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항해사. 지금 항로에서 약간만 북쪽으로 틀지."

"하? 뭐라는 거야. 당신, 뭔갈 알아?"

 

어슴푸레하게 해가 내려앉은 저녁. 크로커다일이 나미의 옆에서 뻑뻑 시가를 피워대고 있었다. 한 배의 항해사를 맡고있는 나미가 발끈하자 로빈이 후후 웃으며 미간 찌푸린 크로커다일 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의 말은 믿을만해, 나미. 별을 읽을 줄 알거든."

"별을 읽어…?"

"쿠오오오! 크로커다일!!! 뭐하냐!!"

 

후, 하고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크로커다일 옆으로 냉장고에서 훔쳤을 게 분명한 고기를 뜯으며 루피가 달려왔다. 그런 루피를 후라이팬을 들고 쫓아온 상디가 밤에도 아름다우시네요~ 라며 두 여자의 사이를 맴돌았다. 

 

"왜 그래, 나미? 문제있어?"

 

고기를 한입에 다 삼킨 루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런 루피를 보며 로빈이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미스터 제로는 밤하늘을 읽을 줄 알아. 그도 하루이틀 해적 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다르게 말하면 천문학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

"헤에~ 그랬단 말이야? 그럼 진작 도움 좀 받을걸!"

 

나미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물어볼 게 있으니, 시간을 내 달라고 애원하자 귀찮은 듯 담배연기를 내뿜는 크로커다일. 

 

"잠깐 기다려! 나 그렇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잠깐 기다려!!"

"로빈쨩~ 이런 밤하늘에 어울릴 저칼로리 디저트가 있는데 드시겠어요?"

"어머, 그럼 감사히 받도록 할까?"

 

나미가 급하게 해도를 가지러 방으로 달려가고, 로빈이 상디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가자 갑판에는 담배를 뻑뻑 피는 크로커다일과 루피만 남아있었다. 

 

"흐음, 너 별 볼 줄 알아?"

"…어느정도는 볼 줄 안다."

"선장들은 그런거도 할 줄 알아야해? 난 그런거 모르는데."

"별로. 내가 볼 줄 아니 상관없지 않나."

 

후우 하고 내뱉어지는 숨과 함께 하얀 담배연기가 밤하늘로 피어올랐다. 연기를 따라 루피가 고개를 올리자 크로커다일 또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드문드문 보이는, 그리고 어둑어둑한 구름이 번지는 하늘로 크로커다일의 담배연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슈우우웅~

하늘을 바라보던 루피가 갑자기 위로 팔을 뻗어 올렸다. 고무 팔이 길게 늘어나 배의 돛대를 휘감았고, 다른 팔이 크로커다일의 몸을 감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게 무슨… 밀짚모자!"

"히히힛, 여기가 우리 배에서 별에 가장 가깝잖아."

 

별 보는 거 나도 가르쳐줘. 칭얼대는 루피를 한심하게 쳐다본 크로커다일은 제 담배를 모래화시키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돛대라고 해서 별이랑 딱히 가까워 질 리가 없잖아, 멍청아. 

 

"저 앞에 보이는 제일 반짝이는 별 보이나. 저게…."

"푸에취!!"

 

밤 바다는 서늘했다. 당연 불어오는 바람 또한 차가웠고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인 루피에게 추운 건 당연지사. 

 

"멍청하긴. 아까 입고있던 옷은 어쨌나."

"응? 아까 여기 올라오면서 떨어졌나봐."

 

코를 후비적대며 춥다고 크로커다일의 품으로 기어들어오는 루피를 그는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루피가 자리를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몸을 조금 움직여주었다. 크로커다일의 다리 위에 앉은 루피가 털옷을 감싸며 코를 훌쩍이자 그는 담배가 땡기는 기분이었다. 

 

제 몸에 닿는 루피의 맨살은 평소보다 조금 높은 듯 했다. 몰캉거리는 살이 손에 닿자 크로커다일의 입에 미소가 달렸다. 

 

"정말 별 보는거 배울거냐, 루피."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의 크로커다일을 바라보며 시시싯 웃는 루피. 밀짚모자를 벗더니 크로커다일의 품에 폭 안겨들었다. 그의 체향이 확 풍겨 올라왔다. 크로커다일이 그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아니? 그냥 이렇게 있는 게 더 좋은걸. 히히히."

"…바보같긴."

 

더 이상 밤바람이 차지 않았다. 옷 안에서 한 팔로 크로커다일을 휘감은 루피와 그런 루피를 안고 앉은 크로커다일. 두 사람은 밤 늦도록 갑판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다른 애들)

 

"우솝? 너 왜 내려온거냐?"

 

조로가 역기를 두 손가락으로 들어올리며 엉금엉금 선실로 들어오는 그를 향해 묻자, 우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그게, 지금 선실에 들어오지 않으면 죽는 병이……."

