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들어 가장 화창한 날이었다. 점심 먹기 전 2교시라서인지 아직 졸음을 담지 못한 아이들의 눈이 들어오는 햇볕에 반짝거리며 빛났다. 칠판 가득 육각형과 화학 기호가 그려지고, 이미 화학이란 과목을 포기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에 띄이지 않도록 책상 아래로 무언갈 주고받았다. 언뜻 보이는 하얀 모습은 쪽지인 듯 했다.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던 조로와 그 옆에 앉은 상디에게도 쪽지가 도달했다. 전해주는 녀석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쪽지를 받아든 상디. 상디는 제 손에 들어온 꾸깃꾸깃한 쪽지를 펼쳤다. 반 전체를 돌고 저들에게 마지막으로 온 것인 듯 쪽지에는 여기저기 낙서와 더러운 손때가 가득했다. 사내새끼들이 더러워가지곤... 상디는 혀를 쯧 차며 쪽지의 내용을 읽었다. 


쪽지를 한참이나 읽던 상디는 푸스스 새어나오는 웃음을 꿀꺽 삼켰다. 미친 새끼. 저 앞에 보이는 까만 뺀질거리는 뒷통수를 노려보았다. 녀석은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리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곤 헤벌쭉 웃었다. 그는 웃음을 삼켜 칼칼해진 목을 두어번 침을 삼켜 다듬곤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조로를 깨웠다.


"야-."

"…으음?"

"그만자고 이거나 읽어봐."


제 손 앞으로 들이밀어지는 꾸깃한 종이. 조로는 오전 햇살이 낮잠자기 최고라고 생각하며 상디의 손에서 쪽지를 집어들었다. 잠에서 막 깬 눈은 앞이 흐릿해, 열심히 두 눈을 깜빡이지 않고서야 촛점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겨우 잡은 촛점으로 그리 길지 않은 문장을 대충 읽은 조로는 씨익 웃으며 종이를 도로 접었다. 


"저 미친 새끼."

"그렇지?"

"그래서 너 할거냐?"


조로가 선생이 뒤돌지 않는 틈을 타서 기지개를 쭈욱 폈다. 상디가 어깨를 으쓱 했다. 반장이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냐-. 선생님을 따라 다음 페이지를 펼치자 조로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렇긴 한데 말이지. 눈물 고인 눈을 팔등으로 대충 비빈 조로는 저도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상디와 그림이 다른 것은 기분 탓인가. 아무렴 어때. 상디가 그런 조로를 보곤 미간을 찌푸리며 제대로 된 페이지를 펼쳐 주었다. 화학을 선택한다던 녀석 치곤 꽤나 여유로운 폼인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의 실행시간은 정오 12시였다. 한창 수업 중일 시간. 심지어 반장이란 녀석은 오늘을 엄청나게 기대하는 듯 하더니 결국 반 단위로 끌어들일 줄이야. 상디는 볼펜 끝으로 코를 긁었다. 사람 모으는 데에 재주있는 녀석이라곤 생각했지만, 어째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야, 근데 그러다가 학주한테 걸리면 어떡하냐?"

"…에이, 봐주겠지…?"

"그 학주가 장난을 봐준다고?"


음. 그건 아니려나. 상디와 조로의 머릿속에 무시무시한 표정의 위압감 넘치는 학생부장 크로커다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워낙에 더러운 성격에 엄하기도 보통이 아니라 전교생의 두려움의 존재였다. 얼굴에 그어진 커다란 상처는 그가 선생을 하기 전 어떤 삶을 살아왔나에 대한 루머에 크게 기여했고, 그 대부분의 루머는 조폭이나 폭주족 등 위험한 쪽이었다. 반장 녀석은 워낙에 낙천적인 놈이라 그에게 한번 혼나고 나서도 친한 척 들러붙는 녀석이라 아무 걱정 없이 시도하는 것 같았지만. 재밌겠는데, 귀찮아. 조로가 중얼댔다. 그건 나도 동감. 상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은 제가 일을 벌여놓고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옆 짝꿍과 키득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12시 5분 전. 이미 교실을 한바퀴 다 돈 쪽지는 결국 조로의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고 반 내부에는 평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평소 녀석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지만 샹크스는 곧 다가올 중간고사의 걱정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반장인 루피의 얼굴이 주위를 한차례 훑었다. 다들 알지…? 굳은 눈빛을 주고받는 반 녀석들을 보며 조로가 가볍게 웃었다. 12시 2분 전. 시간이 촉박해졌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이는지 루피의 몸이 꿈틀거렸다. 짜식, 티 좀 내지 말지. 상디의 낮은 타박이 조로에게만 들렸다. 어짜피 안 듣는 녀석인데 뭐. 조로가 맞받아쳤다. 12시 1분 전. 반의 모든 녀석들의 몸이 조금씩 움찔거리고 나 이제부터 뭔가 할 거요! 라는 양상을 띄기 시작하자 아무리 수업땐 수업에 열중하는 샹크스라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가 화학책을 몸에서 조금 떼고 아이들을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12시에 정확하게 초침이 도달했다. 샹크스의 머리 너머에 높게 걸린 시계를 목빠지게 바라보던 루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을 하려다 말고 놀란 나머지 혀를 씹을 뻔한 샹크스가 루피를 바라보자 제 책상을 박차고 일어난 루피가 두 손을 높게 들고 교실이 쩌렁쩌렁하도록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


