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높고 푸르게 떠 있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 그의 방문은 놀랄만큼 갑작스러웠다. 바다의 사황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해적단은 다들 어디에 둔 건지, 그는 제 본선 한 척만 끌고 유유자적하게 등장했다. 망루에서 망을 보던 녀석이 전보벌레로 그 사실을 빠르게 알렸다. 현 칠무해 중 한 명, 천냥광대 도화의 버기는 땀을 뻘뻘 흘리는 전보벌레를 받곤 뒤로 우당탕 넘어졌다. 


"뭐? 붉은 머리 녀석이 오고있다고?"

-예!! 틀림 없이 녀석입니다!


젠장, 이번엔 또 무슨 일이래. 버기는 넘어진 의자를 주울 생각도 안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자식이랑 엮여서 좋을 일은 한번도 없었지. 버기는 입술을 비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전보벌레가 놓여진 책상의 옆에 있던 녀석이 달려나갈 폼을 잡으며 선전포고로 한 발 쏠까요? 라고 물었다. 


"미쳤냐!! 그 자식은 사황이라고!!"

"선장님은 칠무해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버기는 입술을 짓씹었다. 계속 들려오는 전보벌레의 목소리에 의하면 이미 사정거리 내로 들어왔다고 했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쪽에서 포를 쏘는 듯한 자세나 위협을 가할 만한 상황을 조성하진 않고 있는 듯 했다. 샹크스 자식. 버기는 그 빨간 머리통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이글이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스러움. 제가 팔려 했던 악마의 열매를 먹게 한 그 분노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닥 자세하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버기는 옆을 지키던 선원이 다시 바르게 세워준 의자에 앉았다. 삐걱삐걱 의자 까딱이는 소리가 났다. 버기의 얼굴이 한차례 붉어졌다 돌아왔다. 


"어떻게 할까요?"


재차 물어오는 녀석을 향해 콧방귀를 흥 뀌는 버기. 올 테면 와 보라고 그래! 이 몸이 어디 여기서 끝날 것 같으냐?! 말도 안되는 허풍을 뻥뻥 치는 그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던지는 뭇 선원들과 그 꼴을 옆에서 보고있던 미스터 3은 혀를 끌끌 차며 읽던 신문을 접었다. 선원들을 다 내보내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고 일러두고 미스터 3과 둘이 선장실에 남았다. 


"무슨 생각인 거냐네?"


신문을 부스럭거리며 곱게 접은 미스터 3은 버기를 향해 의문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버기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자넨 그 빨간 머리 자식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이 참에 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말이네. 미스터 3의 말이 이어졌다. 시끄러워, 그게 가능하면 이 몸이 이러고 있겠냐. 버기가 짜증을 팍팍내며 중얼거렸다. 미스터 3은 흐응, 영혼없는 대답을 하곤 말았다. 붉은 머리 해적단의 본선은 점점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




"여어- 버기! 오랜만~!"


샹크스의 접근은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중간에 배를 멈춘 그는 작은 배를 하나 끌고 내려왔다. 버기를 향해 확성기를 쓰며 우렁차게 외치는 사황, 붉은 머리의 샹크스는 꽤나 친근한 모습이었고, 그에 버기네 해적단의 선원들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샹크스를 향해 뭐라고 한 마디 던지려 확성기를 붙잡은 선원 하나가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다. 주변 공기가 찌릿찌릿하게 느껴졌다. 한 명을 향해 패기를 쓴 샹크스가 다시 넉살좋은 웃음을 흘리며 여어~! 라고 버기를 외쳐댔다. 참다 못한 버기가 쓰러진 녀석한테서 확성기를 뺏어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무슨 일이냐, 빨간 머리!!"

"뭐, 우리가 일이 있어야만 만나나?"

"ㄱ, 개소리 말고 온 목적이나 말하시지! 안 그럼 이 몸이 요번에 새로 개발한 특제 머기탄을 다발로 쏴 줄테니까 말이야!"


앞부분에 살짝 더듬은 듯한 말에 선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버기가 한두번 더듬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허세 좋은, 조금 악독하면서도 조금 다정한 저희들의 선장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이건 확성기로 말하기 조금 그런 이야긴데 말이야~!"