"뭐야, 우솝! 너 왜 여기있어?"

 

책을 가지고 들어오던 쵸파도, 그 뒤를 따라오던 프랑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감시탑에 가면 하루종일 얼굴에 종기가 나는 지병이 있다고!"

"에에엑!??"

 

남자 방에서 우솝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간 쵸파와 그걸 속냐며 놀리는 조로와 프랑키. 그리고 그 방 한켠에서 깜빡거리던 눈과 귀가 사라졌다. 

 

 

 

 

"로빈, 무슨 일이야?"

 

상디와 함께 티 타임을 즐기던 나미가 로빈의 미묘한 웃음을 보며 물었다. 

 

"아아, 선장과 크로커다일이 어디갔는지 알겠어서."

"루피 녀석이야 뭐, 배 어디엔가 있을거고, 크로커다일은 왜?"

 

상디가 새로운 과자를 내놓으며 로빈을 바라보자 로빈이 후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우솝이 감시탑에서 내려왔나봐. 지금 감시탑에 가면 죽는 병이라는걸?"

"아……."

"뭐야, 난 또 뭐라고. 그래 둘이 깨 볶으라지."

 

이제야 알아챘다는 듯한 상디의 감탄사와 어깨를 으쓱하는 나미. 저쪽 방에서도 이제야 눈치챘는지 에엑-! 이라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조로네도 알았나 보네. 로빈의 웃음에 마침 티타임을 즐기러 들어오던 브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죠, 여러분?"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야."

"그럼 즐겁게 야밤의 나미씨 팬티를 보여주시는 건…?"

"할까보냐!!!"

 

 

 

 

--------------------

 

모르겠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할 지 모르겠다. ㅋㅎㅋ

 

천문학자인 크로커다일이 쓰고싶어서 연성.

그리고 뭣보다 코코네코님의 크로커다일이 넘 이뻐서 연성을 해야했습니다. 

네.....

 

몰라 마무리 뿅.

 

 

 

 

 

 

 

 

크로커다일(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빠져나갈수없는 미로 / 눈도 못마주치면서 / 물수건 kr.shindanmaker.com/302638

 

 

 

 

"내 앞에서 꺼져라, 밀짚모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매몰차게 돌아서서 말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좀 서먹서먹하게 굴더니 결국 오늘 터진건가. 루피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 연인은 너무 많은 걸 생각해서 탈이었다. 팔을 길게 늘여 크로커다일의 어깨를 붙잡고 그의 등에 고목나무 매미마냥 대롱대롱 매달린 루피는 곧 제 손아귀에서 사라지는 그를 느꼈다. 

 

"크로커다일! 뭐하는 거야!!"

"꺼지라고 말했다. 이제 너랑 하는 이 멍청한 놀이도 슬슬 지겹다고."

"뭐…? 멍청한 놀이?"

 

그의 신형이 네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루피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매일 보고, 매일 달려들던 그의 어깨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루피는 다시한번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그대로 크로커다일의 몸을 통과했고 그의 어깨너머에서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정도 놀아주면 만족해야지. 언제까지 나같은 남자가 네놈과 어울려 줄 거라 생각했나.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라, 꼬맹아."

"……."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그만 꺼져. 다시 만날 땐 죽일거다."

 

루피는 가만히 그의 등을 올려다보았다. 크로커다일. 그가 제게 등을 향한채 서 있는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의 등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와의 체격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체구의 차이가 짐짓 화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멀어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해적왕을 꿈꾸는 목표만큼이나 확고했고, 진지했다. 

 

"크로커다일."

"……."

"날 봐, 크로커다일."

"…웃기는군."

"지금 당장."

 

평소 진지한 루피의 말에는 두말없이 따라주었던 것과 달리, 크로커다일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그의 머리위로 하얀 구름이 생기고 있었다. 

 

루피는 주먹을 꽉 쥐고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 또한 루피의 움직임을 눈치채곤 멀어지려 했으나 그보다 루피가 더 빨랐다. 루피의 길게 늘어난 두 손이 크로커다일의 볼을 움켜쥐었고, 그가 저를 보도록 얼굴을 끌어내렸다. 루피의 손에 잡힌 크로커다일의 볼이 모래로 바스러지지 않았다. 

 

"이것 봐."

 

앳띤, 그러나 진지한 목소리가 둘 사이를 맴돌았다. 루피의 두 손 가득 크로커다일의 얼굴이 담겼다. 

 

"이렇게 눈도 못 마주치면서."

 

루피의 손에 의해 아래로 향한 그의 얼굴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미동도 하지 않고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그를 보며 루피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 바보가. 

거기서 네가 울면 어떡해.