당황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는 샹크스를 보고 루피가 한번 더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제서야 루피를 따라 목소리륻 더하는 반 녀석들. 솔직히 이렇게까지 큰 목소리로 할 줄은 저들도 모른 탓이었다. 벌떡 일어난 루피가 체육복을 깃발처럼 휘두르며 일어나! 를 외치더니 제 주위의 두세녀석을 강제로 일으켜세워 끌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맞다, 이거 나가는 거였지!"


그제서야 기억해낸 듯 아이들이 우르르 떼거지로 일어났다. 30명이 넘는 사내자식들이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일어나 루피의 뒤를 따라 달렸다. 앞문을 박력있게 열어젖힌 루피가 복도로 향해 달려나가며 체육복을 흔들어댔다. 샹크스는 저도 모르게 분필자국 가득한 칠판에 등을 대었다. 고등학생이나 되는 녀석들이 떼거지로 일어나니 저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코 끝으로 미끄러진 안경을 느끼고 있는데 뒷 반에서 다시 와아아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조센징들 잡아라!!!"

"와아아아!!!!"


샹크스는 열린 교실 앞문으로 비치는 복도 풍경에 기가 막혔다. 뒷 반 녀석들이 떼거지로 우르르 지나간 탓이었다. 녀석들은 한 손에 다들 볼펜이나 자, 필통 등을 하나씩 들고 방금 달려나간 제 반 녀석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려 교실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뒷 반에서 수업중이던 버기가 황당한 얼굴로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대한 독립 만세!!!"

"잡아라, 한 명도 놓치지 마라!!"

"대한 독립 만세!!!!"

"조센징들 잡아!!!"


3층 복도가 떠들썩했다. 길고 넓은 복도를 가득 메우는 함성과 머리통들. 앞에 녀석들은 체육복을 태극기마냥 휘둘렀고 뒤에 따라오는 녀석들은 손에 새총이나 자 등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앞 녀석들을 위협했다. 선봉에 나선 루피는 애들을 이끌고 3층 복도를 한바퀴 돌 생각에 우오오 기합을 넣어 달렸고, 귀찮아하던 조로와 상디도 끝물 쪽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메꿔오는 놈들의 선두에는 우솝과 쵸파가 달리고 있었다. 


로시난테는 제가 교무실에 재료를 두고 온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가지러 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계단을 올라 교무실을 향해 몸을 옮기는데 바닥이 시끄럽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곤 고개를 들자 코 앞에 루피네가 와 있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지며 창틀에 허리를 박고 다시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 모습에 계단 맞은편의 교실에 앉아있던 로우가 수업 중인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로시난테에게 달려갔다. 


"코라상!!!"

"어이, 로우 어딜 가…?!"

"와아아!!! 대한독립만세!!!"

"조센징 잡아라!!"


로우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가는 바람에 사치와 펭귄은 얼떨결에 저들도 저 장난에 합류된 줄 알고 벌떡 일어났고 키드는 재밌는 장난거리를 찾았다며 반 애들을 선동해서 우르르 끌고 나갔다. 대신 독립군인가 일본군인가는 정하지 않았기에 엉망진창의 구호를 외치면서도 희희낙락하는 녀석들. 로우는 그런 그들을 다 무시하고 넘어진 로시난테를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한 순간에 반 아이들을 잃어(?)버린 도플라밍고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교실 밖으로 로시난테를 부축한 로우와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버기와 샹크스가 보였다. 


"이게 대체…?"



"와아아!!"


함성소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루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는 장난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저 코너만 돌면 3층 복도는 모조리 점령하는 것이 된다. 루피는 시시싯 웃으며 체육복을 더 거칠게 휘둘렀다. 


"대한 독립 만…으윽!!"


