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어디야? 만나러 가도 돼?

-어느 호텔이야? 할 말 있으니까 만나고 싶은데.


키드는 탁탁탁 메일을 쓰다 지웠다를 수십번 반복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제가 아무리 일본어로 메일을 써 봐야 저 쪽은 번역기를 돌리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상하지 않게 쓰고 싶다고!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앞에 있던 가게 셔터를 발로 쾅 하고 찼다. 셔터가 웅웅 소리를 내며 세차게 울었다. 아, 뭐야- 놀랬잖아. 투덜거리는 같은 무리 녀석들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들은 그의 목소리가 귀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목소리도 예뻤던 거 같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화악 달아오르는 얼굴 때문에 괜히 성질을 내며 셔터를 한번 더 걷어찬 키드에게 담배를 물고 있던 녀석들에게서 불평이 터져나왔다. 


[뭐야? 시끄럽잖아, 자꾸.]

[하… 미안. 별 거 아냐.]

[기분 더러우면 담배라도 피던지, 자.]


키드는 제게 건네지는 담뱃곽을 밀었다. 아냐, 지금 담배고 뭐고 피울 기분이 아냐. 고민고민하다 완성한 문장은 결국 


-만나고 싶은데 어느 호텔이야? 


였다. 마지막에 '내가 갈게'라는 말을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키드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온 한 녀석이 대뜸 송신 버튼을 눌러버렸고, 으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메일은 그대로 송신되었다. 


[미쳤냐!!!!]

[아, 왜 그렇게 화내냐? 새삼스럽게.]


친구들이랑 자주하던 장난이긴 했지만 지금은… 지금 건 아니었다고! 키드는 말 못하는 울부짖음을 짜증으로 순화해 가게 셔터를 한번 더 걷어찼다. 메일 하나 보내는 데 이렇게 지치다니. 휴우, 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빠져나가는 기운. 그는 자리에 털퍽 주저앉았다. 학교에 돌아가서 가방을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은 1g도 들지 않았다. 해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적막한 곳에 때때금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야, 담배 줘 봐. 키드는 옆에 있던 녀석의 담배를 냉큼 뺏아들곤 불을 붙였다. 하얗게 빠져나가는 연기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분. 연기 끝에 어른어른하게 아까 그 녀석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했다. 


부이잉- 부이잉- 


[!!]

[너 진짜 그 벨소리 좀 바꾸라니까.]

[시꺼, 닥쳐봐.]


메일이 도착한 소리에 급하게 잠금을 풀고 메일함을 열자 보이는 낯선 주소. 그 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꾹 눌렀다. 그에게서 온 메일은 일본어로 깨끗하게 번역되어 있었다. 나도 번역 해서 보낼 걸 그랬나. 키드는 잠깐 후회했지만 그것보단 그의 메일 내용이 중요했다. 눈이 급하게 움직였다. 


- XXX호텔에서 묵고 있어. 저녁 10시부터 자유시간이니까 그때 잠깐 나갈 수 있을지도.


[오예!!!!!]


키드는 펄떡펄떡 뛰었다. 제가 읽은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사실은 너무 만나고 싶어서 환각을 본 거라던가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읽어보았지만, 확실했다. XXX호텔이라면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10시라고?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다지 문제되지는 않았다. 지금이 5시니까, 앞으로 다섯시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탓에 액정에 땀과 지문이 묻어났지만 키드는 개의치 않고 제 옷에 몇번 대충 닦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봤지만 분명히 제가 아는 단어였고, 언어였고, 내용이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손 끝에서 떨리는 담배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담배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담배 따위 피울 수 있을 리가.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담배를 땅에 던지자 주위 친구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야, 나 집 갔다 올게.]

[에? 지금 간다고?]

[엉. 지금.]


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녀석이 쭈그리고 있던 무릎을 피며 몸을 일으켰다. 멍청아, 오늘 집회야. 곧 출발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그제서야 오늘 제가 소속된 폭주족의 집회가 있는 날인 걸 깜빡 했다는 게 생각났다. 아, 젠장. 키드는 땅에 침을 뱉었다. 집회, 몇 시에 끝나더라? 그의 말에 노란 머리의 녀석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9시쯤 끝나지 않을까- 라고 중얼거렸다. 


'9시면… 그래, 괜찮아. 그정도면.'


