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흐느적대는 저녁 바다에 한줄기 소란이 날뛰었다. 소리의 중심에는 작은 배가, 그리고 그 배 위에 넘실대는 두 사내의 거친 투닥임이 노을을 휘저었다. 


도플라밍고는 예의 그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들러붙는 루피의 고무 팔을 밀쳐냈다. 루피의 팔은 그의 실을 피하고 피하다 괴상하게 뒤엉켜 결국은 다른 크루들의 짜증까지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제서야 조금 수그러든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 긴 손가락을 두어번 흔들었다. 조종되던 실이 모두 끊어지고 루피가 다시 몸을 추스리기 전, 도플라밍고는 그의 몸을 잡아 질질 끌고 배의 후미로 향했다. 


상디의 담배연기가 높게 올라 흔들렸다. 사랑싸움? 그의 장난스런 말에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위협하는 도플라밍고와 묘한 표정을 짓는 루피. 어깨를 으쓱한 검은 다리의 요리사는 바람에 스며든 담배향만 남겨두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두어군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바닥. 루피는 볼을 통통하게 부풀리고 도플라밍고의 다리 한 쪽을 잡곤 늘어졌다. 도플라밍고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번득이는 선글라스에 얼핏 붉은 리본이 비치고, 무언가에 놀란 듯한 그는 루피를 떼어내고 급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까지 쫓지는 못한 루피가 볼을 긁적이다 그의 코트에서 떨어진 깃털 한 조각을 들곤 터덜터덜 방으로 내려갔다. 오후 7시였다. 


하늘로 도망치다시피 오른 도플라밍고는 얼굴에 한가득 구름 내음을 묻혀 돌아왔다. 하늘섬 같을까? 눈을 빛내는 쵸파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고 자리에 앉은 그는 끈질긴 루피의 시선을 끝끝내 마주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여전히 달라붙어오는 루피의 애정공세를 냉정하게 끊어낸 그가 두번째 신문을 펼쳐들었다. 또 신문 봐? 루피의 투정이 들려왔지만 그는 아침에 읽었던 이 신문을, 다시한번 들여다 보는 것 이 외에 관심을 둘 만한게 없었다. 눈이 검은 점자로 향하고, 그것이 하나의 의미로 저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 그리고 그 의미 사이사이에는 루피가 있었다. 


안 돼. 도플라밍고는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루피를 향해 움직이는 손을 저지하고 가까스로 다음 장을 펼쳤다. 저녁이 한참 넘어 도착한 어느 섬에 배를 조용히 댄 그들은 팀을 짜서 생필품을 사러 나섰고, 배를 담당하게 된 루피와 쵸파를 두고 나머지는 각각 배당받은 물건을 사러 마을의 야시장으로 향했다. 


3미터의 키에 시선을 뺏는 분홍색 깃털코트는 누가 봐도 드레스로자의 전 국왕 도플라밍고였기에, 나미의 엄한 명령 아래 코트를 벗어두고 망토를 두른 그는 나미와 조를 짜서 장을 보러다녔다. 야시장의 불빛이 두 사람의 망토를 어지럽혔다. 어둠 아래 또 한 겹의 어둠이 도플라밍고를 감쌌다. 선글라스를 벗지도 않는 그에게 나미가 타박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 어느 옷가게에서 주인과 흥정을 시작한 그녀에게 잠깐 눈을 뗀 도플라밍고는 아무도 모르게 선글라스를 내려 맨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야시장은 육지의 은하수였고, 그는 그 흐름을 버티지 못했다. 몸을 휘청이자 흥정을 하다 말고 나미가 그의 망토자락을 잡아왔다. 괜찮아? 별 거 아니다. 도플라밍고는 짤막한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손이 자꾸 움크러들었다. 코가 씰룩였다. 이윽고 마음은 더 낮은 곳으로 침잠했다. 한계의 물줄기가 말라 있었다. 


"밍고?"


힘들면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나미의 말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다. 도플라밍고는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 하나하나 오롯히 감정이 스며들었다. 어느새 쇼핑을 가장한 협박을 끝낸 나미가 그를 끌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여전히 멍 한 듯한 그의 모습에 혀를 쯧, 하고 찼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나미의 말에 그는 고개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 애매하다는 것의 우울은 그를 좀먹어 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긴 한숨이 침묵을 감싸고 돌았다. 


"밍고!"


익숙한 톤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거의 동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눈물겨운 향기가 품에 안겨 들어왔다. 비틀대다 중심을 잡은 그의 턱 아래에 살랑살랑 검은 머리칼이 춤추었다. 야시장의 불빛에 반사되는 조금 거친 머리칼. 도플라밍고의 크고 길다란 손이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만졌다. 제 손 안에, 제 품에 느껴지는 익숙한 모습에 도플라밍고는 잠깐 넋을 잃었다. 나미가 빙긋 웃는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조용하게 얘기하고 바로 따라 와? 짐 많으니까!"

"응!"


루피는 나미를 향해 빙긋 웃어주곤 아직도 벙 쪄 있는 밍고를 데리고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한두 걸음 나가면 번쩍이는 야시장이지만 그 옆의 기묘할 정도로 한적한 어둠. 루피는 그의 앞에서 대뜸 허리에 손을 얹더니, 자! 나를 안아 주도록 해! 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피식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당당한 그의 모습에 도플라밍고는 손을 내저으려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야시장 초롱을 반사하는 검은 눈동자가 저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파장은 울렁거리며 온 몸을 뒤덮었고, 그것은 새카만 소름과 이어졌다. 그는 천천히 거대한 장신을 구부려 루피를 안았다. 아니, 그의 품에 파묻혔다. 


도플라밍고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루피가 간지럽다고 히힛 웃었다. 웃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마흔 너머 아저씨의 얼굴에 옮았다. 제 품에 안긴 도플라밍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루피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왜 자꾸 피한 거야?"


글쎄. 도플라밍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 안에 온전히 들어온 그의 흔적은 도무지 줄이려 해도, 흐리려 해도 말썽이었다. 내 마음 안에서도 난동을 피우는 군, 밀짚모자. 하루종일 빠져있던 퍼즐의 조각이 온전히 들어맞았다. 퍼즐의 완성도는 모르겠으나, 만족도는 대단히 높았다. 한참 그의 품에서 무언가를 느끼던 도플라밍고는 몸을 떼어 일어나며 루피의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키스했다. 어둠이 흘낏 눈을 돌렸다. 


"오늘은 숨이 막히니 혼자 잘 거다, 루피."


루피. 입 안에 동그랗게 돌았다. 너의 존재와 의미는 이미 내게 고쳐지지 않을 습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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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대의 버릇과 습관 따위가 나를 점점 옥죄어와요 / 숨이 막히니 오늘 밤은 혼자 잠을 잘래요


쏜애플-백치.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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