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 샤워하고 올게."


끄덕끄덕. 키드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겨우 알아들은 샤워, 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먼저 샤워실로 보낸 로우때문에 씻고 나왔더니 옷을 벗고있던 로우를 보고 키드는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로우가 제 뒤에서 바스락거리며 옷을 벗고 샤워실 문을 닫고서야 그 쪽을 힐긋 볼 수 있었던 키드는 가자고 해서 냉큼 따라온 제가 너무 속보이진 않는지 이래도 괜찮은건지에 대한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가 남자랑 해 본 적이 없다는 것. 남자끼린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로우가 들어간 틈을 타 인터넷 검색을 하자 화면에서 살색 향연이 펼쳐졌고 키드는 으아아 소리죽인 신음을 흘리며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솨아아-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키드는 머리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는 걸 느끼며 도로 폰을 주워왔다. 손으로 두어번 털고 다시 연 액정화면엔 아까와 다름없이 살색의 향연이 펼쳐졌고, 그 대부분은 성인 포르노인 듯 했다. 사진을 두어개 넘겨보던 키드는 도무지 볼 만한게 안된다고 생각해 글자로 이루어진 것을 읽기 시작했고 곧 핸드폰을 다시 집어던졌다. 이불 위에 던져진 핸드폰은 폭 소리를 작게 내며 안착했고 키드는 불안감에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샤워기 물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혼자 방 안을 서성거리던 키드는 결국 방 안의 이것저것을 만지다 티비를 틀었고 모든 모텔방이 그렇듯 뉴스와 유료 영화, 조금 오래된 듯한 야동이 흘러나왔다. 뉴스라도 보고 있으면 괜찮으려나 싶다가도 로우가 나왔을 때 모텔방에서 뉴스를 보고있는 남자라는 인식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아예 티비를 꺼 버렸다.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정조관념에 철저한 사람도 아니었고 여자친구 비슷한 것도 있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이 남자라는 것과, 남자 상대로는 경험이 전무한 것은 물론이요 말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건 꽤나 큰 장벽으로 존재했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왜 힘이 들어가는지 모를 하반신과 자꾸 어른거리는 로우의 벗은 몸 때문에 키드는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제 아들내미는 생각보다 너무 건강한 듯 했다. 


샤워기 물이 그쳤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키드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천장과 샤워실을 번갈아 보는데 샤워실의 문이 달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로우가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픈가?!'


키드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로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로우는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 보다 조금 더 발갛게, 그리고 호흡이 가팔라져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껌뻑거리며 그를 쳐다보던 키드는 로우가 몸을 휘청이자 쏜살같이 튀어나가 그를 부축했다. 손 너머로 뜨끈한 열기가 훅훅 넘어왔다. 로우는 저를 붙드는 키드의 몸에 제 체중을 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했다. 아무래도 관계 전 몸을 정갈이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열심히 뒤를 씻어냈더니 꽤나 지쳤다. 이걸 게이커플들은 잘도 해대는군. 로우는 입술을 다물지 못하고 후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제 몸을 탄탄히 받쳐내는 키드의 팔뚝이 느껴졌다. 제대로 물기도 닦지 못한 상태로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한참을 그에게 기대어 서 있었더니 잠깐 움찔거리던 키드가 곧 로우를 안아들어 침대 위로 옮겼다. 키가 작지 않은 로우였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드는 탓에 놀라 눈만 깜빡거리고 있자 그는 로우의 목에 감긴 수건을 풀어 로우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여린 속살을 닦을 때 떨리는 로우의 몸을 보며 얼굴에 피가 한껏 쏠린 키드는 로우의 몸을 다 닦아내고 나자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하반신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존나 크네."

[응?]

"안 들어가려나?"

[…미안, 흥분해 버렸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머리를 긁적이는 키드를 보며 로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까 씻으면서 미리 풀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제가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근데 나도 남자랑은 처음이라서….]

"뭐라는 거야."


옹알대는 키드의 말을 들은둥 마는둥 한 로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상반신을 세웠다. 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키드를 올려다보자 키드가 쑥쓰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이거, 쑥맥인가? 로우는 고개를 갸웃하다 별로 그래보이지 않는데- 라고 말하며 키드를 제 양 다리 사이에 가두었다. 스친 살결에 놀란 키드가 도로 저를 보았다 귀까지 벌개진 채 고개를 돌렸다. 자꾸 다른데 보지 말라고. 로우는 공손하게 앉은 키드의 손을 잡아끌었다. 부들거리며 끌려온 손은 조금 온도가 높은 살결에 닿곤 주춤했다. 움직여지는 손가락 끝에 닿아오는 보들보들 연한 살을 정신없이 느끼던 키드는 주름이 느껴지는 부분에 손이 닿곤 그제서야 제 손이 가 있는 위치를 깨달았다. 무릎 꿇은 채로 파드득 뛰며 고개를 돌리자 로우가 그의 손을 제 회음부에 문질러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마 수건으로 닦지못해 촉촉한 부분은 남아있는 물기와 함께 손을 제멋대로 미끄러트렸고 제 눈 앞에서 벌어지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도, 보지도 못하며 키드가 얼굴을 뜨겁게 불태웠다. 


"여기, 여기에 넣는거야."


로우가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너 모르냐? 로우는 아까 봐두었던 침대 옆 와곤의 서랍을 열었다. 러브젤이 구비되어 있는 모텔이라니. 일본스럽다 싶었지만 솔직히 찝찝했다. 하지만 없는 것 보단 낫겠지. 좁은 구멍으로 꾸역꾸역 나오는 젤을 제 손가락에 짠 로우는 여전히 그의 회음부에 댄 손을 어쩌지도 못하고 뻘뻘 땀을 흘리고 있는 키드를 보며 제 몸을 뒤로 젖혔다. 젤을 키드의 손가락이 닿은 그 아래부분에 바르고 뱅글뱅글 문질렀다. 제 손의 움직임 때문에 키드의 손이 허벅지 쪽으로 밀려났다. 미끌거리는 젤을 가득 묻힌 손가락을 뱅글뱅글 돌리다 제 안으로 가볍게 밀어넣었다. 온도가 낮은 젤이 들어감으로서 조금 수축되는 근육들을 느꼈지만 씻을때 푼 것 마냥 돌리자 뜨뜻하게 달라붙어오는 내벽. 손가락을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며 젤을 더하자 질척한 소리가 생겨났다. 


주름 가득한, 조금 어두운 빛의 음지를 들락날락거리는 로우의 손가락은 키드의 목덜미를 조아오는 듯 했다. 손가락을 두개 째 밀어넣으며 저를 간간히 올려다보는 로우는 무척이나 색스럽고 뭉클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며 로우가 약간 눕힌 제 몸이 불편했는지 한 손으로 키드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제서야 키드는 제가 로우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은밀한 부분은 손가락을 잘도 집어삼켰고, 키드의 눈두덩이가 욕구로 붉어졌다. 


"후우- 이제 니가 해 줘."


로우가 제 손가락을 빼내고 키드의 손가락에 젤을 발랐다. 미적지근한 온도의 젤이 손가락을 덮어왔다. 키드는 침을 꼴깍 삼키곤 로우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제 손가락을 하나 밀어넣었다. 키에 비례해 로우보다 더 길고 굵은 손가락은 깊숙히 쑤욱 밀려들어왔고 로우는 이물감에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손가락에 닿아오는 끈적하고 따뜻한 내벽은 손가락을 삼킬듯 조여들었고 키드는 저도모르게 손가락의 갯수를 늘려 한번에 깊게 찔러버렸다. 


"으읏-!"


갑작스런 공격에 로우는 키드의 어깨를 꽉 부여잡았다. 아마 손톱은 박히지 않았겠지. 로우가 끙끙대자 키드는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의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지만 손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십번 오간 손가락이 꽤나 익숙해졌다 싶자 키드는 내부를 탐색했다. 내부를 샅샅이 훑으며 손가락을 하나 더 늘리려는데 로우의 몸이 파드득하고 떨렸다. 얇은 신음이 터져나오고, 키드는 다시 한번 그 부근을 문질러댔고 로우는 짧게 신음을 토해냈다. 안그래도 한껏 달궈져있던 하반신은 아예 욕의를 뚫고 나올 듯 부풀었고 기어코 옷자락사이로 제 위용을 드러냈다. 로우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느낌에 낯설면서도 몸이 떨릴 정도로 자극되는 것에 파들파들 떨었다. 키드의 손가락은 귀신처럼 제가 느끼는 부분을 만졌고 로우는 결국 두 손으로 키드를 붙들고 아아- 낮은 목소리로 울었다. 


내려다본 아래에는 반쯤 발기해오는 로우의 것이 보였다. 그것은 의외로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키드는 조금 더 뿌듯한 마음으로 로우의 안을 괴롭혔고 로우는 그가 맘에들어하던 그 목소리로 예쁘게 울어주었다. 눈 앞에 펼쳐진 약간 그을린 로우의 피부는 내부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페로몬을 이끌어내는 듯 했고, 코끝에 닿는 바디샴푸의 향은 코가 아찔하도록 다가왔다. 제 손 끝에 닿아오는 열기 가득한 로우의 몸은 정직하게 자신의 손길에 반응했다. 


"아으윽!!"

[여기… 좋아?]

"하, 미친…. 왜 다들 전립선 맛사지거리는 줄 알겠다. 씨발, 존나 좋아으응!"

[로우… 로우….]


나지막하게 불러오는 제 이름이 들리자 로우는 이물감은 둘째치고 얼른 강하게 쑤셔줬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학학 더운 숨을 내쉬며 로우가 눈을 반쯤 떴다. 얼굴이 발간 채 제 품 안에서 엉덩이를 농락하는 키드가 코앞에 보였다.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게 흐린 눈에 잡혔다. 한쪽 손을 스르륵 내려 키드의 하반신을 더듬거리자 곧 뜨겁게 발기한 키드의 것이 만져졌다. 큭 하는 소리와 함께 키드의 손가락이 깊숙히 들어왔다. 히익! 날카로운 신음을 내며 로우가 키드의 것을 문질렀다. 로우의 땀으로 축축한 손이 제 것을 잡자 키드는 짧게 화이트아웃을 당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로우가 바들거리며 모텔에 놓여있던 콘돔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도 강렬하게 원하는 듯 했다. 키드는 손을 빼내곤 로우를 받치고 있던 손으로 그를 침대에 곱게 눕혔다. 긴 팔을 뻗어 콘돔을 집고 이빨로 찢어 꺼내 제 것에 능숙하게 씌우자 로우가 욕망에 차오른 눈에서 조금 눈초리가 올라간 눈으로 바뀌었다. 


"어쭈, 익숙한가 보지?"

[뭐라고?]

"흐응~"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딱 봐도 기분나쁘다는 식의 비아냥이 든 로우의 말에 키드는 대강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뭔가 변명을 이것저것 늘어놓았지만 어짜피 그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키드가 울듯한 얼굴로 웅얼거리자 로우는 제가 포기하기로 했다. 뭐, 경험이 많으면 나야 좋지. 조금 씁쓸한 짜증남이 맴돌았지만 그는 키드의 것을 잡고 제 안에 밀어넣었다. 귀두 끝부분을 쿨쩍이며 넣던 키드가 천천히 밀고 들어오자 괴로워진 로우가 제 다리를 한껏 안아올렸다. 묵직한 것이 뿌듯하게 차오르며 하반신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덮쳐왔다. 





*(아 씬은 더 못쓰겠다)





허리를 두드리며 어기적어기적 호텔까지 다다른 로우는 제 뒤에서 안절부절 저를 쳐다보는 키드를 올려다보았다. 모텔에서는 그렇게 짐승처럼 덤벼들더니 나오니까 완전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쯧 하고 혀를 차자 커다란 녀석이 바짝 긴장해서 울멍울멍한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았다. 이리와, 손짓하자 그가 쭐래쭐래 다가오더니 허리를 숙여 로우에게 키를 맞췄다. 그런 그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 준 로우는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키드의 입술에 쪽 하고 입맞췄다. 갑작스런 뽀뽀에 당황한 키드는 쩡 하니 굳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로우는 킥킥거리면서 저를 가리키며 


"로우라고 불러봐, 로-우."

[? 로-우웁?!]


우-라고 입술을 내미는 키드의 입술에 다시 한번 쪽 하고 뽀뽀했다. 키드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는 꼴을 보며 로우는 다시 킥킥거리고 웃었다. 핸드폰을 뒤적여 다시 번역어플을 꺼낸 로우는 뭐라고 몇 자 치곤 키드를 향해 액정을 들어보였다. 


- 내 생각하면서 자위해.


[??!?!]


키드가 벌건 고구마마냥 얼굴빛이 검붉어졌다. 로우는 다시 한번 웃었다. 잘 자. 굿나잇. 가볍게 손을 흔들고 호텔 안으로 사라져버린 로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키드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떠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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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로우 일한고딩 썰은 여기서 마무리지어야지... 사실 한국어 배우는 키드도 쓰고싶었는데ㅋㅋㅋㅋㅋ 한국어 병신같이 말하는 키드랑 일본어 꽤 능숙하게 해내는 로우ㅋㅋㅋㅋ 아 사실 쓰고싶던건 이게 아니고 ㅋㅋㅋㅋ 이다음 이야긴데 ㅋㅋㅋ앞에꺼쓰다가 지쳤어 ㅋㅋㅋㅋ큐ㅠㅠㅠㅠ























oh 의식의흐름기법주의 oh

oh 개소리주의 oh



*로우가 코라상을 생각하는 아무 의미없는 듯한 독백

**내가 썼지만 다신 보고싶지않은 느낌(5글5글











비가 오는 날이다.


코라 씨, 당신은 거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난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당신이 생각나. 아니, 굳이 비 오는 날이 아니어도 생각은 나지만. 

비가 오면 당신은 매번 담뱃불을 붙이다 라이터를 다 써버리곤 했지. 그 땐 그게 참 바보같고 어리석어 보였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그립다고 하면 믿을까. 


코라 씨,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구원받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사실이기도 하지. 그것엔 늘 감사하고 고마워하곤 있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당신의 의지를 잇기 위해 올 수 있는 모든 것의 원점이기도 하고. 

