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바닷빛이 유독 푸르른 날이었다. 상디는 그렇게 기억했다. 물 빛이 푸른 날은 밤 바다가 한층 더 맑았다. 마치 쏟아지는 별빛을 한 컵 가득 담아낼 수 있을 것 처럼. 에이스가 아닌 루피의 다른 형제. 사보에 대한 상디의 첫 인식은 그정도였다. 그 외에 그를 정의할 단어가 상디에겐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알라바스타에서 에이스가 그랬듯 이번 인연도 쉽게 스쳐지나가겠지. 상디는 후추를 갈아내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녀석들을 보았다. 식당이 평소보다 더 살가웠고 힘찼다. 이미 사보를 부여잡고 한바탕 눈물콧물을 쏟아낸 후 조잘거리며 어린 아이마냥 사보를 부여잡고 얘기를 하는 루피와 늘 그렇듯 흥미 없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조로, 코알라라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레이디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솝과 쵸파는 루피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주고 프랑키는 배를 수리하러 나가고 없었다. 


"아, 상디 씨. 차 한잔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아아-."

브룩이 어느새 비어버린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그의 차 사랑은 실로 엄청나서, 배 안에는 늘 찻잎이 대량으로 실려있었다. 나미 씨가 농담으로 배가 가라앉으면 주변이 찻물바다가 될 거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상디는 브룩이 손짓하는 차를 꺼내주며 다시한번 힐끗 루피네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 같은 루피를 마주보고 사랑스럽다는 듯 응응 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보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상디를 향해 방긋 웃었다. 그 순간 시간이 조금 느려진 듯한 착각. 조금은 얼룩진 바닥이 삐걱이며 그의 웃음을 담아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제가 가벼운 에피타이저로 만들던 음식이 꽤나 본격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불판 위에서 벌겋게 달아오르는 새우 몇 마리가 크림 가득한 몸을 제멋대로 선보였다. 젠장. 상디는 혀를 가볍게 한번 차고 메인 요리로 전환시켰다. 찻물을 내린 브룩이 요호호호 웃으며 몸을 돌렸다. 창가에 걸어둔 마른 꽃에서 얇게 마른 붉은 꽃잎이 떨어졌다. 상디는 두어장 남은 꽃잎을 가냘프게 달고있는 꽃다발을, 이제는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디, 라고 했나?"
"…아아. 루피 형씨 아냐."

사보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다구. 그는 짧게 웃으며 상디의 맞은편에 삐딱하게 섰다. 어느새 다른 녀석들은 밖에 나가버린 걸까, 식당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의 손에 마른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상디의 눈이 커졌다. 아까 제가 갈아두려 했던 것. 턱짓으로 그걸 가리키자 그가 눈치챈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장갑 위에서 바스라지는 꽃다발이 아슬아슬해보였다. 

"다 마른 거 같아서 말이야. 내가 새 꽃으로 갈아 끼워도 될까?"
"그래주면 좋지."

상디의 입에 웃음이 잠깐 걸렸다. 사보는 꽃다발을 쥔 손을 살짝 폈다 다시 쥐었다. 손에서 화르륵 하고 불이 치솟았다.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르고 꽃잎을 잃은 추한 꽃다발은 사보의 손에서 한 줌의 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능력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 어색하게 미소짓는 그를 보며 상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 또한 이 나이가 되어 악마의 열매를 먹는다면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보면 에니에스로비의 녀석들, 열매를 먹자마자 싸웠던 거 같은데 꽤나 대단했던 건가. 상디는 잡다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잠시 숙였다 들어올렸다. 사보의 눈이 지긋이 그를 향했다 떨어졌다. 상디가 재료를 손질하는 쪽에 다가가 제 몸을 기울여 그의 하는 양을 구경했다. 정갈하게 잘려진 고기들과 새파랗게 날이 선 칼날, 그리고 손의 상처들. 사보는 저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손에 상처가 많네."
"뭐, 일단 요리사니까 말이야."
"꽤나 멋진 걸."
"감사."