샹크스가 말 꼬리를 늘리며 빙글빙글 웃었다. 버기는 섬광처럼 스쳐가는 감각이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녀석에게 제 발을 붙들고 있으라 명령하고 버기는 제 몸을 날려 샹크스가 타고 있는 조각배를 향해 다가갔다.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다가간 버기를 보며 붉은 머리 해적단의 쪽에서도 오오, 거리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보이냐, 이게 이 몸의 능력!! 버기는 한껏 잘난척을 내뿜으며 샹크스에게 다가갔다. 결코 무작정 가까이 다가가선 안돼. 버기는 저번에 있었던 치욕스러운 사건을 기억하며 샹크스에게서 1여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마주섰다. 샹크스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인데, 악수도 안 할거야?"

"왜 이 몸이 너 따위랑 악수를 안하면 안되는 거지?!"

"하하, 여전하구나."


틱틱대는 버기의 말투도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버리는 샹크스. 그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제법 비밀스러운 투로 장난스럽게 속삭이는 그 단어는 버기의 귀를 궤뚫고 들어왔다. 


'역시, 이 몸은 보물과 무슨 인연이 있는 게 틀림없어.'


아니나 다를까, 샹크스는 꽤나 흥미로운 보물 이야기를 들고왔다. 버기 그가 샹크스와의 악연을 끊으려해도 끊을 수 없는 이유. 그가 물고오는 보물 지도 및 보물섬 이야기는 꽤나 쏠쏠한 것이었고, 버기는 그것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탐스러운 빨간 코를 씰룩이며 버기가 흥미를 보이자 샹크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거뭇한 수염이 둘러싼 그의 입술이 몇 번 더 움직였다. 버기의 눈이 반짝였다. 둘의 거리가 급작스럽게 좁혀졌다. 버기가 샹크스의 멱살을 단단히 부여잡고 들어올렸다. 


"네 녀석, 그 정보 쓸만한 거겠지?"

"물론이지~ 내가 너한테 언제 보물가지고 거짓말 한 적 있냐?"


있잖아!! 엄청 많다고?! 호러스러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샹크스의 목을 조를 듯 보이는 그의 모습에 샹크스를 태우고 온 선원이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샹크스는 그의 남은 손을 들어 뒤의 사내를 진정시켰다. 버기와는 이게 익숙하니까 말이야. 벤이나 야솝 등 초창기 멤버들이 배를 몰았다면 뒤에서 시시덕 댔을텐데. 샹크스는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픽 웃었다. 미안미안. 진심이 들지 않은 사과에 더더욱 열이 받은 버기였지만 확실히 그, 정상전쟁 때 이후로 그가 자신에게 거짓 보물정보를 얘기한 적은 없었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가 있었지만.


"심지어 이 근처라고?"

"…그래?"

"마침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좋은 섬도 있고 말이야."


어때, 딱이지? 찡긋 윙크하는 샹크스의 멱살을 서서히 내려준 버기는 잠깐 고민하는 척 하다 냉큼 샹크스의 확성기를 뺏아 제 배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 이제부터 우리 배는 붉은머리 해적단 배를 뒤따라 간다! 웅성거리는 제 선원들을 본 버기는 꽤나 민망했다. 안그래도 아침에 한번은 붉은머리 해적단을 갈아 마실거라 외치고 다녔기 때문이겠지. 샹크스의 웃는 낯을 힐끗 본 뒤 그는 다시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부터 약 일주일 간 휴식이다! 알겠냐!!"


갑작스런 통보긴 했지만 그들도 일단 버기를 선장으로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었다. 칠무해가 된 이후로 수입도 짭짤했고 보물을 찾아 맴도는 버기를 따라 다니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심지어 파티도 좋아하는 선장이라니! 이번에도 일주일 간 신나게 먹고 마실 걸 예상한 선원들은 그들의 무기를 던져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선장을 닮아 파티를 좋아하는 구만? 샹크스의 말에 버기가 뭐가 나쁘냐! 라며 버럭거리느라 출발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곧 두 대의 본선은 근처의 어떤 섬을 향해 움직였다. 





*





"보물 이야기 인거냐네?"

"어…? 뭐, 그런거지!"