그런데 말이야, 참 우습다? 당신이 나의 뭐라도 된다고 생각한 건진 몰라도, 나한테 그러면 안됐었어. 죽을 각오를 하고 찾아온 내게, 그렇게 대해주면 안됐어. 그렇게 하나부터 아홉까지 어설픈 주제에, 하나만 진지하면. 그러면 안됐었어. 


오늘의 하늘은 말야, 참 어두워. 먹구름이 끼고 침울한 기운이 가득하지. 그런데 그거 알아요? 당신을 떠올리고, 당신과의 즐거운 일 혹은 괴로웠던 일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하늘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 언제나처럼의 하늘이었는데, 그게 참 많이 달라보인다고.


당신 말야, 내게 이런 짓을 해놨으면 책임 져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나? 보통 일반 상식이지 않냐고? 대책도 없으면서 말만 번드르르한 주제에 내게 이런 말 까지 시키는 건 대체 왜야. 이렇게 말해도 결국 난 당신이 있었기에 구원받았고, 그 위에 새로 자라난 하늘이다. 내 위의 어둠을 없애고, 새로 자라난 하늘이야. 이 하늘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내 위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마치 당신이 내게 그런 것 처럼. 


코라 씨. 그 곳은 안락한가? 당신이 나를 내려다 볼 수 있을만큼, 그런 여유가 있는 곳인가? 비가 내리면 하늘이 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치지 못하지만 그것도 다 코라 씨 당신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다. 


코라 씨. 오늘도 이렇게 들을 이 없는 말을 읊조려 보지만 당신에게 전해지리라 믿고 싶다.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치자. 


왜냐면,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당신이 너무 만나고 싶어지기 때문에.

그 정도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기 때문에.



-호텔 어디야? 만나러 가도 돼?

-어느 호텔이야? 할 말 있으니까 만나고 싶은데.


키드는 탁탁탁 메일을 쓰다 지웠다를 수십번 반복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제가 아무리 일본어로 메일을 써 봐야 저 쪽은 번역기를 돌리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상하지 않게 쓰고 싶다고!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앞에 있던 가게 셔터를 발로 쾅 하고 찼다. 셔터가 웅웅 소리를 내며 세차게 울었다. 아, 뭐야- 놀랬잖아. 투덜거리는 같은 무리 녀석들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들은 그의 목소리가 귀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목소리도 예뻤던 거 같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화악 달아오르는 얼굴 때문에 괜히 성질을 내며 셔터를 한번 더 걷어찬 키드에게 담배를 물고 있던 녀석들에게서 불평이 터져나왔다. 


[뭐야? 시끄럽잖아, 자꾸.]

[하… 미안. 별 거 아냐.]

[기분 더러우면 담배라도 피던지, 자.]


키드는 제게 건네지는 담뱃곽을 밀었다. 아냐, 지금 담배고 뭐고 피울 기분이 아냐. 고민고민하다 완성한 문장은 결국 


-만나고 싶은데 어느 호텔이야? 


였다. 마지막에 '내가 갈게'라는 말을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키드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온 한 녀석이 대뜸 송신 버튼을 눌러버렸고, 으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메일은 그대로 송신되었다. 


[미쳤냐!!!!]

[아, 왜 그렇게 화내냐? 새삼스럽게.]


친구들이랑 자주하던 장난이긴 했지만 지금은… 지금 건 아니었다고! 키드는 말 못하는 울부짖음을 짜증으로 순화해 가게 셔터를 한번 더 걷어찼다. 메일 하나 보내는 데 이렇게 지치다니. 휴우, 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빠져나가는 기운. 그는 자리에 털퍽 주저앉았다. 학교에 돌아가서 가방을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은 1g도 들지 않았다. 해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적막한 곳에 때때금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야, 담배 줘 봐. 키드는 옆에 있던 녀석의 담배를 냉큼 뺏아들곤 불을 붙였다. 하얗게 빠져나가는 연기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분. 연기 끝에 어른어른하게 아까 그 녀석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했다. 


부이잉- 부이잉- 


[!!]

[너 진짜 그 벨소리 좀 바꾸라니까.]

[시꺼, 닥쳐봐.]


메일이 도착한 소리에 급하게 잠금을 풀고 메일함을 열자 보이는 낯선 주소. 그 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꾹 눌렀다. 그에게서 온 메일은 일본어로 깨끗하게 번역되어 있었다. 나도 번역 해서 보낼 걸 그랬나. 키드는 잠깐 후회했지만 그것보단 그의 메일 내용이 중요했다. 눈이 급하게 움직였다. 


- XXX호텔에서 묵고 있어. 저녁 10시부터 자유시간이니까 그때 잠깐 나갈 수 있을지도.


[오예!!!!!]


키드는 펄떡펄떡 뛰었다. 제가 읽은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사실은 너무 만나고 싶어서 환각을 본 거라던가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읽어보았지만, 확실했다. XXX호텔이라면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10시라고?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다지 문제되지는 않았다. 지금이 5시니까, 앞으로 다섯시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탓에 액정에 땀과 지문이 묻어났지만 키드는 개의치 않고 제 옷에 몇번 대충 닦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봤지만 분명히 제가 아는 단어였고, 언어였고, 내용이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손 끝에서 떨리는 담배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담배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담배 따위 피울 수 있을 리가.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담배를 땅에 던지자 주위 친구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야, 나 집 갔다 올게.]

[에? 지금 간다고?]

[엉. 지금.]


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녀석이 쭈그리고 있던 무릎을 피며 몸을 일으켰다. 멍청아, 오늘 집회야. 곧 출발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그제서야 오늘 제가 소속된 폭주족의 집회가 있는 날인 걸 깜빡 했다는 게 생각났다. 아, 젠장. 키드는 땅에 침을 뱉었다. 집회, 몇 시에 끝나더라? 그의 말에 노란 머리의 녀석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9시쯤 끝나지 않을까- 라고 중얼거렸다. 


'9시면… 그래, 괜찮아. 그정도면.'


9시에 마친다고 쳐도 집에 가서 씻고 나올 시간은 될 듯 했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지만 두번째 만남에는 깨끗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






헉헉거리며 도착한 그 곳, XXX호텔. 키드는 숨을 고르며 제 애마를 주차시켰다. 평소보다 늦게 끝나는 집회에서 억지로 빠져나온 탓에 씻지도 못한 건 물론이요, 10시가 훨씬 넘어 도착한 해 헉헉거리며 호텔 프론트로 향했다. 급하게 뛰어가서 프론트에 대고 한국에서 온 남자고교생들 있죠? 라고 윽박지르던 그의 등 뒤로 콕콕 찌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 뭐야?!]


한껏 짜증내며 뒤를 돌아본 그의 앞엔 새카만 눈이 마주하고 있었다. 로우였다. 제가 방금 짜증낸 것 조차 잊고 어버버 거리는 키드의 소매를 붙잡고 박력있게 끌고나온 로우는 그를 호텔 문 밖까지 끌고 나와서야 소매를 놓아주었다. 호텔 밖의 바람이 시렸다. 로우는 저를 끌고 나와서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항 한번 못하고 끌려온 키드는 로우의 모습에 땀만 뻘뻘 흘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호텔 로비에서 시끄럽게 굴어서 화났나? 너무 늦었나? 많이 기다렸으려나? 그게 아님 나 땀냄새 나나? 아무 말 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로우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토, 토라- 토라파루-]


더듬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들었다. 키드보다 조금 작은 그는 키드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발음 존나 구린데? 다시 따라해봐. 트-라-팔-가-로-우-."

[토, 토-라-포-아-루-]

"아, 됐음. 그냥 로우. 로-우."

[로-우, 로-우.]

"잘했어."


로우가 빙긋 웃으며 키드 팔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리곤 핸드폰 액정화면을 수줍어하는 키드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아, 번역기를 쓰고 있었던 건가. 키드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너 이름이 뭐랬지?

[유스타스 키드]

"유스타스 키드? 이름 간단하고 좋네."

[응, 유스타스 키드.]


헤벌쭉하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줄 모르는 키드. 로우가 대체 뭐라고 말하는 지는 모르지만 제 이름을 불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헤헤 넋 빠진 사람처럼 웃으며 옆에서 꼼질꼼질거리고 있자 로우가 픽 하고 웃었다. 로우가 웃는 얼굴만 봐도 그저 좋은 키드는 뭘 말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그의 얼굴이 닳도록 쳐다만 보고 있었다. 때마침 요란하게 우는 배꼽시계. 키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야, 너 아무것도 안먹었냐?"

[음… 미안.]


머쓱한 듯 머리를 벅벅 긁는 키드를 보고 아까 봐 두었던 편의점에 갈까 싶어 로우가 손목을 잡고 이끌자 종종종 따라오는 키드.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빌딩의 불빛, 그리고 눈아프게 빛나는 차들의 헤드라이터를 뚫고 횡단보도를 차분히 건넌 로우가 편의점 앞에 도달해서 키드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우르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차 엔진소리, 손님을 부르는 삐끼의 외침 사이에서 너 안 먹어? 라고 묻는 로우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날아와 꽂혔다. 그를 물끄러미 보는 로우를 보며 배를 긁적이던 키드가 잠깐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편의점 말고.]

"? 뭐야, 안먹어? 배고픈 거 아냐?"

[음….]


키드는 다시 로우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젖히며 안먹냐고 물어보는 로우의 얼굴에 잠시 넋을 잃다가 제정신을 차렸다. 이 근처에 자주가는 라면 가게가 있었지. 로우에게 그걸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편의점에 끌고 들어가려는 로우의 손을 역으로 이용해 팔목을 탁 하고 움켜쥐었다. 뭐냐, 싶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는 로우를 가볍게 당기며 손짓을 했다. 


[저기, 맛있는 라면 집 있는데 거기 가자. 내가 살게.]

"? 뭐라는거야? 저 쪽 편의점 라멘 먹고 싶다고?"


로우나 키드나 상대의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일단 키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자 작고 허름한 라면가게가 나왔다. 밥 먹은 지 얼마 되지않은 로우는 그닥 라면이 땡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현지인이 안내하는데 돈아깝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얼마되지 않아 라면을 두그릇이나 먹고 나온 그는 남고생의 위장이란 블랙홀과 같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계산하려 지갑을 꺼내자 키드가 두 손을 펄럭펄럭 내저으며 그를 가게 밖으로 밀어내곤 제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키드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로우를 보며 덩치에 맞지않게 쑥쓰러워하던 키드가 지갑을 교복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넣었다. 로우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지갑을 그렇게 구겨넣으면 어떡하냐? 옷 구겨지잖아."


교복 셔츠가 지갑과 함께 바지주머니에 밀려들어간 것을 혀를 차며 꺼내주자 키드 얼굴이 홍당무처럼 타올랐다. 여기 어디 밤 거리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리고 로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일본 녀석, 나한테 반한 거 맞는 것 같다고. 잠깐만- 하는 로우의 말과 함께 징징거리는 진동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얼굴이 빨개진 채 열심히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있던 키드가 다시 로우 쪽으로 얼굴을 돌릴 때 쯤은 이미 번역기 어플의 문장은 완성되어 있었다. 


-당신이 나 이상적으로 좋아합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키드가 몇 번을 읽더니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 하자 로우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빙빙 돌려서 말해주려고 하니 번역기가 말썽이었다. 이 놈은 대체 어쩌자고 내가 외국인인 걸 알고도 붙드는 걸까? 로우는 번역기어플의 문장을 지운 후 다시 써내려갔다.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있는 키드로썬 낯선 꼬부랑 글자를 두 엄지로 빠르게 쳐 내는 로우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후 번역을 누르자 나타나는 문장에 키드는 먹었던 라면을 코로 토할 뻔 했다. 


-너, 나랑 섹스 하고싶어?


[무, 무슨!! 그런!! 그런…!]


공중으로 펄쩍펄쩍, 그것도 백구십도 훨씬 넘어보이는 거구가 길거리에서 펄떡펄떡 날뛰는 꼴은 보기가 좀 그러했던지라, 로우가 그의 소맷자락을 꽉 쥐고 끌어 내렸다. 진정하고 할 말 있으면 번역기 돌려. 로우가 핸드폰을 가리키자 얼굴이 터져버릴 듯 붉어진 키드가 우는 소리를 내며 떨리는 손으로 문장을 적어내렸다. 한참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던 키드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보여주었다. 손의 떨림과 함께 진동하는 탓에 글을 읽기가 힘들었던 로우가 키드의 손을 부여잡고 글을 읽자 손을 잡았다는 느낌에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는 키드.


-하고싶다…하지만 역시 무리일까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교제 후


푸흑. 로우의 웃음이 터졌다. 번역기라는 거, 이렇게 재밌는 거였구나. 한번 시작된 웃음은 입술에 스며들듯 번졌고 결국은 온 몸으로 번져 로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끅끅거렸다. 키드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차마 제 손을 로우의 손아귀에서 빼고 싶지는 않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던 로우가 제 핸드폰을 꺼내 다시 뭐라고 톡톡거렸다. 키드는 그제서야 해방된 제 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손에서 로우 향 난다….'


제 손에서 나는 낯선 향에 더 수줍어진 키드는 손에 얼굴도 묻지 못하고 팔에 얼굴을 비볐다. 사랑에 빠진 소녀도 아니고, 이 나이에 무슨 일이래. 징징거리는 키드의 눈높이에 맞추어 쪼그려앉은 로우가 그를 툭툭 쳐서 고개를 들도록 한 후 환한 액정화면을 그의 코 앞으로 들이댔다. 벅벅 얼굴을 비빈 탓에 눈이 벌개진 키드가 액정을 보자 액정에 떠 있는 말은 아까전 보다 더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너 귀엽네. 나 남자는 처음인데 너라면 괜찮을지도. 성병 없지?


[?!]