9시에 마친다고 쳐도 집에 가서 씻고 나올 시간은 될 듯 했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지만 두번째 만남에는 깨끗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






헉헉거리며 도착한 그 곳, XXX호텔. 키드는 숨을 고르며 제 애마를 주차시켰다. 평소보다 늦게 끝나는 집회에서 억지로 빠져나온 탓에 씻지도 못한 건 물론이요, 10시가 훨씬 넘어 도착한 해 헉헉거리며 호텔 프론트로 향했다. 급하게 뛰어가서 프론트에 대고 한국에서 온 남자고교생들 있죠? 라고 윽박지르던 그의 등 뒤로 콕콕 찌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 뭐야?!]


한껏 짜증내며 뒤를 돌아본 그의 앞엔 새카만 눈이 마주하고 있었다. 로우였다. 제가 방금 짜증낸 것 조차 잊고 어버버 거리는 키드의 소매를 붙잡고 박력있게 끌고나온 로우는 그를 호텔 문 밖까지 끌고 나와서야 소매를 놓아주었다. 호텔 밖의 바람이 시렸다. 로우는 저를 끌고 나와서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항 한번 못하고 끌려온 키드는 로우의 모습에 땀만 뻘뻘 흘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호텔 로비에서 시끄럽게 굴어서 화났나? 너무 늦었나? 많이 기다렸으려나? 그게 아님 나 땀냄새 나나? 아무 말 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로우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토, 토라- 토라파루-]


더듬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들었다. 키드보다 조금 작은 그는 키드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발음 존나 구린데? 다시 따라해봐. 트-라-팔-가-로-우-."

[토, 토-라-포-아-루-]

"아, 됐음. 그냥 로우. 로-우."

[로-우, 로-우.]

"잘했어."


로우가 빙긋 웃으며 키드 팔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리곤 핸드폰 액정화면을 수줍어하는 키드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아, 번역기를 쓰고 있었던 건가. 키드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너 이름이 뭐랬지?

[유스타스 키드]

"유스타스 키드? 이름 간단하고 좋네."

[응, 유스타스 키드.]


헤벌쭉하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줄 모르는 키드. 로우가 대체 뭐라고 말하는 지는 모르지만 제 이름을 불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헤헤 넋 빠진 사람처럼 웃으며 옆에서 꼼질꼼질거리고 있자 로우가 픽 하고 웃었다. 로우가 웃는 얼굴만 봐도 그저 좋은 키드는 뭘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그의 얼굴이 닳도록 쳐다만 보고 있었다. 때마침 요란하게 우는 배꼽시계. 키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야, 너 아무것도 안먹었냐?"

[음… 미안.]


머쓱한 듯 머리를 벅벅 긁는 키드를 보고 아까 봐 두었던 편의점에 갈까 싶어 로우가 손목을 잡고 이끌자 종종종 따라오는 키드.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빌딩의 불빛, 그리고 눈아프게 빛나는 차들의 헤드라이터를 뚫고 횡단보도를 차분히 건넌 로우가 편의점 앞에 도달해서 키드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우르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차 엔진소리, 손님을 부르는 삐끼의 외침 사이에서 너 안 먹어? 라고 묻는 로우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날아와 꽂혔다. 그를 물끄러미 보는 로우를 보며 배를 긁적이던 키드가 잠깐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편의점 말고.]

"? 뭐야, 안먹어? 배고픈 거 아냐?"

[음….]


키드는 다시 로우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젖히며 안먹냐고 물어보는 로우의 얼굴에 잠시 넋을 잃다가 제정신을 차렸다. 이 근처에 자주가는 라면 가게가 있었지. 로우에게 그걸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편의점에 끌고 들어가려는 로우의 손을 역으로 이용해 팔목을 탁 하고 움켜쥐었다. 뭐냐, 싶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는 로우를 가볍게 당기며 손짓을 했다. 


[저기, 맛있는 라면 집 있는데 거기 가자. 내가 살게.]

"? 뭐라는거야? 저 쪽 편의점 라멘 먹고 싶다고?"


로우나 키드나 상대의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일단 키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자 작고 허름한 라면가게가 나왔다. 밥 먹은 지 얼마 되지않은 로우는 그닥 라면이 땡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현지인이 안내하는데 돈아깝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얼마되지 않아 라면을 두그릇이나 먹고 나온 그는 남고생의 위장이란 블랙홀과 같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계산하려 지갑을 꺼내자 키드가 두 손을 펄럭펄럭 내저으며 그를 가게 밖으로 밀어내곤 제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키드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로우를 보며 덩치에 맞지않게 쑥쓰러워하던 키드가 지갑을 교복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넣었다. 로우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지갑을 그렇게 구겨넣으면 어떡하냐? 옷 구겨지잖아."