날 속이려고 하다니. 미스터 3의 한심한 눈길을 받으며 버기는 선장실을 나갔다. 제 크루들은 이미 대부분 갑판으로 나와있었다. 그의 뒤로 천천히 미스터 3이 선장실에서 나왔다. 아마 정박한 김에 책을 사러 가는 것이겠지. 버기는 갑판의 녀석들이 다 잘 보이도록 하늘로 둥둥 떠올랐다. 오오- 환호성이 나오는 제 크루들을 만족스럽게 보며 버기가 실실 웃었다. 


"네놈들!! 니들이 나 같이 화끈하게 훌륭한 선장 만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멋진 약탈을 위해서!!"

"당신같은 훌륭한 해적을 따랐다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즐거운 해적질을 위해서!!"


다 틀렸다!!! 버기가 호탕하게 웃었다. 제 선원들을 향해 손가락을 쫙 펴보인 그는 굉장히 악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건 바로 놀 때 화끈하게 노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 가서 인생에 남을 만큼 화끈하게 놀다 오라고!!"

""와아아아!!!!!!!!!""


우렁찬 외침이 몸을 저릿저릿하게 해 왔다. 역시, 명성이란 좋은 거야. 버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내려왔다. 마침 정박한 섬은 꽤나 놀이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붉은머리 해적단의 배에서도 다수가 내려 마을 내를 즐기러 들어갔다. 두 배가 함께 정박하여, 섬을 공유하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싸우는 것은 좋지만, 그들의 선장 앞에서 싸울 것. 해적에게 쌈박질을 하지 말라는 것도 우스웠다. 물론 선장이 없을땐 부선장이 선장 대리를 맡는 조건으로. 버기는 아까 공중에 떴을 때 봐둔 샹크스가 있는 지점으로 내려갔다. 제 멤버들이 배를 떠나 노는 것을 응원하는 샹크스를 보며 파티 좋아하는 건 그렇게도 닮았을 수가 없는데, 어째서 사이가 나쁜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는 버기였다. 샹크스는 하하 웃던 얼굴을 돌려 버기를 맞이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제 오른 손으로 버기를 홱 끌어당긴 샹크스는 휙휙 불어대는 제 크루 휘파람을 음악 삼아 버기를 질질끌고 갔다. 해변의 한쪽 끝에 작은 배가 놓여있었다. 


"뭐야, 이거 타고 가는거냐?"

"어쩔 수 없어. 배를 끌고 가기엔 해안이 좀 얕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다 나눌 건 아니잖아?"


찡긋 윙크를 하는 샹크스 탓에 버기가 입술을 삐죽일 때 샹크스가 언질도 없이 그를 배로 밀어넣었다. 물론 동강동강 열매 능력자로써 볼썽사납게 넘어지거나 하지 않을 듯 했지만, 버기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배 안으로 엉덩이부터 들어갔다. 


"네 녀석!! 화끈하게 죽여버린다!?"

"날 죽이면 보물 위치를 모르잖아?"


이건 정보지, 지도로 표시된 게 아니라고? 능글거리며 웃는 샹크스가 노를 가지고 배에 올라탔다. 짜증을 버럭버럭내며 엉덩이를 매만진 버기는 배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봐도 샹크스는 노를 저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하냐, 네놈 노 안 저어? 버기의 물음에 샹크스는 한쪽 팔을 드러냈다. 


"난 손이 하나라서, 이 손이 지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손이 멀쩡한 네가 저어야지."

"아주 뻔뻔스럽게 말하는 구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천하의 붉은 머리가, 노 조금 젓는다고 손을 못 쓸 일은 없다고도 생각했지만 버기는 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 감사. 냉큼 자리를 옮기며 버기에게 노 젓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준 샹크스는 망토를 입고 짜증나는 얼굴로 노를 젓는 버기를 올려다보며 실실 웃었다. 작은 배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갈랐다. 


도착한 곳은 그렇게 멀진 않지만, 그렇다고 수영으로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저 멀리 가물가물하게 신형이 보이는 저의 배를 확인한 버기는 갑자기 배가 기우뚱거리는 게 느껴졌다. 


"야, 빨간 머리. 이 배 좀 위험한 것…?"