아까보다 더 펄쩍 뛰는 키드를 보며 재밌는 장난감을 보듯 킥킥거리는 로우. 이야, 너 높이뛰기 해도 되겠다. 로우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이미 들리지조차 않는 듯한 키드는 뛰다 못해 뒤로 벌러덩 넘어졌고, 로우는 그를 보며 한참이나 웃다가 허겁지겁 일어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지도 못하고 무시하지도 못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우의 손가락을 하나 가볍게 터치하곤 제 힘으로 일어난 키드. 울 것 같은 얼굴의, 아니, 이미 울고 있는 듯한 키드의 얼굴 앞으로 핸드폰을 다시 들이댔다. 이번엔 또 뭐야- 키드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액정이 위험스레 번득였다.


-모텔, 가자


[끄아아악!!]


신주쿠 밤 거리에 괴상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옆에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섞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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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목 뭐하지. 그냥 여기서 끊을까...? 더 써? 말아?













현대 AU 이므로 일본인이지만 이름은 유스타스 키드. 한국인이지만 이름은 트라팔가 로우. 


커플링은 키드로우!


각 국 남고생 꽁냥꽁냥이 보고싶어서 지름.








*

[이봐,]


로우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제가 반 아이들과 떨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 시발. 어디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슬쩍 올려 쳐다보니 그림자의 주인은 꽤나 껄렁해보이는 사내였다. 청년인가? 로우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약간이지만 어린 티가 나는 걸 보니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쯤 되어 보였다. 일본인들의 나이는 몇 번을 들어도 추측과 꽤나 거리가 있었으니까. 


'삥 뜯으려고 그러나?'


로우는 여차하면 달려갈 준비를 하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상대의 신장은 꽤나 커서, 한 달음에 붙잡힐 지도 모르지만 수학여행와서 애꿎은 양아치에게 돈 뺏기고 국제미아가 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상대가 손을 들어올렸다. 이동 반경을 예측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 로우가 우습게 그 손은 그의 머리로 올라갔다. 


[저… 그러니까 너 이 근처 사냐?]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야? 로우는 저를 상대로 일본어를 걸어오는 상대를 보고 약간 짜증이 났다. 일본인으로 보였나? 하지만 할 줄 아는 일본어라곤 곤니찌와, 아리가또, 스미마셍 밖에 없었다. 손톱만큼도 흥미 없는 과목인 일본어를 알 까 보냐. 로우는 제 가방을 꽉 붙들곤 매섭게 그를 째려봤다. 그는 제 눈빛에 당황한 듯 한 걸음 물러서더니 두 손을 들어 세차게 흔들며 일본어로 뭐라뭐라 말했다. 당황한 듯한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제 지갑을 노리는 놈은 아닌 듯 싶었지만 경계는 풀지 않았다. 여긴 외국이니까. 로우가 눈을 재빨리 돌려 제 친구들을 찾았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돈 뺏거나 그러는 거 아니니까! 진짜 그런 거 아니고… 그러니까….]


키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학교를 땡땡이치고 게임센터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산책 겸 좀 걸어볼까 하고 나왔던게 별로 익숙치 않은 곳 까지 와 버린 것이었다. 지도를 찾으려 폰을 꺼내드는데 순간 제 눈에 스친 한 남자. 잘 봐줘봤자 고등학생인 그를 본 순간 키드는 정말 만화처럼, 온 심장을 뺏겨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여자도 아닌 남자냐 라고 물으면 할 말은 없었다. 그저 그를 본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의외로 빠른 걸음에 아차하는 순간 놓칠까봐 그의 앞 길을 막았지만 그는 자신을 그저 양아치로 보는 듯 했다. 아무렴, 그 어떤 바른 학생이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이 시간에 이 곳을 어슬렁거릴까. 심지어 교복도 입은 듯 만 듯 하게 대충 걸친 차림이. 그걸 그의 앞에 서고 나서야 깨달은 키드는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대뜸 연락처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의 친구들 사이에선 꽤나 흔한 일이었기에. 그런데 문제는 그가 남자라는 것이었다. 보통, 남자가 남자에게 연락처를 묻나? 키드는 잠깐 고민했지만 점점 날세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우물쭈물거리면서도 말을 내뱉었다. 


[한…눈에 반했는데… 메일 주소 좀 줘.]


'얘가 뭐라는 거야, 자꾸.'


자꾸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는 키 커다란 양아치 같은 놈 때문에 로우는 짜증이 났다. 나 일본어 모른다고. 대체 왜 덩치 산만한 사내놈이 말도 똑바로 못하고 우물거리는 건데? 물론 알아듣진 못하지만 그 태도부터 신경질이 난 로우가 귀찮은 말투로 툭,


"I'm Korean."


이라고 말하자 양아치 녀석은 꽤나 놀란 듯 보였다. 뭐라고 자꾸 묻긴 한데 다 일본어여서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 로우는 뭐라는지 모를 양아치녀석보단 헤어진 제 일행들을 찾는 게 더 급했다. 


키드는 로우의 영어를 듣고 일본인이 아니란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젠장, 나 영어 모르는데.'


찌푸린 얼굴로 키드가 잠시 망설이더니 로우를 향해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번역 어플을 찾으려고 난리를 피우는 키드의 코 앞에 커다란 액정의 스마트폰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 저는 한국인 입니다.


[한국인?]


키드는 그 화면을 들이민 로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한국인. 그런가- 한국인은 같은 아시아인이니까 헷갈릴 수도 있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그의 앞으로 다시 액정이 들어왔다.


- 용건이 없으면 가겠습니다. 일행이랑 떨어져서.


[자, 잠깐!!]


얼떨결에 폰을 내민 손목을 붙잡은 키드는 저를 쳐다보는 로우의 눈에 두근거려 조심스럽게 다시 손목을 놓았다.


-한눈에 반한. 메아도 가르쳐줘.


 급하게 다운받은 번역 어플에 몇 자 구겨넣어 그에게 보여주자 그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지? 번역이 이상한가? 쓰벌, 번역기.'


키드는 다시 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평소처럼 쳐 넣은 탓일까. 그는 번역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문장을 국어책 마냥 깔끔하게 다시 써서 번역기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길어진 문장을 다시 그에게 보여주었다. 


-한눈에 반한. 메일 주소 가르쳐주세요.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키드는 침을 꼴깍 삼키며 로우의 표정을 살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놓치면 안 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우는 한참 키드의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다 다시 키드를 한 번, 그리고 다시 액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제가 알아들은 말이 맞은 것일까. 원래 한국어가 번역하기 개같은 언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메일주소에게 한눈에 반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이 빨간머리의 양아치는 지금 제게 번호를 따는 듯 했다. 번호가 아니라 왜 메일주소지? 아니, 그보다 눈이 삐꾸인가? 내가 여자로 보이나? 로우의 손가락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나 남잔데.


양아치의 표정이 멀뚱했다.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얼굴이랄까. 일본은 게이가 흔하던가. 로우는 대충 그러려니하고 넘겼다. 아니나다를까 다시 보여지는 화면에는 알고있다는 대답이 떠 있었다. 로우는 잠시 궁금증을 가졌으나 곧 생각하길 포기했다. 지금 이 양아치는 제가 외국인인 걸 알면서도 대쉬를 하는 중이니까. 로우는 멀뚱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키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메모, 메모 켜 봐."


[메모?]


"그래. 그래야지 쓰지."


메모라는 단어는 아는 모양이군. 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키드가 급하게 메모 어플을 켰다. 그리곤 영어자판으로 변환한건지 로우가 건네받은 화면은 영어 키보드가 떠 있었다. 톡톡톡- 진동이 울리는 화면을 몇 번 터치한 로우는 제 메일 주소를 적어주곤 그에게 다시 핸드폰을 건네줬다. 이걸로 더 길을 막진 않겠지. 남자에게 번호를 따였다는 의식은 하나도 없는 로우는 핸드폰을 소중히 받아드는 키드를 뒤로하고 다시 걸어갔다. 


[어, 어!! 이봐!]


그의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돌렸다. 귀찮다는 기색이 만연한 얼굴에 대고 양아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이름은 키드, 유스타스 키드다! 이따 메일 할테니까 꼭 답해!]


그는 몇 번이고 저를 가리키며 키드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름을 가르쳐 주려는 듯 하는데, 그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로우도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습한 곳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났다. 로우도 저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또박또박 이름을 말했다. 


"로-우. 트라팔가 로-우다."


나이가 어리지도 않은 사내 둘이서 뭘 하는 건지. 어이없는 기분과 함께 남자에게서 번호가 따였다는 미묘한 자만감이 차올랐다. 로우는 손을 대충 흔들어주곤 제 일행을 찾아나섰다. 멀리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웅성거리는 걸 보니 같은 반 녀석들이 틀림없었다. 지금 시기에 수학여행 온 학교는 저희들 뿐인 듯 했으니까. 로우는 그 쪽으로 발을 재게 놀렸다. 습한 하늘이 파랗게 부서지는 10월 어느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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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로 끝날 생각은 안했지만 생각외로 길어질거 같아서 두렵다...



















래비(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휘파람소리 / 얼굴을 파묻다 / 나만의 것 http://kr.shindanmaker.com/302638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로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 앞에 그려지는 밀짚모자가 뭉클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소리내어 말해본 단어는 바닷바람과 함께 스러졌다. 제 안에 폭 하니 안겨오던 검은 머리의 향긋한 풋내가 그리운 밤. 트라팔가 로우는 죽음의 외과의라는 그의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연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널 만나 껴안고, 네 품에 얼굴을 파묻고, 몇 번이고 널 어루어만지며 말해주고 싶은데. 


곧 배가 수중으로 잠수한다는 선원의 외침이 들려오고 트라팔가 로우는 별을 바라보며 깊은 밤하늘을 들이마셨다. 


밀짚모자야. 

네가 어디서 무얼 하든 나의 사람이고, 나의 연인이지만 너 또한 그러할까. 나만의 것이 되어줄까. 


잠잠한 별하늘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트라팔가는 끝까지 별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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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로우로 뭔가 항상 써 보고 싶었는데 마침 연성메이커가 괜찮게 나와서 자기전에 짧게...! 

오랜만에 새로운 문체로 써 봐서 색다른데, 이런 문체로 잘 쓰고 싶다. 뱅뱅 돌려말하는 은유적인 거 너무 좋아. 



* 마운팅 : 서열을 잡기 위해서 같은 성별의 상대를 위에서 내리깔아 범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 목을 물거나 목을 내리누르고 몸 위에 올라타기도 한다. 


커플링...없는 게 맞으려나? 아님 있는걸까? 




※주의 : 루조로 루산 느낌이 강할수도 있습니다.









"캬악!! 이 바보 마리모가!!!"


주방 쪽에서 신경질적인 상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깜짝 놀라 주방 문을 열어제낀 우솝은 그다지 보고싶진 않은 장면을 강제로 목격하고 말았다. 편한 셔츠를 입고 있는 상디를 벽에 밀어붙인 채 목덜미를 물려고 덤벼드는 조로. 언뜻 잘못 보면 붕가붕가를 하는 듯한 모습에 우솝은 인상을 썼지만 조용히 못 본 척 문을 닫았다. 저번에 한번 말리려고 다가갔다가 제가 깔린 기억이 있었기에. 우솝은 방 문을 닫고 조용히 나오다가 급하게 달려오는 나미를 보고 손을 내저었다. 


"무슨 일이야?!"

"아… 그러니까, 그게. 별거 아냐. 안 열어보는 게 좋을 걸?"

"또 이 두 바보가 싸우는 거 아냐?!"


나미는 우솝의 말을 뒤로한 채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나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둘의 모습은 아까 우솝이 열어보았을 때보다 한층 더 에로틱해져 있었다. 나미가 잠시 미동이 없더니 문을 쾅 소리나게 닫았다. 


"이… 변태들!!! 어디 할 데가 없다고 해서 동료를…!!"


그러고보니 나미는 이 일을 겪은 적이 없구나. 우솝은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에 나미를 달래며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일단 올라가자. 여기 더 있어봐야 별 좋은 꼴은 못 봐."


특히 나는 말이지. 우솝은 말을 삼키곤 나미의 등을 밀어 갑판으로 올려보냈다. 주방 안에서는 여전히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하악거리는 신경질적인 상디의 짜증이 간간히 들려왔다. 




*




"그거, 동물들이 흔히 하는 마운팅 아냐?"

"오, 맞아! 그러고보니 그렇네! 마운팅이네!"

"무슨 얘길 하는거야?"


로빈과 나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로빈과 고개를 갸웃 하며 되물어왔다.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던 우솝은 그거라며 방방 날뛰었고 그 소란이 방에 들렸는지 쵸파가 제 방에서 나오면서 그들에게 합류했다. 


"아아, 쵸파는 더 잘 알겠는걸? 마운팅 말이야."

"마운팅…? 알긴 하는데 갑자기 왠 마운팅 이야기야?"


쵸파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미가 쵸파를 안아올려 저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로빈이 빙긋 웃으며, 조로랑 상디, 지금 마운팅 중이래- 라고 말하자 테이블에서 자리를 잡던 쵸파가 그대로 뒤로 넘어져버렸다. 


"쵸파!! 괜찮아?!"

"아… 응. 괘, 괜찮아."


사실상 조로와 상디가 밀짚모자해적단을 만든 기초이기 때문에 두 명의 동물적인 서열이 높은 건 당연했지만, 굳이 이때까지 신경쓰지 않고 있던게 왜 갑자기 불거졌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로빈과 나미, 우솝, 쵸파는 선내에서도 학식이 있는 편이었기에 자기 의견을 내며 토론하던 중 주방으로 향하는 문이 벌컥 열리며 상쾌한 표정의 조로가 갑판으로 나왔다. 


"어, 조로…!"

"아? 왜."

"어… 그러니까…."


마운팅 끝났어? 라곤 못 물어보잖아! 나미는 속으로 소리치며 아냐, 아무것도. 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꽤나 바닥에서 뒹굴었는지 발에 걷어채였는지 조로의 옷엔 검댕이 여기저기 묻어있었지만 조로는 이상한 녀석들이라며 손에 쥔 술병을 들곤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이겼나…?"

"이겼겠지?"

"그러니까 나온 게 아닐까?"

"졌다기엔 너무 상쾌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아? 조로."