교복 셔츠가 지갑과 함께 바지주머니에 밀려들어간 것을 혀를 차며 꺼내주자 키드 얼굴이 홍당무처럼 타올랐다. 여기 어디 밤 거리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리고 로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일본 녀석, 나한테 반한 거 맞는 것 같다고. 잠깐만- 하는 로우의 말과 함께 징징거리는 진동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얼굴이 빨개진 채 열심히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있던 키드가 다시 로우 쪽으로 얼굴을 돌릴 때 쯤은 이미 번역기 어플의 문장은 완성되어 있었다. 


-당신이 나 이상적으로 좋아합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키드가 몇 번을 읽더니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 하자 로우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빙빙 돌려서 말해주려고 하니 번역기가 말썽이었다. 이 놈은 대체 어쩌자고 내가 외국인인 걸 알고도 붙드는 걸까? 로우는 번역기어플의 문장을 지운 후 다시 써내려갔다.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있는 키드로썬 낯선 꼬부랑 글자를 두 엄지로 빠르게 쳐 내는 로우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후 번역을 누르자 나타나는 문장에 키드는 먹었던 라면을 코로 토할 뻔 했다. 


-너, 나랑 섹스 하고싶어?


[무, 무슨!! 그런!! 그런…!]


공중으로 펄쩍펄쩍, 그것도 백구십도 훨씬 넘어보이는 거구가 길거리에서 펄떡펄떡 날뛰는 꼴은 보기가 좀 그러했던지라, 로우가 그의 소맷자락을 꽉 쥐고 끌어 내렸다. 진정하고 할 말 있으면 번역기 돌려. 로우가 핸드폰을 가리키자 얼굴이 터져버릴 듯 붉어진 키드가 우는 소리를 내며 떨리는 손으로 문장을 적어내렸다. 한참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던 키드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보여주었다. 손의 떨림과 함께 진동하는 탓에 글을 읽기가 힘들었던 로우가 키드의 손을 부여잡고 글을 읽자 손을 잡았다는 느낌에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는 키드.


-하고싶다…하지만 역시 무리일까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교제 후


푸흑. 로우의 웃음이 터졌다. 번역기라는 거, 이렇게 재밌는 거였구나. 한번 시작된 웃음은 입술에 스며들듯 번졌고 결국은 온 몸으로 번져 로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끅끅거렸다. 키드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차마 제 손을 로우의 손아귀에서 빼고 싶지는 않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던 로우가 제 핸드폰을 꺼내 다시 뭐라고 톡톡거렸다. 키드는 그제서야 해방된 제 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손에서 로우 향 난다….'


제 손에서 나는 낯선 향에 더 수줍어진 키드는 손에 얼굴도 묻지 못하고 팔에 얼굴을 비볐다. 사랑에 빠진 소녀도 아니고, 이 나이에 무슨 일이래. 징징거리는 키드의 눈높이에 맞추어 쪼그려앉은 로우가 그를 툭툭 쳐서 고개를 들도록 한 후 환한 액정화면을 그의 코 앞으로 들이댔다. 벅벅 얼굴을 비빈 탓에 눈이 벌개진 키드가 액정을 보자 액정에 떠 있는 말은 아까전 보다 더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너 귀엽네. 나 남자는 처음인데 너라면 괜찮을지도. 성병 없지?


[?!]


아까보다 더 펄쩍 뛰는 키드를 보며 재밌는 장난감을 보듯 킥킥거리는 로우. 이야, 너 높이뛰기 해도 되겠다. 로우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이미 들리지조차 않는 듯한 키드는 뛰다 못해 뒤로 벌러덩 넘어졌고, 로우는 그를 보며 한참이나 웃다가 허겁지겁 일어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지도 못하고 무시하지도 못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우의 손가락을 하나 가볍게 터치하곤 제 힘으로 일어난 키드. 울 것 같은 얼굴의, 아니, 이미 울고 있는 듯한 키드의 얼굴 앞으로 핸드폰을 다시 들이댔다. 이번엔 또 뭐야- 키드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액정이 위험스레 번득였다.


-모텔, 가자


[끄아아악!!]


신주쿠 밤 거리에 괴상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옆에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섞인 채.












---------


아... 제목 뭐하지. 그냥 여기서 끊을까...? 더 써? 말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