문장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두어번 뒤뚱거리던 배는 어쩌지도 못할 상황에서 갑작스레 뒤집혔고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다에 빠졌다. 버기는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느껴졌다. 아이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보물을 찾으러 왔다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나…. 힘이 빠지고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는 데 강한 힘이 그를 끌어당겼다. 


"푸학학!!"

"버기, 괜찮아?"

"괜찮, 쿨럭- 괜찮아 보이냐…!"


해수에 닿아 힘조차 나지 않는 버기는 저를 끌어올린 샹크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마치 땅에 선 듯 올곧게 서서 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읏챠. 그의 손을 잡혀 있던 팔이 한 차례 크게 아프더니 샹크스의 팔이 제 등을 감싸고 버기를 부축했다. 


"야, 넌 팔 없는 놈한테 부축당하니까 좋냐? 좀 일어나라고."

"너… 어떻게 서 있지…?"

"어떻게라니, 여기 물이 허리까지만큼도 안 온다고. 일어서, 버기."


물만 나가면 되는 거였지? 샹크스가 중얼거리며 버기를 해안가로 끌어냈다. 해수에서 떨어지고 나서도 몸에 푹 젖은 옷이 달라붙은 탓일까, 영 힘을 못 찾는 버기를 위해 샹크스가 머릴 긁적이더니 어디선가 모닥불을 만들어선 버기를 불렀다. 일단 뭐가 됐든, 너 옷 부터 좀 말려야 겠는데? 버기가 흐느적거리면서 걸어왔다. 나이스 아이디어. 그는 조금 덥다 싶은 모닥불 앞에서 윗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이놈의 망토 때문에 더 몸이 무거운 듯 했다. 상반신 탈의를 해 버린 버기는 모닥불 근처에서 더위를 참으며 바지를 말렸고, 샹크스는 그런 버기를 보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근데 배는 어떻게 되는 거냐?"


버기가 배의 파편으로 보이는 것들을 가리키며 묻자 샹크스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암초 따위에 부딪혀서 뒤집힌 것 같은 배는 쓸 수 없는 상태로 망가져 있었다. 몰라, 나중에 구조신호 하지 뭐. 벤 정도는 나 여기 있는 거 아니까. 그의 무덤덤한 말에 버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벤이라면 믿을 만 하지. 그가 샹크스의 배에서 가장 탐나는 선원이었으니. 대충 마른 거 같으니 갈까? 샹크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옷은 그다지 마른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버기는 제 바지가 대충 말랐으니 샹크스 따위 어찌되든 좋았다. 그러지. 이 몸을 어서 보물에게 안내하라고. 버기 특유의 자존감이 듬뿍 묻어나는 말에 샹크스가 가볍게 웃었다. 그래, 어서 찾으러 가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무인도였다. 사람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길에서 그들은 야생동물마냥 낯선 길을 탐험했다. 중간중간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간 버기가 대충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전달하면 샹크스가 그걸 토대로 길을 터는 방식이었다. 특제 머기탄으로 날려버리자는 버기의 첫 의견은 어디에 있을 지 모를 보물 및 그 보물을 향해 난 길을 부셔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소거되었다. 한참동안 숲을 나아갔을까, 그들은 꽤나 맛나 보이는 과일을 발견하곤 독이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서로에게 먹이려 한바탕 난리를 쳤다. 결국 그 과일은 독이 없었고,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먹긴 했지만. 