사보의 굽슬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흉터. 상디는 그 흉터에 잠시 눈을 두었다 내렸다. 상디의 구역에 제멋대로 침범한 이 치곤, 그는 꽤나 신사적이었다.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는 이윽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밖에 녀석들한테 가 보지 그래. 상디의 조금 퉁명스러운 말에도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걔네들 이야기는 대충 다 들었으니까 괜찮아. 그러는 그에게 상디는 한숨을 내쉬며 로빈양을 위해 만들어두었던 아이스크림을 내주었다. 로빈양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지만 꽤 담백하니까 그도 좋아할 듯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자마자 꽤 밝은 표정으로 바뀌는 그를 본 상디는 잠깐 웃음을 그렸다. 

"저기, 상디."
"엉."
"에이스… 말이야."

조금 뜸을 들이는 듯 말을 꺼내는 사보. 상디는 그런 그를 힐긋 쳐다보곤 다시 도마로 눈길을 돌렸다. 에이스의 이야기라니. 그 자신이 아는 것은 알라바스타, 그 모래 폭풍의 속에서 만났던. 의외로 상식적이고 쾌활했던 루피의 형. 그 정도였다. 흰수염 배의 대장이던가. 다 피운 담배 끝을 오물거리며 옛 기억을 되살려보는 상디의 귀로 사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썼던 기술이라던지, 혹시 기억해? 상디는 오물거리던 담배를 퉷 하고 뱉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었다. 기술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엄청난 위력이긴 했었다. 거대한 사막 몬스터를 통구이로 만들어버리는 정도였으니까. 

"글쎄, 요리하기 참 좋을 듯한 기술이라고 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과연 요리사 다운 생각인걸?"

사보가 빙긋 웃었다. 그럼 나도 네 요리를 도울 수 있을까? 두 손을 장난스럽게 뻗어보이며 손 끝에서 불을 일으키는 사보를 보고 상디가 고개를 삐딱하게 젖혔다. 불조절을 잘 한다면 말이야. 상디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보의 몸에서 발화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불의 입김에 휩쓸렸고 의도치 않았던 일인 듯 사보의 얼굴에 당혹이 비쳤다. 재빨리 근처에 있던 물 양동이를 들어 사보를 적신 상디는 자기가 부은 물 양동이가 냉동된 생선을 녹이던 얼음물이었다는 사실과 어짜피 능력자인 사보는 아무 피해가 없고 애꿎은 의자만 홀랑 타버렸다는 사실을 늦게 눈치챘다.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땐 이미 사보는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다. 

"어… 음… 고마워…?"
"…미안."

상디가 멋쩍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손님에게, 그것도 선장의 형이자 혁명군의 2인자라 소문이 무성한 이에게. 일단 옷부터 말려야겠군. 젖은 옷을 하나씩 벗는 사보를 앞에두고 상디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어깨에서 무겁게 떨어지는 코트와 목을 축축하게 감싼 셔츠. 방울방울 물기를 떨어트리는 머리칼. 자신과 같은 금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느낌에 상디는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옷을 벗다말고 상디를 쳐다본 사보는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미안하지만 옷 좀 빌려주겠어? 



밤바다가 거룩했다. 넘실거리는 물결 아래에 존재할 각종 재료들을 상상하며 상디는 낮에 있었던 일을 머리에서 털어내려 애썼다. 담배연기가 뿌옇게 어두운 하늘 위로 스며들었다. 입 안에서 혀로 이리저리 굴리던 연기들은 후우 하는 날숨과 함께 상디의 각종 고민을 싣고 흩어지는 듯 했다. 옅게 흩어진 담배 연기사이로 별똥별이 하나 긴 꼬리를 달고 바다로 잠겼다. 오. 짧은 감탄과 함께 눈을 끔뻑이던 상디는 소원을 빌지 못했다는 걸 인지하고 아쉬운 듯 입을 다셨다. 

"별이 내리는 밤이네."
"…형씨?"