일명 삼 괴물이라고 불리는 전투력 세 명 중 두 명의 마운팅 이야기는 꽤나 궁금했다. 아마 좀 이따 상디가 오후간식을 들고 올라올테니, 그때 관찰하자며 네 명은 의기투합했다. 




아니나다를까, 레이디들의 티타임이라며 찻잔과 케이크를 들고 발레하듯 올라오는 상디가 보였고 타이밍 좋게 브룩또한 갑판 위로 나왔다. 네 명은 눈을 반짝이며 상디를 여기저기 관찰했고, 평소랑 다른 눈빛에 약간 움찔하긴 했지만 상디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나미와 로빈에게 차를 건넸다. 


"아, 오늘은 밀크를 좀 타고 싶은데. 가능할까?"

"물론이죠~ 로빈쨩~ 지금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상디가 다시 부엌으로 향하자마자 오가는 수군거림. 목에 상처 봄? 옷 튿겼던데. 손도 빨갰어! 저런- 당했구나-. 브룩은 홍차를 받아들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쵸파에게 설명을 부탁했고, 쵸파가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 동안 상디가 곧 올라왔다. 


"로빈쨩~ 여기 밀크 대령이요~"

"저, 상디 씨. 방금 전에 조로 씨에게 마운팅을 당했습니까? 요호호홋!"


정적.

그 아무도 감히 묻지 못한 이야기를 브룩이 물어버렸다!! 네 명 모두 동공을 흔들며 브룩과 상디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아, 이거 물으면 안되는 얘기였나요? 요호호호… 이거 실례!"

"…아. 로빈쨩 여기 밀크."

"…어머, 고마워."


또다시 찾아온 정적. 상디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듯 웃었다. 아무리 돌려말하려고 해도 제가 아래에 깔렸다는 사실을 더 이상 좋게 말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하하 웃으며 멀어져가는 상디를 그 누구도 붙들지 않았다. 


"그랬구나… 상디 깔렸었구나…."

"그럼 조로가 서열을 잡은거네? 루피는?"

"루피는 선장이니까 서열적으로 1등이지 않을까? 랄까, 얼마나 동물적인 놈들인거야 우리 배 초기 멤버는!!"

"어… 음, 나미. 그래도 남자들끼린 당연한 편이야…."


내가 이런 동물적인 녀석들이랑 동료를 하고 있다니… 나미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쵸파가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정말 동물인 쵸파의 위로는 위로스럽지 않았다. 나미 씨의 기분을 풀기 위해 제가 한 곡 연주하죠! 브룩의 바이올린이 나서면서 다시 갑판의 분위기는 소란스러워졌다. 



*



"야, 루피."

"오! 상디! 왜?"


상디는 제 없는 틈을 타 부엌을 습격한 루피를 발견하곤 그 옆에 주저앉았다. 루피는 제가 먹는 걸 제지하지 않자 이상하다고 느껴 상디를 쳐다보았지만 손은 끊임없이 먹을 걸 향하고 있었다. 마운팅. 상디 또한 알고 있었다. 루피가 서열정리를 한답시고 마운팅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루피 넌 왜 마운팅 안하냐? 나나 마리모 녀석한테."

"움? 마운팅을 왜 해?"

"왜 하냐니. 그건 당연한 거잖아. 우리 배의 선장은 일단 너고, 우리는 널 선장으로 하는 선원들이니까 말이야."


상디가 다리를 펴고 벽에 등을 기댔다. 아까 마리모 녀석한테 씹힌 목덜미가 아릿하게 아려왔다. 마리모의 마운팅은 늘 거칠었다. 굉장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악력으로 저를 붙잡고 목덜미를 물어왔다. 힘껏 반항해도 몸은 벽 혹은 바닥에 눌려졌고 한 손으로 제 허리를 끊어질 듯 끌어안고 하반신을 치대는 바보 마리모. 하는 짓은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100% 바보인 주제에 마운팅 할 때만큼은 비집을 틈이 거의 없었다. 


"젠장…."


제가 선장으로 인정하는 루피는 제게 마운팅을 하지 않는데, 네깟 마리모가? 하는 마음에 몇 번이나 발광하며 반항을 시도했지만 거의 대부분 결과는 똑같았다. 입에 음식을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 제 선장을 바라보았다. 루피는 마운팅을 어떻게 할까? 그의 마운팅은 본 적이 없는 듯 했다. 


"루피, 마운팅 한 적 있냐?"

"응. 있어."

"…?! 누구랑?"


의외로 있었다. 그래. 루피도 남자고 강한 녀석이니 마운팅을 하거나 당해본 적 있겠지. 그런데도 우리에게 마운팅을 안 하다니. 상디는 루피의 입을 주시했다. 


"음- 조로?"

"조로? 너 바보 마리모녀석이랑, 아니 그 녀석 마운팅 한 적 있어?"

"응. 한 번 인가?"

"어, 언제? 왜 한거냐?"


제 목소리가 놀라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상디는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의외로, 루피에게 마운팅당한 크루가 있을 줄이야. 예전 기억을 떠올리듯 루피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씹던 고기를 튀기며 말했다. 


"조로가 나한테 하려고 하길래 내가 깔았어."

"너… 그 힘만 센 바보를 이긴거야?"


도대체 자신의 선장은 어디까지 강한 건지. 상디는 그 악력을 이겨냈다는, 심지어 뒤집었다는 루피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루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있던 고기를 목 뒤로 넘겼다. 


"한 번 깔고 나니까, 그 다음부턴 안 덤비던데?"

"역시…. 내가 깔아야 했어!"

"너네 마운팅 해?"


루피의 의문에 상디가 버럭 짜증을 냈다. 멍청이 길치 마리모 자식! 루피한텐 뒤를 내어주고 저는 괴로울 정도로 뒤를 붙들어? 어떤 의미의 배신감과 어떤 의미의 부러움, 그리고 짜증남이 울컥 뒤섞였다. 그 뒤로 루피의 단호한 말이 따라붙었다. 


"우린 동료야. 마운팅은 하면 안 돼. 너네도 이제 하지 마."

"무슨 소릴 하는거야, 루피. 동료는 동료지만, 일단 우린 남자라고? 마운팅은 당연한거라고."

"에이스가 그랬어. 동료는 평등한 거니까 마운팅 하면 안 된다고."


루피가 못을 박았다. 마운팅은 안 된다고. 상디는 알겠다고 투덜거렸다. 조로녀석한테도 네가 얘기해두라며 말하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루피. 그런 루피의 옆에서 담배나 하나 피우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담배를 입에 물며 여전히 오늘 저녁거리를 탐하고 있는 루피를 보자 마운팅이고 뭐고 쟤한테는 정말 의미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루피는 아마 물과 음식만 주면 어딜가도 잘 살지 않을까. 상디는 뻘한 생각을 하며 담배를 머금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드는 생각. 온 몸이 근육덩어리인 조로와 달리 온 몸이 고무인 루피가 마운팅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근육이 고무가 된 느낌인가? 루피가 어느정도 먹었는지 배를 두들기며 물을 찾았다. 그런 루피를 눈으로 좇으며 담배를 피자 루피가 물을 마시다말고 상디를 바라보았다. 


"왜 오늘은 뭐라고 안 해?"

"…뭘?"

"저녁 아니었어? 내가 방금 먹은 거. 배고파서 먹긴 했지만."

"아아, 그렇군."


상디의 머릿속은 지금 루피의 마운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번 해 보라고 할까. 어짜피 제가 자신의 선장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올 블루를 찾고 루피의 목표가 끝날 때 까진 함께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었다. 시도때도없이 서열을 주장하는 멍청한 어디의 길치보단 루피에게 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상디? 어디 아파?"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이마를 짚어오는 루피. 상디는 제 이마에 닿은 루피의 손이 차갑다고 느꼈다. 아마 냉장고 음식을 훔쳐먹었기 때문이겠지? 피식 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그는 루피의 손을 덥썩 잡아 제 목으로 가져갔다. 


"야, 루피."

"엉?"

"나한테 마운팅, 해봐."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어버린 말. 상디는 제가 말해놓고도 움찔 했다. 제가 남자를 밝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다시 부정할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다. 루피라면, 한 번 쯤은 당해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당해두는 편이 속 편하다고 할까. 그러나 루피의 표정은 굳어졌다. 


"싫다니까! 동료는 마운팅 안 해!"

"그럼 서열잡는게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해 봐."


루피, 네가 마운팅하는게 좀 보고싶어졌거든. 상디가 담배를 훅 하고 루피의 얼굴에 뿜었다. 루피가 인상을 찌푸렸다. 





*





끝까지 루피는 상디를 상대로 마운팅을 하지 않았다. 아예 뒤를 내줄 각오를 하고 몇 번이고 졸랐지만 루피는 강경했다. 아니, 오히려 그가 그만큼 강경했기에 그런 식으로 각오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상디는 늦은 밤에 잠들지 못하고 이층에서 담배를 뻑뻑 피고 있었다. 발 아래로 프랑키의 코골이가 느껴졌다. 오늘 밤 잠은 다 잤군. 투덜거리며 몇 개비째인지 모를 담배를 하나 더 꺼내드는데 갑자기 우당탕 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퍼졌다. 깊은 밤, 다들 잠에 든 탓에 듣지 못했지만 깨어있던 상디는 들을 수 있었다. 교대로 보초를 서는 보초탑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를…다!"

"조…하지…까!"

"…라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 상디는 무슨 일인가 싶어 오늘의 보초당번을 손에 꼽아 보았다. 분명 이 시간엔 조로가 루피랑 교대하는 시간이었지?


투닥대는 소리가 아래까지 들린 탓에 상디는 공중을 발로 빠르게 차 월보를 시전했다. 그렇게 올라간 보초탑에는 루피와 조로가 서로 뒤엉켜있었다. 깜짝 놀란 탓에 공중으로 몇 미터 낙하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올라온 상디는 보초탑의 창으로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조로가 루피를 깔려고 으르렁거리고 루피는 왜 또 이러냐며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었다. 이제 조로가 루피보다 실력이 웃도는 건가. 상디는 약간의 걱정과 약간의 조바심을 가지고 그 둘을 계속 내려다보았다. 


"잡았…다!"


조로가 선기를 잡았다. 루피의 어깨를 짓눌러 등을 바닥에 대었다. 그 위에 올라타 목덜미를 깨물려는 순간 루피가 순간적으로 몸을 뒤집었다. 고무라서 그런지 생각하지 못한 부분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듯 조로가 당황하는 순간 루피가 조로의 목덜미를 붙들고 보초탑 마루에 메다꽂았다. 동시에 조로의 등 위에 번개같이 올라가선 발로 조로의 두 발을 묶고, 한 손으로 조로의 팔과 몸통을 묶고 한 손으론 조로의 목덜미를 강하게 누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켜보던 3자인 상디가 어리둥절한 상황이니 조로는 오죽할까. 상디는 다시 1-2미터 정도 하강했다 다시 올라왔다. 


조로의 눈에서 반항과 독기가 읽혔고, 그의 거친 숨소리와 하울링이 창 밖의 상디에게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점심 후에 조로에게 마운팅을 막 당한 참이었으니까. 루피가 대신 조로를 깔아주자 대리만족에 뼛속까지 시원한 느낌이었다. 


'꼴 좋다, 바보 검사녀석.'


잠깐 눈을 돌린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로 눈에서 반항이 더 이상 읽히지 않았다. 순종적인, 포기한 듯한 지침이 읽혔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상디가 이리저리 둘을 살피는데 루피가 몸을 일으켰다. 


"상디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자꾸 마운팅을 해. 우린 동료니까 마운팅은 하면 안 돼. 에이스도, 할아버지도, 사보도 그랬단 말이야."

"흥. 그 꼬부랑눈썹은 내 한참 밑이니까 해도 괜찮아."


'저 씹어먹을 자식이!!'


상디는 이를 득득 갈았다. 내가 악력보단 기술쪽을 치중해서 그렇지 악력 단련해봐라. 널 아주 다진고기로 만들어 마운팅해버릴테다. 분노에 찬 상디가 온 몸에 불을 활활 불태우고 있을 때, 루피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로, 너 한번 더 다른 애들한테 마운팅 하면 전원 마운팅으로 서열 잡을 거야."

"칫-"


끝까지 긍정의 대답을 하지 않는 조로를 두곤 내려간다~를 쾌활하게 외친 루피는 한달음에 남자 방까지 쏘아져갔다. 옷을 털며 보초탑에서 몸을 풀려는 조로를 보곤 상디 또한 도로 이층으로 내려갔다. 


'전원 마운팅 이라….'


상디는 자꾸 맴도는 루피의 목소리 때문에 그날 밤을 꼬박 새듯이 했다. 




*




"야, 마리모."

"뭐냐 에로쿡."

"그… 있잖냐, 어제 밤에… 루피 마운팅하려고 했냐?"


너 어떻게 암? 이라는 표정을 미묘하게 지으며 덤벨을 들었다놓는 조로를 향해 상디가 볼을 붉히며 말했다. 루피한테 마운팅 당한 거 너 뿐이라며? 이 배에. 어, 그녀석 안하려고 하니까.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상디가 말하기 힘든지 담배를 한 개비 꺼내서 흡 하고 빨아들였다. 담배연기와 나오는 말은 항상 그렇듯 조금 부드러웠다. 


"루피… 마운팅 어떻게 하냐?"

"왜. 당해보고 싶냐? 또 해줘?"

"꺼져. 네놈한텐 당하고 싶지 않아."


짜증을 틱틱 대는 상디를 향해 피식 웃은 조로가 말을 이었다. 루피, 마운팅 한 적 없어. 상디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조로는 묵묵히 덤벨을 들어올렸다가 내렸다가 반복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상디가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럼 너, 마운팅 당한 게…?"

"아냐. 정확하겐 녀석이 날 저지한거지. 내게 마운팅을 시도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헐."

"…그게 말이야, 의외로 자존심 상해서."