샹크스가 예상하는 지점까지 1/2 정도 온 그들은 잠시 쉬기로 했다. 교대로 길을 튼 두 사람은 꽤나 피곤해져 있었다. 특히나 아까부터 하품을 연발하던 샹크스는 잠깐 멈추기만 해도 졸기 일쑤였고, 버기는 그가 없으면 안되므로 짜증을 버럭버럭 내며 그를 깨우곤 했다. 휴식을 정하고나서, 샹크스는 냉큼 바닥에 주저앉아 나무에 제 등을 기대고 자기 시작했다. 버기는 그런 그의 옆에 제 발을 잠시 두곤 공중에 떠서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제가 먼저 찾아서 나가면 샹크스 녀석과 나누지 않아도 되겠지! 그가 잠드는 동안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켈켈거리며 공중을 맴돌던 버기는 곧 그 자신이 어느 쪽 길로 왔었는지 감을 잃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곤 조금 침울해져서 도로 내려왔다. 키가 허리를 훌쩍 넘기고, 가끔은 키를 넘기는 식물들을 베어나가며 진전한 탓에 거꾸로 돌아간다면 아마 알겠지만 공중에서 보는 것으로 추측하기엔 이 숲, 아니 정글이 너무 넓었고 무성했다. 버기는 샹크스의 옆에 퍼져 앉았다. 입까지 벌리며 새액 새액 자는 꼴을 보아하니 며칠간 잠을 못 잔 것일까.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머리칼이었지만 그의 그을린 피부와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버기는 제 견습 동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자식도 입만 다물고 있으면 멀쩡하게 생긴 얼굴인데 말이야. 그는 때아닌 얼굴 품평을 시작했다. 영 산적같아 졌는걸? 원래도 그랬지만 예전 그의 모습은 조금 더 미청년인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그런 그가 어느새 떡 벌어진, 조금 위협스런 얼굴의 사내로 성장해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렸을 적 저와 투닥대던 밉상인, 어린 얼굴을 떠올리는 건 버기에게도 쉽다고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버기는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그의 붉은 머리가 그의 코를 간지럽히는 걸 보곤 킥킥거리며 웃었다. 잠결에도 간지러운지 코를 움찔대며 표정을 구기는 샹크스가 재미있어 근처 풀을 꺾어 샹크스의 코를 간지럽혔다. 입을 벌리고 자는 그의 입 속에 풀을 넣어보기도 하며 혼자 낄낄대던 버기는 제 코에 톡 하고 닿는 물기를 느꼈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그가 느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 양을 늘렸고, 곧 후두둑 소리가 나며 나뭇잎과 풀들을 두들겨댔다. 비 맞는데서 잠들면 안되지! 버기는 샹크스를 흔들어 깨워 그를 질질 끌곤 오던 길에 있던 커다란 나뭇잎의 식물 아래로 몸을 숨겼다. 커다란, 아니 거대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그 식물은 한 장의 잎으로도 두 사람을 충분히 가리고도 남았다. 


"덕분에 화끈하게 살았다."


버기가 샹크스를 바닥에 내팽겨쳤고, 끌려오던 도중에 깬 샹크스는 잠이 덜 깬 눈을 껌뻑거리며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 뭐야. 그건가, 스콜? 샹크스의 납득한 듯한 말에 버기가 스콜? 하고 되물었다. 응, 스콜. 샹크스는 그의 되물음의 의도를 잠시 파악하는 듯 하더니 비웃는 듯한 얼굴로 시비를 걸어왔다. 너 스콜 모르는 거 아니지? 그의 전매특허인 버기 짜증 불러일으키는 표정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난 정글 따위 모른다고! 그거야 항해사가 알면 되지!! 빽빽거리며 불만있냐고 흥분하는 버기를 계속 놀리며 샹크스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짧은 시간내에 다량의 비가 오는 현상을 말해. 아마 금방 그치겠지. 그의 말에 버기가 툴툴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샹크스가 몸을 일으키려다 윽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뭐야?"

"아, 여기 왠진 모르겠지만 피가 나서 말이야."


샹크스가 제 손등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아마 버기가 끌고 오다 아무렇게나 내팽겨친 탓에 근처에 돌이나 풀에 긁힌 거겠지. 버기는 딴청을 피우며 비도 많이 오는데 씻던가? 라며 비아냥댔다. 앗, 그러고보니. 샹크스가 무언갈 깨달았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 말라고, 이 바보 자식아. 비 들어온단 말이야!"


계속 내리니까 추워 죽겠구만. 버기의 투덜거림이 곧 조금 축축하지만 따뜻한 것으로 덮혔다. 음? 버기가 위를 올려보자 샹크스가 그의 망토를 벗어 버기에게 걸쳐준 것이었다. 뭐냐? 버기가 제 몸에 걸쳐진 망토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들며 묻자 샹크스는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서운한데? 난 네가 추울까봐 벗어준 거라고?"

"피, 필요없거든?!"

"이빨 딱딱 부딪히며 그런 말 해도 아무 의미가 없거든, 버기?"