코너를 돌자마자 누군가와 강하게 부딪힌 루피가 상대의 품에 안겨들었다. 펄럭이던 체육복이 상대의 얼굴을 덮었고 꽤 장신의 사람인지 루피는 저를 가뿐히 받아드는 이를 느꼈다. 루피가 정지한 탓에 뒤에 우르르 몰려오던 루피네 반 녀석들과 우솝네 반 녀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속도를 줄였다. 루피의 체육복이 스르르 떨어져내렸고, 하얀 체육복 사이로 드러나는 짜증 순도 100%의 무시무시한 얼굴. 


"학, 학주쌤이다!!"


크로커다일이었다. 크로커다일은 제 얼굴로 날아든 체육복을 한 손으로 끌어 내리고 제 품에 부딪혀 온 루피를 나머지 한 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복도에서 뛰면 안되는 거 모르냐, 이 멍청한 꼬맹이들아."


이를 득득 갈며 한 자 한 자 씹듯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모든 애들이 숨을 죽였다. 저 뒤에서 따라오던 키드네 반 녀석들도 속도를 늦추곤 무슨일인가 웅성대며 앞으로 다가왔다. 루피도 그제서야 제가 부딪힌 이가 크로커다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복 목덜미를 구겨잡는 크로커다일의 손을 본 루피가 다시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띄우고 외쳤다. 


"으악! 일본 순경 킹한테 잡혔다!!!"

"…와하하하!! 그렇다! 우리 일본 순경 킹은 역시 쎄다!!!"

"자, 순경 킹! 당장 루피를 감옥으로 보내시죠!"

"순경 킹! 순경 킹!"

"안 돼!!!!"


우솝과 키드가 그 장난을 받아주었다. 한 순간에 일본 순경 킹(?)이 되어버린 크로커다일이 험상궂은 얼굴을 구겼다. 누가 순경이고 킹이냐, 꼬맹이 자식들아. 크로커다일의 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만우절이라고 장난 치는 건 알겠다만 적당히 쳐야지 넘어가주는거다. 으르릉 거리는 위협적인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도 떠들썩하게 굴던 녀석들의 입이 실로 동여맨 것 마냥 조용해졌다. 한숨을 푹 내쉬며 이 녀석들을 어떻게 혼낼지 고민하던 크로커다일은 갑자기 저를 꽉 안아오는 손을 느꼈다. 


"내가 바로 루논개다…! 다들 도망쳐!!"


루피가 두 팔을 크로커다일의 허리에 꽉 감았다. 그리곤 단단히 깍지를 낀 채 크로커다일의 몸에 매달렸다. 무서운 부장 선생님의 몸이 루피에게 잡히자 그제서야 난동을 피운 녀석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네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게…!! 오오!! 알 수 없는 사내들만의 눈물어린 우정이 꽃피고 합세한 세 반 녀석들이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 멀어져갔다. 남자 반의 소란에 고개를 내밀어 기웃거리던 여자반 아이들이 루피에게 옴싹달싹 못하는 크로커다일을 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웃는 놈 누구냐, 으르릉거리는 크로커다일의 목소리도 여자애들에겐 통하지 않는 듯 웃음 소리는 커져만 갔다.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루피는 학생이라구요!"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 로맨틱~!!"

"이제 선생님 루피 책임지셔야 겠다~!!!"


휙휙 거리는 휘파람소리와 함께 여자 반 앞에서 꽈악 끌어안겨진 크로커다일은 시싯 거리며 웃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웃는 얼굴에 차마 꿀밤도 먹이지 못하겠고…. 그는 루피의 이마를 두 손으로 쓸어넘겨 얼굴을 두 손에 꽉 쥐었다. 시시싯 하고 웃는 녀석과 얼굴을 잡자마자 여학생 반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 이걸 어떡한다. 크로커다일은 제 손에 들어온 루피의 볼따귀를 쭈욱 늘렸다. 볼이 늘어나면서도 이히히 거리며 웃는 루피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왜 또 나이에 안맞게 이렇게나 귀여운 건지.


'정말이지 지치는 녀석이라니까.'


어느새 교무실에서 나왔는지 미호크와 버기, 샹크스, 그리고 도플라밍고까지 기웃거리며 구경하러 왔고 크로커다일은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표시했다. 빨리 가서 자기 반 정리하시지 뭘 구경하러 오셨습니까. 뼈 있는 말에 슬금슬금 물러가는 네 선생님들과 주임 선생님이야 말로 교무실로 돌아가시죠, 라며 태클을 걸어오는 마르코를 째려보며 달라붙은 루피를 떼어내어 질질 끌고가는 크로커다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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