디가 두어개비 든 것을 확인하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그의 흰 손가락이 다가왔다. 장갑도 젖어서 벗어버린 것인지. 깨끗할 줄 알았던 흰 손의 군데군데에는 상처와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이 일었다. 어두운 주변을 순식간에 밝히는, 조금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작은 불꽃. 불꽃은 푸석한 담배잎 사이로 스며들어 온기를 나누곤 스르륵 사라졌다. 땡큐. 상디가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사람은 죽으면 말이야, 누군가의 수호신이 된대."

사보가 짤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상디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헤에, 하고 낮은 호응을 해 왔다. 사보의 얼굴에 순간 스친 후회와 아쉬움의 표정을 캐치해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마, 에이스의 이야기겠지. 루피의 형인, 그리고 우리와도 꽤나 인연을 쌓았던 에이스는 2년 전 정상전쟁에서 해군 대장의 손에서 루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루피의 형이라는 에이스. 루피의 형이라는 사보. 아마 셋은 꽤나 끈끈한 유대로 다져진 관계였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보았던 루피의 태도가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했다. 상디는 폐부를 연기와 바닷바람으로 채웠다. 사보의, 조금 마른듯한 입술이 다시 열렸다. 

"에이스는, 아마 루피의 수호신이 됐을거야."

녀석, 아닌 척 루피를 엄청 아꼈었으니. 그의 말에 상디 또한 공감했다. 루피의 주위 모든 인물에게서 위험요소를 훑어내던 그, 속성과 다른 얼음같은 눈동자를 잊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는지 사보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난 네 수호신이 되고싶어."

사보가 밤하늘처럼 웃었다. 그의 웃음에 별무리가 내려앉은 것일까, 상디는 담배를 문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나서야 겨우 한 모금 빨아들일 수 있었다. 쿨럭 하고 사래가 들린 듯 젖은 기침이 나왔다. 기침이 잦아지고 나서야 그는 물을 수 있었다. 대체 왜…? 그의 물음에 사보가 몸을 돌려 제 두 팔과 배 난간 사이로 상디를 가두었다. 어안이벙벙한 채로 그를 올려다보는 상디를 내려다보며 순식간에 이마에 쪽 하고 키스한 사보는 구불거리며 흘러내린 머리칼로 상디의 볼을 간지럽혔다. 글쎄, 이유가 뭘까? 의문형인 대답이었지만 답이 뻔히 보이는 물음에 상디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타들어가는 담배가 상디의 손 끝에서 아슬하게 걸려있다 바다 위로 도망쳤다. 키스해도 돼? 별들이 어둠의 장막에서 빼꼼이 나와 반짝였다. 달빛이 두 사람의 금발에 섞여 내리는 밤, 푸른 밤 바다는 달과 별, 어두운 하늘과 두 사람을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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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님 @MONSTERx_xMODE  리퀘로 사보산... 길이 조절을 장렬히 실패하고 인크루트 기준으로 3833자.....

왜때문에 저는 리퀘를 두번 다 이 새벽에 쓰는걸까욬ㅋㅋㅋㅋㅋㅋ 헤헤 에밀리님 에이산 사약 영업해주셔서 토테모 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
그리구 징베 오야붕 갠봇 오셨을때 젤 먼저 축하해주셔서 넘 감사해욧!!!!! 진짜 에밀리님 제가 많이...많이 아껴요..흑흑 사랑합니다!!!!!



+사담) 징베 오야붕 와주셔서 넘넘 좋은!! 우리 헤어지지말아요!(?) 알랍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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