그, 그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네가 줬으니 친절한 이 몸이 받아주지! 버기는 냉큼 샹크스의 망토를 둘둘 감았다. 아까 바닷물에 빠진 탓에 조금 젖어있긴 했지만 샹크스의 체온으로 말랐는지 데워졌는지 조금 뜨뜻했다. 


스콜은 생각보다 그렇게 금방 멎지는 않았다. 아까 샹크스의 망토를 안 받았으면 어떻게 됐었을까? 버기는 제 맨몸의 상체 위에 그의 망토를 조금 더 꼭꼭 덮으며 잎사귀 바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다. 


"야, 빨간머리. 너 아까 피난 건 괜찮냐?"

"아, 어어. 이런 건 침바르면 낫지. 그러는 너야말로 다친덴 없냐?"

"이 몸이 다칠 리가 있냐!"


가슴을 팡팡 치는 버기를 돌아본 샹크스가 빙긋 웃었다. 갑자기 그가 가까워지는 듯 하더니 버기의 조금 식은 볼에 따뜻하고 축축한, 마치 샹크스의 망토 같은 것이 닿았다. 그것보단 조금 더 높은 온도일까. 멍 하니 무언가를 당해버린 버기가 넋을 빼고 샹크스를 쳐다보자 샹크스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거기, 다쳤는 거 같아서 침 발라뒀어. 고맙지? 뻔뻔하게 감사를 요구하는 샹크스를 보며 버기가 얼굴을 발갛게 달아올리며 악악댔다. 


"옷도 벗어주고, 상처도 치료해주는 이런 친절한 적이 어디있냐?"


버기의 악담을 한귀로 흘리며 샹크스가 허허 웃었다. 버기의 악담이야 익숙했고, 오히려 없으니 그리울 지경이었으니까. 야, 옷 필요 없거든? 네놈도 셔츠 젖어서 안이 다 비치는데 뭔 양보야, 양보는! 필요없어! 바락바락 지르는 악에 목소리가 상하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버기는 악을 써댔다. 하하, 버기. 그렇게 소리지르면 목 쉰다고? 샹크스는 빙글빙글 웃었다. 


"그보다 말인데, 내 속살이 비쳐서 만지고 싶은거야? 굉장히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는 걸?"

"누, 누가!!"


버기가 버럭 화를 냈다. 누가 네놈 속살 따윌 궁금해 한다고 해!? 망토나 도로 가져가시지! 화를 내면서도 끝까지 망토를 벗어주지 않는 버기를 보며 샹크스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왜? 난 네 속살 궁금한데. 넌 아닌가봐?"

"…? 야, 다-당연하지! 이 몸은 말이야…!"


말을 더듬는 버기의 앞으로 샹크스의 얼굴이 들이닥쳤다. 바닷물과 비에 젖은 샹크스의 얼굴은 꽤나 퇴폐적인 미를 자랑했다. 미소년이 미쳥년, 미중년으로 자란다던가. 버기는 산적같은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그의 참을 수 없는 퇴폐미에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응, 이 몸은, 뭐? 날 좋아한다고?"


바닷물에, 비에, 그리고 샹크스에 젖은 웃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농염했고, 버기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겨우 열어 더듬거리며 내뱉은 말은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누, 누가 네 녀석 따윌!"


그 말에 단 하나의 상처도 받지 않은 듯한 샹크스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고 그 얼굴이 가까워짐에 따라 버기는 고였던 침을 꼴깍, 하고 삼켰다. 침, 맛있게 삼키네. 샹크스의 말은 귀가 아니라 입술로 들려왔다. 입김이 닿는 거리에서 버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말캉한 것이 입술에 닿아왔다. 


키스는 하는 사람의 성격을 닮은 것일까. 구렁이가 꿈틀대듯 유연하게 버기의 안으로 밀고 들어온 샹크스는 그의 뒷목을 한 손으로 붙든 채 고개를 틀어 깊게 파고들었다. 샹크스의 느낌 답게, 끈적하고 어른스러운. 그러면서도 퇴폐적이고 야성적인 키스는 버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떨어져나갔다. 얼굴 색이 코랑 비슷해 졌는데? 샹크스의 장난 어린 말에도 대답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닦은 버기가 그를 노려보며 헉헉댔다. 