조로가 무심한 표정으로 덤덤히 말했다. 미호크에게 검술을 사사받으며 몇 번인가 마운팅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미호크는 네가 내 가르침을 받는다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자 루피가 저를 마운팅하지 않는 것이 저를 제 동료로 확실하게 인식시킬 생각이 없다는 걸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상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로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의 귀에 루피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우왓!! 엄청나!!! 프랑키!!"

"우오오오!!! 남자의 로망이다!!"

"그렇지? 캬하하하!!"


상디가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이곤 바닥에 지졌다. 그리곤 넌지시 조로에게 물었다. 넌, 루피가 마운팅 할 거라고 생각하냐? 


아니.

조로의 대답은 짧았다. 상디는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려다 텅 빈 담뱃곽을 큰 손으로 구겨버렸다. 휴우. 바보 마리모 네가 한 번만 더 덤벼라. 그럼 마운팅 한대잖아. 그 말을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한 상디는 불을 잃은 담배꽁초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이시대에 드문, 마운팅 없는 해적단이 우리라니. 나 참. 아쉬운 듯한 한숨이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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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 드디어 몇 개월만의 연성인가..ㅠㅠ 루산 루조로 조산 느낌이려나? 마운팅이라는 게 어짜피 커플적인 것도 아니고 하니 굳이 커플링은 없다고 보지만... 


2/22 일본 고양이의 날이라면서요?! 고양이 훈육법에 마운팅이 있길래 훅 와서 써봄 ㅎㅅㅎ

























삼 일 만에 찾아간 그 집은 여전히 냉막한 바깥풍경을 내놓고 있었다. 예술가의 집이라면서 이래도 되는건가. 크로커다일은 장갑을 낀 손 그대로 초인종을 두번 눌렀다. 지잉-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초인종이 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꽤 오랫동안 사람의 반응이 없었기에 그는 다시한번 벨을 눌렀다. 지잉- 벨 소리가 어떨지 조금 궁금해졌지만 늘 그렇듯 입김과 함께 날려버렸다. 춥군. 크로커다일은 집 안이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내뱉어지는 숨이 파슬파슬 눈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컥 하는 소리가 들리고 황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 현관문 앞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다란 쇠문을 덜컹거리며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는 소리에 귀가 저려 크로커다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검고 커다란 현관문이 열리고 집 내부가 보였다. 

"안녕하…??"
"안녕, 악어!!!"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르톨로메오가 아닌 화가 루피, 본인이었다. 생각 외로 그가 나왔길래 조금 당황한 크로커다일이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자 그의 차림새는 가관이었다. 이 추운 겨울에 뭘 하던건지 민소매를 입고 반바지 차림에, 심지어 맨발로 나와 있었다. 그러고선 춥다 소리 한번안하고 저를 보며 시시싯 웃는데, 보는 사람이 으슬으슬할 지경이었다.

"안 추운가?"

저도 모르게 말이 멋대로 나와버려 아차 싶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듯 작게 점프하는 루피. 으악, 추워!!! 라고 소리치며 크로커다일의 회색 머플러를 확 끌어당겼다. 생각지 못한 움직임에 끌려간 크로커다일은 머플러가 목을 죄어와 켁켁거리며 루피의 팔을 두드렸지만 그는 춥다춥다 외치며 오히려 크로커다일에게 꼭 달라붙었다. 어쩔 수 없이 크로커다일은 그를 제 품에 안고 어기적어기적 괴상한 폼새로 집 안에 들어가야 했다. 

집 안에 들어오니 그의 차림새가 이해되었다. 여긴 여름인가? 그는 제 품에서 벗어나 벽난로로 뛰어가는 루피를 보며 발 아래로 차오르는 열기를 느꼈다. 온도차가 이렇게 심하면 감기 걸릴텐데. 크로커다일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목도리와 코트를 벗어 의자에 얹어두었다. 루피는 벽난로 앞에서 무얼 만들고 있는 와중이었는지 벽난로 앞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구부정하게 앉아 무얼 만지작거리고 있자 호기심이 동한 크로커다일이 그의 뒤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퍼즐 조각이었다.

"퍼즐 하십니까?"
"응. 악어도 퍼즐 좋아해?"
"싫어하진 않습니다만…."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 크로커다일은 물끄러미 그의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퍼즐의 조각을 맞추고 있지 않았다. 그걸로 알 수 없는 기괴한 모형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풀인지 본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떡칠되어진 퍼즐조각들은 더 이상 퍼즐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했다. 점점 더워오는 탓에 벽난로에서 조금 물러난 크로커다일은 제 셔츠의 윗단추 두어개를 풀어냈다. 덥군. 이상하리만큼 더워. 방을 보니 어디에서 온풍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유난히 따뜻해 그 이유를 찾으려 눈을 굴리는데 그의 귀로 루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온돌이라는 거 때문이야."
"온돌?"
"바닥, 따뜻하지?"

난 추운게 싫어서. 루피가 퍼즐 덩어리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차림새가 이해되었다. 문 밖에서와 달리 더운 입김이 후욱 하고 내뱉어졌다. 루피가 기지개를 쭈욱 피며 크로커다일을 쳐다보았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상태로 스트레칭을 계속하자 시선이 민망해진 탓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바르톨로메오 씨는 없습니까?"
"바티는 아까 심부름 보냈어."

읏차. 루피가 마지막 스트레칭을 끝내고 더운 탓에 셔츠를 펄럭대고 있는 크로커다일을 잡아끌었다. 맞닿아오는 온기가 뜨거워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귀찮아져 내버려두었다. 루피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저번과 같은 방. 그 곳 또한 따뜻했지만 아까 거실의 열기에 비하면 살 만 했다. 루피는 또다시 그를 쇼파에 앉혔다. 저번처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건가? 크로커다일은 쇼파에 좀 더 편하게 자리잡으며 루피를 쳐다보았다. 루피는 그새 바퀴달린 의자로 이동해서 그의 옆을 뱅뱅 돌고 있었다.

"있잖아, 악어."
"뭡니까."
"이번 주 내내 만날 수 있어?"

탁. 그의 주위를 뱅뱅 돌던 루피가 바퀴의자를 멈추곤 그를 올려다보았다. 누군가가 올려다보는 게 오랜만인 것 같아서 크로커다일은 흠칫 놀랐지만 도로 차분하게 그의 일정을 떠올려 보았다. 이번 주 내내는 무리…일까. 그는 고개를 슬슬 내저었고 루피가 에엑 하며 빠르게 침울해져갔다. 무슨 일이길래 그럽니까? 그가 묻자 루피가 입술을 쭉 내밀며 투정부리듯 

"매일 보고 싶은걸, 악어……."
"?!"

맨날 그리고 싶단 말이야… 쇼파에 앉아있는 크로커다일의 무릎에 치대오며 징징대는 루피를 말 없이 내려다보았다. 독특한 남자. 그는 크로커다일의 무릎에 볼을 부비며 징징대다가 뜬금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젤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옆에 있었는지 붓을 하나 집어들곤 커다란 동작으로 붓을 휙휙 내려그었다. 저게 그림인가 행위예술인가 싶을 정도로 큰 동작을 반복하던 루피가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앙다물곤 끙끙댔다. 그러더니 이젤 위의 스케치북을 들고와선 크로커다일에게 보여주었다. 거칠고 역동적인 선의 흐름. 크로커다일은 검은 선이 그려진 스케치북을 물끄러미 보더니 나즈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접니까?"
"아니!"

아주 당연하듯, 당당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크로커다일은 이마를 짚었다. 오히려 그 뻔뻔하도록 당찬 모습에 질문을 하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래도 알고싶은 건 물어야했다. 

"그럼 절 대체 왜 모델로 쓰는겁니까?"
"응? 모델이니까 쓰지?"
"아니, 모델이란 건 보통 그리는 대상 아닙니까?"

크로커다일의 말에 루피가 고개를 갸웃 했다. 틀려, 아니 다른건가? 루피가 중얼중얼 거리는데 그 사이 붓에 묻은 검은 물감이 루피의 볼에 튀었는지 주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루피가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자 거뭇한 자국이 볼에 선명하게 남았다. 나 참. 어리군. 크로커다일은 제 손에 침을 묻혀 그의 볼에 남은 물감자국을 슥슥 문대주었다. 볼이 몰캉몰캉한 게 어린 티가 풋풋하게 났다. 무심결에 얼룩을 닦아주다 아차 싶었다. 그는 제 아래의 사촌들도, 조카들도 아니었고 심지어 이제 겨우 두번 만난 사이었다. 어느새 이렇게 손이 나가버리게 된 건지. 루피의 습관이라는 별명 붙여부르기가 그에게도 금방 전염된 것일까. 크로커다일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볼에서 손을 떼었다. 아니나다를까 루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각도차이 때문에 그를 어린 아이 뻘로 생각하게 된 탓이겠지. 크로커다일은 머쓱하게 손을 내리곤 미안하다고 조그맣게 읊조리듯 말했다. 

루피는 흐응, 하는 숨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시시싯 하고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자 루피가 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악어 너, 좋은 녀석이구나?"

니히히히. 괴상한 웃음소리로 루피가 실실 웃자 무어라 할 말도 안나오게 된 크로커다일은 입만 뻐끔거리다가 곧내 손으로 입을 가리곤 턱을 괴었다. 젠장, 그는 루피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르톨로메오의 귀환은 늦었다. 루피는 오늘 내내 붓을 썼다. 밑그림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 건지. 아니, 그보다 나를 그리고 있긴 한건지. 

아까의 실수로 당황한 크로커다일이 한 자세로 오래있지 못하고 계속 꿈지럭대자 루피가 그 자세를 따라가며 그렸는지 다리가 여덟개 달린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며 또다시 이상한 웃음소리로 웃었다. 매일 오지 못하는 대신 한번 오면 오래 있어달라는 루피의 부탁에 얼결에 그러겠노마라고 대답한 탓에 새벽 두어시까지 루피의 모델을 해주던 그는 두시 반에 이젤 위로 고꾸라지는 루피를 그가 황급히 안아들고서야 오늘 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액새액 코를 골며 자고있는 루피를 안아든 그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가운데 바르톨로메오가 등장, 그를 받아안곤 침실로 옮겼다. 두 사람이 작업실에 있는 동안 바깥의 온도를 어떻게 조절했는지 쾌적하게 만들어 둔 바르톨로메오가 목도리를 두르고 나가려는 그에게 언제 오냐고 물어왔다.

"그 쪽에서 연락하는 거 아녔습니까?"
"그래도 크로커다일 씨의 시간에 우선해야죠."

전시가 있긴 하지만… 바르톨로메오가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작품을 내실 수 있을까요…?! 되려 제게 물어오는 탓에 크로커다일은 답을 얼버무리긴 했지만 결국 다음 약속을 잡지 못한 채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새벽 세시의 밤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날카로운 화살 같았다. 오늘 그의 페이스에 휘둘린 저를 탓하는 듯 매섭게 불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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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그득그득한데 생각만큼 안 써져서 슬픈... 
이건 연습삼아 쓰는 걸로!

랄까 왜 자꾸 글자체랑 크기가 오락가락하지?




















 "그래서 이번 해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시… 성, 선생님?"


안경을 고쳐쓰며 맞은편의 사내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던 기자는 벌떡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고 혀를 씹었다. 자신의 기자인생 일생일대의 대물과 만나는 중인데 혀를 씹다니. 제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그가 벌떡 일어난 이유를 찾기 위해 그와 같은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선생님…?"

밤낮이 제멋대로인 화가의 시간에 맞추어 인터뷰 하러 나온 탓에 창 밖은 어둠으로 그득했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 대신 야근을 하는 수많은 빛들이 별들처럼 날아와 꽂혔다. 

다크서클이 짙게 자리잡은 초췌한 얼굴을 한 곳을 향해 돌린 채 움직이지 않던 그는 덩달아 같이 일어난 자신의 매니저를 담 넘듯 넘어 무엇에 홀린듯 카페를 뛰쳐나갔다. 그의 움직임에 주춤하던 매니저는 맞은 편에 앉은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곤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 달려나갔다.

'선생님 또 무…!'

이 시대의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라 불리우는 화가, 몽키.D.루피. 그는 첫 전시회부터 세계적인 파장을 몰고 온 마력을 가진 예술가였다. 특유의 선 쓰임과 화풍에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로부터 집중조명을 받고있는 젊은 화가. 그는 때마침 밤샘작업을 마치고 숨만 겨우 쉴 정도의 체력으로 이 인터뷰에 끌려나온 것이었다. 그가 달릴 힘이 없다는 사실은 매니저가 집에서부터 카페까지 거의 업다시피 해서 데려왔다는 것으로 증명될 터. 

그러나 지금의 그는 어디에 숨겨놨던 힘인지 건장한 체격의 매니저마저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화가 루피의 매니저생활 4년의 바르톨로메오는 루피가 엄청나게 질주하는 두가지 경우를 알고 있었는데, 하나가 고기류의 식사를 앞에 뒀을 때. 하나가 소재를 발견했을 때였다. 야밤에 고기를 먹을 리가 없으니 아마 두번째의 이유겠지. 바르톨로메오는 헉헉거리며 발빠른 선생님의 뒤를 좇아갔다. 

이윽고 익숙한 뒷통수가 야경을 뚫고 눈에 들어왔다. 멈춰선건가. 단숨에 횡단보도를 넘어버린 루피때문에 헐레벌떡 뒤따라온 그는 갑자기 풀썩 쓰러지는 루피를 보고 놀라 빠르게 달려갔다. 

"선생님… 선생님!!"
"…하아?"

위에서 들려오는 낮은 한숨소리에 바르톨로메오는 루피를 끌어안고 제 앞의 인영을 올려다보았다. 별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남자. 야근 중 밤참을 사러가는건지 담배를 사러가는건지 피로한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젋다고는 할 수 없는 남자. 

'이 사람인가.'

평범한 회사원. 굳이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늦은 나이로 입사해서 젊은 상사들에게 눈치 꽤나 보일법한 부하랄까. 바르톨로메오는 그런 자의 도대체 어디에서 소재거리를 발견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삼일은 입은듯한 와이셔츠와 구깃구깃한 넥타이. 여기저기 얼룩이 묻은 바지하며 구두도 험하게 신는 듯한 사내. 그다지 독특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남자. 바르톨로메오는 도저히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의 눈은 틀린 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뭡니까?"