사보라니까. 그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조로의 옷은 도무지 입어줄 만한게 못 되어, 제 셔츠를 건넸더니 저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탓에 허리쪽 단추 두어개만을 겨우 잠근 그는 상디의 반바지를 조금 타이트하게 입곤 약간 껄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묘한 모습에 상디가 픽 하고 웃음을 짓자 따라 웃는 사보의 웃음이 싱그러웠다. 새 담배를 꺼내려 담뱃갑을 열자 자잘한 담뱃가루만 남은 텅 빈 꼴에 담뱃갑을 한 손으로 구겼다. 그런 상디의 앞으로 담배가 내밀어졌다. 형씨…아니, 사보. 흡연자였어? 의왼데? 상디의 동그란 눈에 담긴 사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네 옷이잖아. 주머니에 들어있던데. 가슴 주머니를 툭툭 치는 사보에게서 담뱃갑을 받아든 상디가 두어개비 든 것을 확인하고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그의 흰 손가락이 다가왔다. 장갑도 젖어서 벗어버린 것인지. 깨끗할 줄 알았던 흰 손의 군데군데에는 상처와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이 일었다. 어두운 주변을 순식간에 밝히는, 조금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작은 불꽃. 불꽃은 푸석한 담배잎 사이로 스며들어 온기를 나누곤 스르륵 사라졌다. 땡큐. 상디가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사람은 죽으면 말이야, 누군가의 수호신이 된대."

사보가 짤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상디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헤에, 하고 낮은 호응을 해 왔다. 사보의 얼굴에 순간 스친 후회와 아쉬움의 표정을 캐치해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마, 에이스의 이야기겠지. 루피의 형인, 그리고 우리와도 꽤나 인연을 쌓았던 에이스는 2년 전 정상전쟁에서 해군 대장의 손에서 루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루피의 형이라는 에이스. 루피의 형이라는 사보. 아마 셋은 꽤나 끈끈한 유대로 다져진 관계였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보았던 루피의 태도가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했다. 상디는 폐부를 연기와 바닷바람으로 채웠다. 사보의, 조금 마른듯한 입술이 다시 열렸다. 

"에이스는, 아마 루피의 수호신이 됐을거야."

녀석, 아닌 척 루피를 엄청 아꼈었으니. 그의 말에 상디 또한 공감했다. 루피의 주위 모든 인물에게서 위험요소를 훑어내던 그, 속성과 다른 얼음같은 눈동자를 잊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는지 사보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난 네 수호신이 되고싶어."

사보가 밤하늘처럼 웃었다. 그의 웃음에 별무리가 내려앉은 것일까, 상디는 담배를 문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나서야 겨우 한 모금 빨아들일 수 있었다. 쿨럭 하고 사래가 들린 듯 젖은 기침이 나왔다. 기침이 잦아지고 나서야 그는 물을 수 있었다. 대체 왜…? 그의 물음에 사보가 몸을 돌려 제 두 팔과 배 난간 사이로 상디를 가두었다. 어안이벙벙한 채로 그를 올려다보는 상디를 내려다보며 순식간에 이마에 쪽 하고 키스한 사보는 구불거리며 흘러내린 머리칼로 상디의 볼을 간지럽혔다. 글쎄, 이유가 뭘까? 의문형인 대답이었지만 답이 뻔히 보이는 물음에 상디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타들어가는 담배가 상디의 손 끝에서 아슬하게 걸려있다 바다 위로 도망쳤다. 키스해도 돼? 별들이 어둠의 장막에서 빼꼼이 나와 반짝였다. 달빛이 두 사람의 금발에 섞여 내리는 밤, 푸른 밤 바다는 달과 별, 어두운 하늘과 두 사람을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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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님 @MONSTERx_xMODE  리퀘로 사보산... 길이 조절을 장렬히 실패하고 인크루트 기준으로 3833자.....

왜때문에 저는 리퀘를 두번 다 이 새벽에 쓰는걸까욬ㅋㅋㅋㅋㅋㅋ 헤헤 에밀리님 에이산 사약 영업해주셔서 토테모 감사.....해요....ㅠㅠㅠㅠㅠㅠ
그리구 징베 오야붕 갠봇 오셨을때 젤 먼저 축하해주셔서 넘 감사해욧!!!!! 진짜 에밀리님 제가 많이...많이 아껴요..흑흑 사랑합니다!!!!!



+사담) 징베 오야붕 와주셔서 넘넘 좋은!! 우리 헤어지지말아요!(?) 알랍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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