"너… 키스 왜 이렇게 화끈하게 잘하냐?"

"왜? 그래서 맘에 들었어?"


아니-.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키스는 끝내주게 했지만, 그게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버기는 제 마음에서 샘솟는 이 짜증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젠장. 잘해서 짜증나. 툭 하고 내뱉은 말에 샹크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거, 질투야?"

"이 몸은 질투 같은 거 안 한다고!!"


어이어이, 태클 걸 곳이 거기인거야? 조금 풀린듯한 웃음을 짓는 샹크스를 바로 마주보지 못하는 버기가 한 손으로 얼굴을 틀어쥐곤 고개를 돌렸다. 말하고 나서야 눈치챈 것 같았다, 자신의 감정에. 이건 질투가 맞았다. 답지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리자 뒤에서 포근하게 안아오는 품이 있었다. 


"뭐야, 이거 치…!"

"다 널 줄게."


뭐? 버기가 되물었다. 그의 뒤에서 안아오는 손을, 품을 뿌리치지 못한 채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더 꼬옥 안아오는 팔. 버기는 아차 싶었지만 어깨 즈음에서 들려오는 샹크스의 약간, 어리광 부리는 듯한 말투는 다분히 오랫만이었고 늘 밉상 이던 녀석의 별 없는 귀여운 점이었기에 가만히 두었다. 샹크스는 버기의 어깨에서 턱을 꿈지럭대며 말을 이었다. 


"니가 맘에 들어하는 내 키스실력이고 뭐고, 다 줄게. 너한테. 나를 온전히."


빗방울이 잎사귀를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톡, 투욱 툭. 꽤나 묵직한 빗방울이 서너번 떨어진 후일까. 버기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 몸이 그런 거 준다고 좋아할 줄 알면 화끈하게 오산이라고. 샹크스는 제 품에 담긴 버기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응, 알아. 그래도 주고 싶은 걸. 샹크스의 나지막한 말이 잎사귀의 바람과 함께 들어왔다. 버기의 몸이 조금 꿈틀거렸다. 그의 귀가 빨갛게, 코 마냥 붉어져 있었다. 그의 뒷통수까지 귀여워 샹크스는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젠장… 보물 못 찾으면 너도 화끈하게 거절당할 줄 알라고."

"응응, 그러자."


샹크스가 쪽 하고 버기의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에 키스했다. 허락 없이 그런데 키스하면 죽여버릴 테니까…! 버기의 수줍은 듯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샹크스가 팔을 풀고 버기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거, 허락 맡으면 해도 된단 얘기지? 제 좋을대로 해석한 샹크스는 고개를 푹 숙인채 빨갛게 익어가는 버기를 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시끄러워. 


버기의 투정과 같은 말이 내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그럼 거절당하기 싫으니까 보물이나 찾으러 가 볼까?"

"어이어이, 이유가 화끈하게 불순한데?"


좋은 게 좋은거지. 샹크스가 몸을 일으키는 버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샹크스의 미소가 정글 속으로 비쳐들어오는 개인 하늘의 햇살과 같이 반짝였다. 뭐, 나쁘지 않을지도. 버기는 그의 굳은살 박힌 손을 꽉 잡고 일어났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정글, 그 위에 무지개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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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님@croyance_F  리퀘!! 졸린 와중에 써서 제대로 썼는지도 잘 모르겠는... 눈을 반쯤 감고 썼지만ㅋㅋㅋㅋㅋㅋㅋ 


총 3013자 입니다! 기준은 젠라이터... 왜냠 제가 글자수 세는게 지금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


꾸금꾸금을 써달라던 팡님의 은근한 부탁은 못 들어 드렸군요~ 아쉽아쉽~ 생각보다 진도가 넘 느려서 걍 관뒀읍니다 ㅋㅋ 떡씬까지 쓰면 아마 1만자는 넘기지 않을까...(글자조절고자임


샹버기는 처음이라 많이 쑥스럽군요. 저도 좋아하는 커플링입니다 헤헤. 덕분에 써봐서 넘 기뻐요!



+사담) 그리구 뭣보다 우리 징베 오야붕 와주어서 너무너무 기쁜 요즘♡ 행복을 담아 썼읍니다!  오야붕 저랑 오래오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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