그는 피로한 기색이 절절 묻어나는 목소리로 성가시다는 듯한 태도를 비추었다. 바르톨로메오는 약간 울컥 했으나 아쉬운 쪽은 이쪽이었다. 입에 물고만 있던 담배를 손으로 내려쥔 그를 향해 바르톨로메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하지만,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제 팔 안에서 기절해 있는 루피를 들어올리며 어깨를 으쓱하는 바르톨로메오를 보며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쁜데. 후우 하고 퍼지는 입김과 함께 그의 작은 불평이 밤하늘로 흩어졌다. 







루피를 잠시 벤치에 뉘이고 제 옷을 덮어준 바르톨로메오는 냉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명함을 꺼냈다. 삐딱한 자세로 서 있는 사내의 모습에 다시 한번 울컥 했으나 꾹 눌러참고 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을 건네주는 손을 빤히 바라보고 서 있던 그는 반대쪽 다리에 체중을 실으며 한 손으로 명함을 건네받았다. 

짜증나는 남자다… 바르톨로메오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명함을 보고 눈에 살짝 이채를 띈 사내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데면데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벤치에 누워계신 분이 이름 있는 화가이고, 당신을 모델로 쓰고 싶어한다고. 페이는 후하게 드릴테니 모델이 되어 달라고. 저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분이라고 자신의 스크랩북을 보여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상업용 포르노 같은 건 아니겠지?"
"그 무슨…!! 그런 것과 비교하다니 루피 선생님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아님 됐지."

시큰둥하게 내뱉은 그의 말에 말대꾸 해 주고싶은 기분이 목젖까지 올라왔으나 그는 선생님의 중요한 모델이었다. 이렇게나 힘이 없으면서 미친듯이 달려간 걸 보니 백발백중 엄청난 것이 나올 테였다. 선생님의 그림은 바르톨로메오의 삶의 이유이자 에너지였다. 자신의 영웅이 애타게 바란다면 만족시켜 주고 싶은 것이 팬의 도리. 그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그에게 부탁했다. 명함의 번호로 연락주시면 이쪽에서 먼저 만나러 가겠다고. 

끝까지 대충대충 듣는 듯 하더니 그는 손에 들린 편의점 봉투를 까딱이며 멀어져갔다. 바르톨로메오는 루피를 다시 안아올렸다. 기자를 너무 기다리게 했지만 오늘은 인터뷰 하기 틀린 듯 싶었다. 다시 스케쥴을 짜야하는 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크로… 크로커다일…은?"
"예?"
"모델 말이야, 모델… 어딨어?"

눈을 뜨자마자 웬 낯선 이름을 불러대는 선생님때문에 바르톨로메오는 제 수첩을 뒤져가며 크로커다일이라는 사내를 찾았지만 수첩에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게 누굽니까? 그가 루피의 곁에서 기름이 튀지 않도록 고기를 뒤집으며 묻자 멍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루피.



*

"모델, 모델이 되어줘…."
"뭐야? 누구야?"

날카로운 담배냄새. 담배냄새에 베일듯한 기분을 느끼며 루피가 그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붙들었다. 제법 키가 크고 몸도 다부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번뜩이는 느낌. 그래, 그 느낌 하나가 자신을 이리도 달리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남자가 필요해. 이 남자를 그리고 싶어. 내 모델이 되어줘. 말을 다 전하지 못하는 그의 몸에서 힘이 축축 빠졌다. 전날의 여파가 거세게 몰아쳤다. 젠장, 어제 밤샘을 괜히했어. 이 남자를 만날 줄 알았다면 체력을 아껴뒀을텐데. 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시야가 흐릿해지며 남자의 모습이 울렁였다. 

"루피… 당신 이름은? 이름… 제발…"

무릎 아래로 힘이 빠지며 보도에 무릎을 꿇는 자신이 느껴졌다. 한층 낮아진 곳에서 올려다보는 남자의 모습은 아름다워, 루피는 거대한 자연에 마주한 작은 인간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둑한 하늘과 눈부신 야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은 그에게 어떤 것을 끊어지게 만들었다. 눈 앞이 검어지고 밝아짐을 반복했다. 이름, 이름을 들어야 해. 

"이봐, 당신 괜찮아?"
"이…이름…."
"크로커다일이다. 이봐! 정신차려!"

몸이 이리저리 휘청이는 듯 하더니 바닥이 아까보다 가까워졌다. 까무룩해지는 정신 한편에서 자신을 부르는 바르톨로메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천장 위로 기억을 되살리는 루피를 일으켜세운 건 갓 다 된듯한 밥 냄새였다. 배에서 꼬르륵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밥 가져 올테니 손으로 집어먹지 마시고 젓가락 꼭 쓰세요, 선생님."
"으응."
"저 봐. 내 말은 콧등으로 들으시지."

응이라고 대답했으면서도 접시 위에 놓여진 고기를 기어코 손으로 집어먹는 루피를 보며 혀를 쯧쯧 차는 바르톨로메오. 그가 밥을 제대로 퍼 왔을 땐 이미 접시 위의 고기가 모조리 루피의 입 안으로 사라진 상황이었다. 

"밥!!!"
"네네, 여기 있다구요."

바르톨로메오가 건네는 그릇을 받아들고 흡입하다시피 밥을 한공기 해치우더니 고기를 굽는 그를 힐끗 보곤 밥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달각거리는 소리와 밥 냄새가 흘러나오더니 밥을 고봉으로 쌓아서 오는 그를 보고 피식 웃은 바르톨로메오는 이틀간 잠만 잤다고는 말 못하겠네, 라며 중얼거렸다. 워낙 날짜개념 없이 사는 그라서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맞은 편 방에 흐릿하게 보이는 지난 며칠간의 밤샘작업이 보이자 그는 제가 그린 것도 아니지만 뿌듯했다. 제 선생님의 작업에 힘이 될 수 있다니. 고기를 불판 한가득 얹으며 헤실헤실 솟아나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는 그의 귀로 청천벽력같은 말이 들려왔다. 

"저거, 버릴거야."
"예??!!"

고기를 입 안에 한가득 우겨넣고 밥을 우물거리며 루피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 방에 있는 그림, 맘에 안들어. 찢을거야. 그 말에 새하얗게 질린 바르톨로메오를 눈치채지 못한 그는 남은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불판을 뒤적였다. 

"선생님, 저거 내시기로 하셨당께요? 다다음 주에!!"
"너 또 사투리나온다, 바티."

히히히 하고 웃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바르톨로메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저걸 왜 버리세요, 버릴 거면 저 주세요, 그보다 다다음 주에 내기로 했다니께요? 그의 복잡한 마음 속의 말들을 다 알아듣지 못한 루피는 히히 웃으며 치직소리를 내는 불판위의 고기를 한 점 한 점 뒤집었다. 오늘도 고기냄새!!! 라고 외치는 그의 미소가 해맑았다. 









"왜 아직도 연락 안 와?"
"그러게요… 선생님 이름은 검색하면 금방 나올텐데… 선생님의 모델을 하는게 얼마나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일인지는 다섯 살 꼬마라도 알텐데!"

에이. 루피는 이젤 앞에서 인중에 연필을 얹은 채 의자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점 하나 찍은 하얀 캔버스가 있었다. 뭘 그리려고 해도 의욕이 안나는 탓에 빈둥빈둥거리는 루피를 보다못한 바르톨로메오가 저번 그 카페 앞 횡단보도까지 나갔다 온 것도 벌써 수십차례에 달했다. 뿌우옇게 김이 서린 창 밖으로 너덧 남아있던 낙엽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루피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도무지 뭘 그려낼 수가 없었다. 

"선생님, 모델이라도 불러올까요?"

그가 부른다 하면 발벗고 나설 모델들이 줄을 섰을텐데. 바르톨로메오의 조심스런 말에도 루피는 입술만 삐죽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가 아니면 그리고 싶지 않아. 

루피의 이상한 고집이 시작됨을 눈치챈 바르톨로메오는 한숨을 내쉬며 들고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주전자에서 물이 팔팔 끓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김 사이로 나부꼈다. 이미 저번 그림은 찢어버린 지 오래. 아무래도 제 기간에 맞추기는 글렀는 듯 싶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코앞으로 다가온 마감에 발을 굴러도 나오지 않는 건 나오지 않고, 연락 또한 없었다. 루피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혼자서 끙끙대며 스케치북을 들곤 그 남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그려대고 있었다. 방에 처박혀 밥과 낙서만 반복한 지 오늘로 딱 육 일 째였다. 

육시럴 놈. 바르톨로메오는 들고 있던 오징어포를 질근질근 씹으며 그 남자에 대한 분노로 몸을 불살랐다. 이러다가 제 선생님께 슬럼프라도 오지 않을까 안달복달하며 거실을 오가는데 핸드폰이 지잉 소리를 내며 울렸다. 일주일 째 진동 및 벨소리에 간 졸이며 살던 그라 진동소리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며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등록되어 있지 않는 번호였다. 

요 며칠간 등록되지 않은 번호가 이 핸드폰으로 걸려온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꿀꺽 침을 삼키곤 조심스레 통화버튼을 눌렀다. 후우- 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세요?"
- 얼마전에 명함 받은 사람인데.
"!!!!!!!"

그는 공중으로 펄쩍 뛰다가 장식물에 머리를 박을 뻔 했다.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여기서 통화하면 선생님이 엄청 신경쓰시겠지.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루피의 작업실을 나갔다. 루피는 그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방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급하게 건물 밖으로 뛰어나온 바르톨로메오는 헉헉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아
"전화 걸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그 쪽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계세요…."
- 모델, 여유가 있다면 가끔씩은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야.

거만한 듯한 말투. 말로는 감사하다고 하고 있지만 역시 바르톨로메오는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급한 건 다음 주 전시였다. 중요한 전시여서 어떻게든 펑크내지 않기를 바라는 매니저의 입장에선 저절로 공손해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보다 급한건 선생님 쪽이었다. 자신의 우상인 선생님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 꼴은 도저히 못 본다, 라고 굳게 마음먹은 그의 입에서 미팅 약속이 나왔고 의외로 어렵지 않게 시간을 맞춘 그는 일각을 다투는 그의 면접을 최대한 당겨 오늘 오후 8시에 만나기로 했다. 

일단 면접을 보고 제 선에서 허락되는 한도 내의 사람을 루피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역으로 선생님이 모델을 원했다. 일의 모든 순서는 역방향이 되었고, 일단 OK를 받은 상태에서 면접을 보는 엉망진창인 상황. 머리를 쥐어뜯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느새 나와서 로봇을 조립하고 있는 루피가 보였다. 루피가 그를 보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달려왔다.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그의 멱살을 쥐고 한껏 끌어당긴 루피가 시시싯하고 웃었다.

"언제부터 같이 일해?"
"…그가 선생님이 원하시는 일정에 맞춰주길 바래야죠. 가능하다면 빨리요."

이런 눈치는 귀신같으시군. 방방 뛰며 활기를 찾은 듯한 루피가 기분이 좋은 듯 찬장에서 과자를 우르르 쏟아내더니 폭풍같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헤실헤실 웃던 바르톨로메오는 늘 건네오던 계약서와 조금 다른 것을 준비하기위해 제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 뒤로 박스 과자 네 통과 봉지과자 여섯 개를 순식간에 해치운 루피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과자 봉지 몇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안정을 찾은 공기가 과자 봉지를 기웃거리며 흘렀다.







오후 7시 50분.
만나기로 한 카페에 앉아 바르톨로메오는 그의 몫 까지 주문해두었다. 아메리카노면 되겠지. 커피를 달고 살 것 같은 피로함을 그에게서 느꼈기에 아무 생각없이 주문했으나 꽤나 제 선택에 만족한 바르톨로메오가 흐뭇하게 웃으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달달한 캬라멜 향이 카페 안을 맴돌았다. 오랜만에 당을 채울 생각으로 들뜬 그가 발을 작게 동동거리며 자신의 음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챠르랑, 하는 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렸다. 긴 남색 코트를 입고 녹색 목도리를 칭칭 두른 사내가 들어왔다. 그 남자였다. 

바르톨로메오는 그를 부르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원체 독특한 머리색을 가진 그를 알아보기는 간단했고, 그 남자는 곧장 그 쪽으로 걸어왔다. 

그가 사내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은 두 가지였다. 보폭이 크고 시원하다. 키가 크다.

주위에서 저만큼 큰 사내를 본 기억이 드물었는데, 남자는 자신 못지않게 키가 컸다. 일주일 전은 경황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검은 코트를 빼입고 걸어오는 폼새가 뭇 모델 못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르톨로메오는 그에게 모델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이런.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루피 선생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바르톨로메오 입니다."
"크로커다일 입니다."

바람에 휘날려 아무렇게나 내려온 머리를 대충 쓸어올리며 대답하는 크로커다일의 앞에 그가 수첩을 내밀었다. 스케쥴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다이어리였다. 크로커다일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 내용을 짧게 훑어보았다. 그의 눈이 내용을 대충 훑었다 싶자 바르톨로메오가 제가 들고 있던 펜을 빨간색으로 바꾸며 딸깍거렸다. 

"갑작스러워서 죄송하지만, 최대한 빨리 만나뵙고 싶어해서 그런데 괜찮은 날짜를 알 수 있을까요."

대뜸 본론부터 꺼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긴 했지만 일주일 동안 끙끙대던 선생님을 더 이상 두고볼 마음이 그에게는 없었다. 크로커다일을 흘깃 쳐다보자 그는 왼손으로 턱을 괴곤 반대 손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손가락이 길고 큼직했다. 톡톡 두들김을 반복하던 손가락이 검은 코트의 주머니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더니 핸드폰을 꺼내어 이것저것 눌러댔다. 흐음. 낮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달콤한 음료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르톨로메오의 앞에 놓여지자 코로 한껏 향을 음미한 그가 초콜렛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크로커다일의 손가락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급한 일정이 있습니다."
"음?"

되물어오는 크로커다일을 보며 바르톨로메오가 빨간 펜으로 스케쥴러에 선을 쭉 그었다. 내일부터 일주일 간의 일정. 모두 붉은 선을 그은 그가 펜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반쯤 뜬 크로커다일의 눈을 바라보며 일주일 후에 꼭 제출해야하는 그림이 있는데 선생님이 당신 아니면 안그리시겠답니다, 라고 말하자 그의 눈이 조금 더 크게 떠졌다.

"크로커다일 씨의 일정을 우선시 할 겁니다. 무엇보다 선생님껜 지금 당신이 무척이나 필요하니까요."

제 앞에 놓여진 아메리카노를 물끄러미 보던 크로커다일이 벌떡 일어나더니 카운터 옆에서 시럽을 챙겨들고 왔다. 시럽을 세 통 털어넣는 걸 보고 단 걸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한 바르톨로메오는 그가 우유와 설탕까지 세 통씩 털어넣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마지막 설탕을 털어넣고 섞지도 않은 채 그걸 빤히 바라보는 크로커다일. 그가 가져온 침묵의 무거움에 눌려 바르톨로메오도 조용해졌다.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귀에 속속들이 들어왔다. 의자 끄는 소리, 발 걸음소리, 커피머신 소리… 각종 소리에 파묻힌 침묵을 깨고 크로커다일이 입을 열었다.

"주말엔 시간이 괜찮습니다."

그 말에 주말의 모든 일정은 취소되었다. 저번에 못다한 인터뷰가 주말에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바르톨로메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와 알아야 하는 주의사항을 기록한 종이를 건네고 찾아와야 할 장소의 주소를 적어주곤 전화번호를 휘갈겨 썼다. 마침 그도 멀지 않은 곳에 산다고 해 굳이 데리러 가기까진 안 해도 될듯 해 바르톨로메오는 한숨 놓았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가 자리를 일어서자 바르톨로메오도 엉겁결에 몸을 일으켰다. 2미터에 가까운 두 거한이 갑자기 일어나자 카페의 시선이 모조리 쏠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건넨 바르톨로메오는 그가 카페 문을 나간 후에야 아메리카노를 단 한 입도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먹지도 못할 정도로 달아진 아메리카노를 보니 앞으로 순탄하지만은 않을 듯한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 그는 캬라멜 마끼야또를 두 잔 테이크아웃하곤 루피가 기다리는 작업실로 돌아갔다. 










"안녕하십니까."


무뚝뚝한 얼굴은 변하지 않은 채 조금 쌀쌀한 기운을 안고 들어온 크로커다일은 쾌적해보이는 거실로 안내되어졌다. 색색깔의 소파가 화려하게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것과는 달리 흰 색으로 통일된 벽지는 꽤나 독특한 맛을 주었다. 크로커다일은 개중 녹색의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있는 강렬한 풍의 노을 그림과 그 그림을 찢고 박혀있는 가짜 말 장난감. 명품을 망친 기분이 들면서도 오묘하게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이 또한 화가의 작품일까? 크로커다일은 피식 웃으며 바르톨로메오가 내어오는 차와 과자를 받아들었다.

"선생님은 곧 내려오실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바르톨로메오는 그날 이후부터 엉덩이를 바닥에 못 붙이고 있는 루피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꽤나 개인적인 웃음이라 크로커다일은 그 미소를 못 본척 했다.

쿠당탕당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계단에서 사람 하나가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조금 젊어보이는 사내가 등장했다. 피를 흘리며 등장한 사내를 본 바르톨로메오가 기겁을 하며 티슈를 뭉텅이로 뽑아가는 걸 보니 저 자가 화가인 듯 했다. 

루피의 피를 부산스럽게 닦아주고 응급처치를 하는 바르톨로메오와는 달리 나름 침착한 표정으로 쇼파에 주저앉는 그.

"…하?"
"선생님, 맞은편에 앉으셔야죠."
"앗, 그런가."

크로커다일의 옆 쇼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르톨로메오의 말에 벌떡 일어나 맞은편에 앉는 루피. 크로커다일은 그가 꽤나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긴, 예술가들이 제정신이면 그건 또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느라 잠시 한눈팔고 있다 마주본 젊은 사내의 두 눈은 생각외로 깊고 잔잔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금방 인정했다. 

"크로커다일 입니다."
"루피."

선생님, 존댓말! 옆에서 바르톨로메오가 끼어들었지만 루피는 꿈쩍도 하지않았다. 그러더니 제 이마에 붕대를 감는 바르톨로메오를 밀어내고 크로커다일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밀려난 바르톨로메오는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붕대감기를 완성했고 붕대를 둘둘 만 채 루피는 짙은 눈으로 크로커다일을 바라보았다. 

저를 그리고 싶다 한 화가였다. 크로커다일은 그에 대해서 조금은 검색해보았었다. 그가 유명한 화가라는 것도 알고, 그의 그림들도 몇 번 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매스컴에서 그렇게 띄워주는 신인 화가라. 그에게 무슨 매력이 있길래 매스컴에서 그렇게 들끓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만나고 나니 왠지모르게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로커다일의 생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와중, 갑작스럽게 끼어든 밝은 목소리에 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악어! 이제 악어라고 부를거야!"
"악...어?"
"당신의 별명이에요."

악어악어 노래를 부르며 쇼파를 벗어나 방방 뛰는 루피를 보며 아연한 얼굴로 읊조리자 옆에 있던 바르톨로메오가 두근거리는 얼굴로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별명이라고? 

"선생님은 모든 모델에게 별명을 붙여주세요. 모델과 가까워지기 위한 선생님만의 방법이에요."

바르톨로메오는 빙글빙글 웃으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머지는 선생님이 알아서 하실테니까, 라며 그와 화가만을 거실에 남겨두고 어딘가를 서둘러 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 화가를 보려고 하자 어느새 코앞에 다가와있는 루피.

"악어. 악어어."
"...후,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편한대로 불러! 그보다 모델 경험 있다고 그랬지?"
"일단은."

시시싯 웃는 그의 얼굴이 참 맑다고 느끼며 그가 이끄는 대로 어디론가 끌려간 크로커다일은 의외로 엄청난 작업실의 규모에 놀랐다. 그러나 작업실이 하나가 아닌 듯 그 곳을 지나 어느 방으로 들어간 루피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조금 넓다싶은 방에 몇 개의 이젤, 그리고 모델이 서는 듯한 낮지만 넓은 발디딤대와 세면대. 그리고 침대가 하나 쇼파가 두어개, 의자가 차곡차곡 쌓여진 채 방 구석에 놓여져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어서 머뭇거리고 있자 루피가 도도도 달려와 그를 끌어당겨 쇼파에 앉혔다. 그러더니 나는 듯이 이젤로 다가가 뭐를 꿈지럭 거리더니 그려대기 시작했다. 사삭 사사삭 하는 연필인지 뭣인지 모를 소리가 조금 들리더니 붓을 들고 가볍게 터치하기 시작하는 그. 크로커다일이 경험해본 모델이라는 것은 잡지 모델 같은 경우였기에 그림의 모델로 서는 것은 영 낯설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크로커다일을 보고 스케치북 몇 장을 순식간에 넘긴 루피는 잠시 손을 멈추고 의자를 지익 끌었다.

이젤에 가려졌던 루피의 얼굴이 마주보여서 조금 당황한 얼굴로 그를 마주보자 루피는 바퀴달린 의자로 갈아타더니 돌돌돌 바퀴를 굴려 그가 앉은 쇼파 근처로 왔다. 약 70센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춘 루피는 그의 주위를 뱅뱅 돌기 시작했다. 집 안이라고 해도 약간 쌀쌀했기에 코트를 벗지 않은 그는 어색하게 눈을 돌리며 그를 봤으나 루피는 진한 눈빛으로 그를 살피며 서너바퀴를 더 돌았다. 

"뭐, 해야할 일이라도?"
"으히으음."

루피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크로커다일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두어 바퀴를 더 돈 루피가 조금 떨어지더니 다시 이젤로 돌아가 뭔가를 슥삭댔다. 뭘 그리는 건진 몰라도 사람을 그린다고 치기엔 너무 빠른 터치. 





그 날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다가온 루피가 바닥에 누워 크로커다일을 올려다보며 비척대자 어디선가 나타난 바르톨로메오가 루피를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입에 고기를 한 점 물려주었다. 고기 한점에 후다닥 어딘가로 달려가는 루피를 멍청하게 쳐다보자 바르톨로메오가 밖으로 안내해줬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선생님은 굉장히 괴짜세요."
"그런 것 같군요."

모델로서의 유의사항이라는 항목이 있었었지. 크로커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바르톨로메오가 넘겨준 서류 중 하나에 있었던 유의사항 중 하나가 화가가 괴짜이므로 그에 날선 대응을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달 것, 이었다. 그걸 보고선 모델이라면 그쯤은 이해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오늘 화가를 보자 그 내용이 화악 와닿았다. 

전시까지는 오 일이 남았다. 그동안 한번만 더 와줄수 있겠냐는 부탁에 크로커다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순순한 대답에 놀란 건 오히려 바르톨로메오 쪽. 회사원이 아니었던건가? 그가 혼자 중얼거렸지만 크로커다일은 그 새를 못참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고 있었다. 벌써 하늘은 어둑해 곳곳의 가로등들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물든 거리를 한번 내려다 본 크로커다일이 고개를 들어 집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사람의 그림자가 그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 밝은 집 안. 사는 이는 화가와 그의 매니저 뿐일까. 크로커다일은 주머니에 만져지는 담배갑을 꽉 잡았다. 

"그럼 삼일 후에 뵙죠."
"알겠습니다."

짤막한 전달사항 이외에는 특별히 없는 듯 바르톨로메오는 그를 보내주었다. 크로커다일은 그가 자신을 썩 마음에 들지않아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오늘 일이 끝나고 나면-일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붙잡고 무어라 몇 마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입을 대지 않았고 조용히 그를 보내주었다. 커다란 현관을 나섰다. 쌀쌀한 바람이 코트 자락을 쑤시고 들어와 그는 목도리를 고쳐매었다. 주머니에 담배가 있었지. 꺼내 본 담뱃갑의 안엔 한 개비의 담배가 남아있었다. 어두운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자신들의 안락한 집으로 들어가 하하호호 따스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 터. 크로커다일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쓴 맛이 혀를 돌아 입안으로 퍼졌다. 그는 끝내 불을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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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벼운거 써보려고 하니까 손에 가시가 돋...
제목을 빨리 지어야 할 텐데.....또르륵
나라도 사랑한다 내 작품 흑흑





 

"아, 좀 하지말라고!!! 찢어진다고!!!"

"히히힛. 좋아해, 조로."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의 조로가 제 복대로 파고드는 루피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당기면 당길수록 늘어나는 루피의 볼에 애초에 아픔을 선사해 주려 했던 그의 의도와는 달리 실실 쪼개는 루피의 얼굴이 커지기만 하자 도리어 화가 뻗치는 그. 

 

"그러니까 복대에 두 사람은 못 들어간다고!"

"괜찮아, 난 고무인간 이니까!"

"안 괜찮...! 헉?"

 

뿌직.

뭔가 위험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엉덩이까지 밀어넣고 있는 루피의 몸이 잠깐 정지했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조로는 악착스레 루피를 잡아당겼지만 고무인간이 괜히 고무이겠는가. 늘어나기만 할 뿐 도저히 줄지 않았다. 

 

"윽, 야... 루피!!"

 

뿌드득. 뿌득.

 

"조로, 이거 이상한 소리나! 재밌다!! 뭐야, 안에 뭐가 든 거야?"

"아무것도 안 들었어!! 그보다 나와! 지금 이거 터지려고 하잖아!"

"흐음. 그래?"

 

루피는 고개를 갸웃 하더니 미묘한 미소를 씩 지었다. 뭐지, 이 불안감은. 조로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루피를 올려다보자 그의 가슴을 짚고 복대 안으로 몸을 밀어넣던 루피가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고무고무 풍선!!!!!"

"야!!!!!!!"

 

뿌지지, 쨔악, 쨕! 쨔쟉!

루피의 몸이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조로와 루피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담고있던 조로의 복대가 거창한 소리를 내며 갈기갈기 찢겨 날아갔다. 이번에 산 거 마음에 들었는데...! 조로는 방금 흔적을 알 수 없게 찢긴 자신의 복대가 엄청나게 힘들게 구했던 것이라는 걸 깨닫곤 표독스럽게 루피를 노려보았다. 저게 얼마짜리...! 노스블루의 장인이 한땀한땀...! 

 

"이번 건은 용서할 수가 없군. 루피, 결투를 신청한다."

"에에, 싫어!!! 조로랑 내가 결투하면 진 사람이 배를 나가야 하는 걸."

"큭, 젠장...."

 

아무리 먼지나도록 패 주고 싶어도 결투는 아니었나. 조로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좋은 묘안을 찾은 듯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응, 뭔데?"

"우리 헤어져."

"하아?"

 

조로의 갑작스런 이별선언에 루피가 이해를 못한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조로가 이를 으드드득 갈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나, 너랑 헤어질거라고. 우리 이제 사귀는 사이 아니야. 오케이? 나 겁나 삐짐. 조로의 으르렁거림에 루피가 잠시 침묵 하더니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헤어지자니. 우리, 사귀는 사이였어?"

"하아?"

 

이번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린 건 잔뜩 화가 난 조로였다. 지금 뭐라고 한 거냐? 우리... 뭐? 어이가 없어서 넋이 턱 하고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뽀뽀에, 포옹에, 키스에, 섹스까지 해 놓고 지금 뭐라고? 

 

뭐라 반박은 해야겠는데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흥분상태에 도달한 조로는 입만 뻐끔거렸다. 왜 하필이면 이럴 때 주변에 츳코미를 걸어 올 멤버가 아무도 없는지. 루피랑 배를 지키기로 한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그럼 너, 이때까지 날 안은 것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거냐?"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또박또박 말한다고 했으나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그 뒤에 들려올 대답이 두려워. 루피의 입에서 흘러나올 단어 한마디 한마디가 겁이 나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기분. 조로는 마음 속 무언가가 크게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이 때까지 너와 나는 무엇이었나. 대체 내게 왜 그렇게 잘 해 준거냐. 어째서 매일 밤 나를 그렇게 격정적으로 안았던 거냐. 

 

남자가 울면 안돼. 늘 들으며 자란 조로라 열이 올라오는 눈을 깜빡이며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려 애썼으나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에, 그치만 너 내가 키스하거나 하면 엄청 화내잖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말투의 루피. 니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니. 조로는 눈알이 시큰해지며 시야가 어룽거리는 눈물로 가로막힘을 느꼈다. 젠장, 안 울거라고. 안 운다고! 

 

"나랑 섹스할 때도 맨날 울고."

 

씨발, 그럼 울지 웃냐?!! 조로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루피, 넌 내가 아무랑이나 섹스하는 그런 놈인 줄 알았냐?! 선장이니까 시키는 대로 한다고? 그렇게 봤다면 사람을 잘못 봤다고!"

"조로... 너 울어?"

"씨발... 그래! 운다, 어쩔거냐!! 섹스할 때도 쳐 울고 지금도 쳐 운다고!"

"음~ 그치만 너, 섹스할 때랑 우는 모습이 다른걸."

 

끝까지 헛다리를 짚는 듯한 루피에게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다. 조로는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팔뚝으로 닦아내며 뱃 속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울분을 거세게 외쳤다. 

 

"몰라서 묻는거냐!! 당연히 다르지!!!!! 머리가 얼마나 돌인거야!!"

"에에? 왜 달라?"

"섹스할 때야 좋아서 우는 거고, 씨발, 지금이랑 비교할 걸 해야지!! 이런 멍청이가 뭐가 좋다고 나도...!!"

 

주르륵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다시 한번 훔쳐낸 조로는 한 손으로 칼집을 꽉 움켜쥐었다. 더 이상 이 해적단에 남아있고 싶지 않아. 선장이란 놈이 너무 멍청해. 뿌득 하고 이를 간 조로는 바닥에 갈기갈기 조각나 흩어진 복대의 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복대 찢긴 것 때문에 홧김으로 말한 이별의 말에, 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다니. 자신이 무척이나 비참하고 초라해져 조로는 복대조각을 꽉 움켜쥐곤 몸을 돌렸다. 

 

"다른 애들에겐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혼자 다닐거다. 잘 있..."

 

조로가 마지막 말을 하려는 찰나, 루피의 손이 조로를 홱 하고 돌리더니 조로의 위로 덮치듯 날아왔다. 쿠당탕 소리를 내며 마루로 넘어진 조로는 쿨럭거리며 제 위에 올라탄 루피를 밀어내려 했으나 고무라는 게 얼마나 성가신지. 밀어내도 밀리지 않고 늘어났다 되돌아 올 뿐이었다. 

 

"뭐냐. 비켜."

"싫어."

"억지 부리지...!!"

 

고개를 올려 쳐다본 루피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진중했다. 루피가 이런 표정을 지을때를 그는 잘 알았다.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돌리자 조로 위에 앉은 루피가 강제로 고개를 원위치로 시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너... 이때까지 운 거, 좋아서 그랬던 거야?"

"큭,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 다 부질없..."

"대답해."

 

진지한 눈을 한 루피. 조로는 그의 이런 눈빛에 반했었다. 첫 동료가 될 때도, 처음 관계를 맺을 때도. 가끔씩 보여주는 이런 모습에 심장이 크게 요동치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그가 제 안에 꽤나 깊이 들어와 있었나보다. 어느새 그에게 마음을 이만큼이나 내 준 건지. 조로는 제 자신을 자책하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좋아서 그랬다. 기분 좋아도 눈물이 난다고, 멍청한 선장님."

"그럼 매번 기분 좋았던 거야? 어제도?"

"...당연하지. 그렇게 자주 해댔는데도 못 느끼면 고자라고."

 

물론 뒤로 느끼는 거니 고자와는 상관이 없어도. 하지만 굳이 그 말을 덧붙여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씨발... 낮게 욕을 읊조리며 루피를 올려다보자 아까와 다른 분위기로 진지해진 루피.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묘하게 뿌듯해 보이는 표정.

 

"그랬구나!! 조로, 기분 좋았구나! 나랑 할 때!"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이미 배신감은 크게 느꼈는데. 조로는 말을 꾹 삼켰다. 그러나 얼굴 앞의 반짝이는 루피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니가 맨날 우니까 나랑 하는게 싫은 줄 알았어. 그럼 너도 역시 나랑 하는게 좋은거네? 그치? 뽀뽀도 사실 좋은거지?"

"...그 물음엔 그렇다고 해야겠지."

"그럼 우리 사귀는 사이구나!"

"......뭐?"

 

루피의 말을 정리해 보자니, 항상 관계 시 자신이 아프고 싫어서 우는 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단다. 원래 연인이란 건 서로 사랑하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만 좋아하고 조로는 자신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기에 연인이라고 생각 못했다는 것. 루피의 얼굴이 태양 아래 핀 해바라기처럼 화사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우리 애인이구나! 그치!! 나만 좋아하는 거 아니지?!"

"어...음... 그러니까...."

"나 좋아해?"

 

직구를 던져오는 루피의 말에 조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좋다, 루피. 선장으로, 친구로, 그리고 남자로. 

 

그래. 그런 거였나.

루피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마음이 놓이는 기분과 함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이런 식의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이 세상에는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군. 조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루피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자 민망함과 함께 드는 가벼운 배신감. 내가 이때까지 얼마나 다정하게 해 줬는데, 그걸 몰라?

 

조로가 루피의 눈을 두 손가락으로 찔렀다.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조로 위로 쓰러져 바둥대는 그를 보자 킬킬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이때까지 좋아한다는 티를 그렇게 많이 냈는데 그걸 눈치 못채냐? 멍청한 애인 같으니."

"으흐흐흐... 하지만 눈을 찌를 것 까진 없잖아!"

 

루피가 눈을 채 뜨지 못하고 눈물만 주륵주륵 흘리며 조로의 옷자락을 더듬거려 잡곤 흔들어댔다. 눈을 찌른 건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아팠다고? 잠시동안은. 

 

조로는 제가 느낀 배신감의 크기가 이걸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제 주머니에 있던 작은 상자를 꺼냈다. 까만 바탕에 분홍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그 상자에는 페로나의 얼굴이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 이걸 이렇게 쓰게 되는군. 조로는 씨익 웃으며 그 상자를 루피의 앞에 두곤 뚜껑을 열었다.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거대한 크기의 네거티브 유령. 루피를 덮치다시피 쓸고 다시 되돌아 와 상자 안에 들어가는 유령을 보곤 조로는 다시 상자를 닫았다. 위급할 때만 써야 한다고 바락바락 경고하던 페로나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미안, 위급한 건 아니었어.

 

네거티브 유령이 통과한 루피는 온 세상의 불행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조로 위에 축 늘어졌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조로의 발닦개가 되고싶어...."

"어이...."

"아아... 오늘의 나는 정말 최악이야... 조로의 모낭충보다 더 최악...."

"야, 루피...!"

"죽고 싶어... 인간 쓰레기야... 다시 태어나면 조로 팬티의 먼지가 될 테야...."

 

왜 다 나야!! 조로는 미묘한 네거티브에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루피를 밀어내려 했으나 루피는 오히려 조로에가 착 달라붙었다. 마치 끈끈이 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루피의 머리를 몇 번이나 갈겼지만 루피의 네거티브 정도는 혹이 세개가 넘어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면 조로의 피부세포가 되어야지... 그러려면 이렇게 붙어있으면 되겠지...?"

"그럴 리가 있냐!!!"

 

꽈앙-!

다섯번째의 주먹이 루피에게 내려 꽂혔지만 루피는 여전히 붉어진 눈으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조로에게 꼭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나. 다음에는 멀리에 있을 때 써야겠군. 조로는 한숨을 내쉬며 루피를 마주 껴안았다. 잠깐동안은, 이렇게. 애들이 돌아올 때 까지만, 이렇게 있자.

 

 

 

 

"쟤네 아직도 슈퍼~하게 껴안고 있는데?"

"어휴, 정말! 언제쯤 떨어질거야! 장 본거 상한다구!"

"나미 씨~♡ 상한 거는 쟤들 먹일테니 걱정 마쎄요♡"

"후후후, 하마터면 밀짚모자 해적단이 붕괴할 뻔 했는걸?"

"어이어이, 로빈. 웃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요호호홋, 젊은 건 좋은 거군요! 부러워서 배가 아플 지경이네요. 아, 저 해골이라 배도 없지만. 요호호홋!!"

"헤에, 그렇구나. 두 사람 그런 관계구나...!"

 

네거티브 유령의 등장이 있기 조금 전 부터 이미 배 근처에 도착해 있던 다른 일행들은 꼭 달라붙어 껴안고 있는 두 남자들의 애정전선을 훼방놓고 싶지 않아 매너있게 기다려주는 중이었다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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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루조로 입니다....ㅎㅅㅎ....

루조로 뭘로 쓸지 고민하면서 연성메이커 한 10개는 돌렸네요.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게 나와서 후닥닥 써 봤습니다! 올레!! 

소재는 [헤어지자고? 우리 사귀는 사이었어? / 은근 뿌듯함 / 발닦개] 였어요!!!!!! '▼'

 

너무 연성을 안하는 게으름뱅이라 백번달성표나 해 볼까 하다가 이렇게 선착으로 한 분의 리퀘를 받아 보았어요. 역시 남의 리퀘라는 생각을 하니 빨리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드네요!! 

 

마음에 드시면 좋겠어요..... ㄴㅅ님... 얼마 전 생일이셨다구!! 축하드려요! 선물로 제 사랑을 드립니다. 넣어두세요.(찡긋 (ㄵ님:필요없어 

 

그리구 저의 조그마한 연성을 바치옵니다♡ 루조로를 다급하게 외치신 늘선님 넘 웃겼ㅋㅋㅋㅋ 

 

맘에 안드시면 매우 쳐 주십쇼!(두근두근

 

 

 

 

 

 

 

 

 

 

 

 

 



"아야! 아이, 베였어- 짜증나아!"

페로나가 제 넷째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징징댔다. 그녀는 재 뒷자리에서 졸고있던 조로의 책상을 발로 빵빵차며 그를 깨웠다.

"야! 너 밴드 있어?"
"...하? 뭐라는거야."
"나 손 베였단 말이야!!"

퉁퉁 불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페로나를 귀찮다는 듯 바라보던 조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거 침 바르면 나아."
"뭐래!! 더러워! 무식한 남자 같으니라고!"

페로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냈으나 손톱을 손질하던 캐번디쉬나,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나미, 보온병에서 차를 따르고 있는 상디와 맞은 편의 로우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씨잉.... 왜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는거야!"
"교무실에 내려가봐. 저번에도 키드가 교무실에서 받아오던걸?"
"아앙? 내가 쓴 게 마지막일텐데? 네놈 쓸 건 없을거다."

징징대는 페로나에게 국사 책을 뒤지던 로빈이 한 마디 던지자 키드가 비아냥거리며 태클을 걸어왔다. 키드의 비아냥에 페로나는 으아앙 하고 제가 들고있던 인형을 집어던지곤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키드 바보녀석!! 진짜 못됐고 멍청해!!"

품 안의 곰인형 하나를 꼭 안고 교무실로 터덜터덜 걸어간 페로나가 드르륵 하고 교무실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크로커다일 선생님과 루피 선생님이 있었다. 평소 꼼꼼한 크로커다일 선생님이라면 갖고 있겠지! 

"크로쌤! 반창고 있어요?"

워낙에 겁을 내지 않는 페로나라 평소 무섭기로 평판이 자자한 크로커다일에게도 쉽게 말을 걸 수 있었다. 크로커다일은 담배를 피지 못해서 약간 짜증난 듯 거친 손길로 서랍을 뒤적거렸다. 

"루피 쌤은.... 없죠? 반창고."
"엉. 그런 거 없어."
"그럼 그렇지."

페로나가 흥 하고 고개를 돌리자 루피가 시시싯 하고 웃었다. 크로커다일은 여전히 뒤적뒤적 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짜피 루피쌤한테는 기대도 안했어요. 자기 수업시간에 책도 까먹는 사람인데, 뭐."
"뭐, 그런 거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
"중요하거든요!!!!"

나참, 도대체 어디에 태클을 걸어야하는거야! 페로나가 투덜대며 크로커다일의 옆으로 다가가자 루피의 팔이 그녀를 냉큼 막아섰다.

"아아~ 루피쌤! 뭐하는 거예요!"

페로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버럭 짜증을 내자 루피가 실실 웃으며 그녀를 밀어냈다. 아 진짜, 뭐예요! 페로나의 짜증에 루피가 웃으며,

"너 빨리 돌아가."
"....하아?"
"너야말로 뭐라는거냐. 자, 여기있다. 반창고 가져가라."

크로커다일이 반창고를 던져주자 그걸 냉큼 캐치한 루피가 페로나에게 그걸 쥐여주곤 빠르게 교무실 밖으로 밀어냈다. 

"크로쌤은 내꺼란 말이야."

해맑게 웃으면서 얀데레적인 대사는 좀 아닌듯한데요... 페로나는 왠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 빠르게 교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몰라 뭐야이거. 무서워! 


그 후 교무실)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군, 루피 선생."
"그치만 진짠걸. 크로쌤 내꺼란 말이야!! 뺏기기 싫어!"
"하아...."

크로커다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보같은 일직선이랑 어떻게 엮이게 됐을까. 그래도 히히히 웃고있는 루피를 보자 웃음이 먼저 나왔다. 

"안 그래도 네녀석 외엔 딱히 없다고."
"음? 뭐라고?"
"후우...별거 아니다."
"크로쌤 시시하네~"

빙글빙글 웃는 루피의 얼굴이 무척이나 눈부시다고 생각되는 어느 교무실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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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을 여럿 넣어보기는 처음이라서 그냥 나열하듯 얘기한 거 같다. 좀 어색어색;;; 

집에 있으면 연성욕이 안생기니 싸돌아다녀야겠넼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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