 

쉴새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루피의 팔, 볼, 발등까지 적셨다. 담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 입술을 앙다물고 꾹꾹 울음소리를 참는 크로커다일의 볼을 쓰다듬던 루피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이 바보야. 이렇게 니가 물을 만들어내곤 나를 어떻게 피한다는 거야."

"…욱…."

"이것 봐. 너 때문에 물수건이 됐잖아. 울보야."

 

이렇게 울 거면 왜 그런 모진 말을 했어. 감당도 못하면서.

눈물로 흠뻑 젖은 손수건을 잠시 바라보던 루피가 그것을 곧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다시 한번 이렇게 쓸데없이 눈물흘리면 진짜 날려버릴거야."

"…밀짚모자…."

"너 진짜 바보구나."

"……."

"너 좋아해 나도. 니가 나 좋아하는 만큼."

"…루피……."

"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 바보 악어야."

 

화내지 않아. 탓하지 않아. 이제 괜찮아.

그냥 지금처럼만 내 옆에 있어.

 

또다시 흘러넘치는 연인의 눈물을 보고 루피는 씨익 웃었다. 

 

"아~ 악어쨩, 오늘도 짠맛이야?"

 

흐려진 시야로 들어오는 미소짓는 얼굴. 크로커다일은 눈을 깜빡여 저와 그 사이를 방해하는 액체를 떨궜다.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미로였다. 결단코 빠져나갈 수 없는 유연하면서도 강한 미로. 

자신은 평생 이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 싶었다. 

크로커다일의 눈물젖은 얼굴에서 작은 미소가 피어나고, 둘의 입술이 가볍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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눼엥.

'눈도 못마주치면서'에서 필이 빡 꽂힌 쪽글입니다. 

로커다일이 알라바스타에서 루피 궤뚫은 거 때문에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는 느낌이랄까, 그런 걸 생각해 봤습니다.

루크로 일본버젼은 고무와니라고 합니다만 고무는 고무요, 와니는 악어라는 뜻인데 루피가 와니와니~! 하고 부르는 걸 표현을 못해서 슬픈... 악어라고 하면 뭔가 어색해!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악어쨩으로 대신...!!

 

루크로 연성이 없으니 내가 연성한다...! 시부렁


졸려죽겠지만 썼다. 장하다 나!! 오늘 두개나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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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악산의 산적두목인 유스타스 키드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제 앞에 흐트러진 자세로 쓰러져 있는 말간 선비의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이 평소에 남색에 관심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선비의 귀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느끼고 키드는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에도 괄괄한 성정에 잔혹하기 그지없는 그를 잘 알고있던 부하들은 벌벌 떨며 최대한 그와 멀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저... 두목, 그러시면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두고 오는게....?"

 

한 부하가 용기내어 말을 건넸으나 돌아오는 건 흉흉한 살기가 담긴 눈빛. 오줌을 지릴 듯한 살기에 제 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부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멍청한 놈! 이 야밤에 도로 거기에 어떻게 두고 온단 말이냐! 두고 온다 쳐도 이 유약한 사내가 들짐승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하냐! 머리란 게 달렸으면 생각을 하란 말이야!!"

 

그럼 애초에 기절시키지를 말던지... 부하들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이미 저지른 일. 키드는 다시 머리를 싸맸다. 

 

'그냥 죽일까?'

 

평소에 살인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그러나 키드, 그는 자신 나름의 정의가 있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자를 제거할 것. 그 외에 자신의 앞길을 막지 않을 법한 이들에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절한 선비는 어딜 봐도 자신을 피곤하게 할 자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사나이의 인생이 그리 순탄히 나갈 리는 없는 법. 키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선비를 죽이려 칼을 집어들었다. 

 

그 때였다. 미동도 없던 선비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목을 내려치려던 키드는 칼을 집은 상태에서 쩡 하니 얼어붙었다. 선비는 조금 퀭한 듯한 눈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자 그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여긴...?"

 

달콤한 중저음. 키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창백한 안색에 퀭하지만 어딘가 매력적인 눈. 도무지 그런 음색이 나오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에 갑작스러운 음성에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고맙소. 이런, 왜 이렇게 목이 아픈건지..."

 

키드는 선비가 몸을 일으키려는 걸 돕고있는 자신을 깨닫곤 빠르게 손을 빼었다. 목이 뻐근하다며 목을 문지르는데 차마 자신이 수도로 내리쳤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가 없었다. 뒷목을 주무르는 탓에 소맷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얀 팔뚝. 키드는 다시한번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ㅈ, 저, 저, 그러니까 길에 쓰러져 있어서...."

 

키드의 입에서 더듬더듬 거짓말이 새어나왔다. 누가 봐도 알아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선비는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이다. 그대들은 참으로 다정하군요. 소생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이다."

"어, 그런, 음... 뭐...."

 

키드는 볼을 긁적였다. 은혜라 하기엔... 그래 뭐든 어쩔텐가. 알아서 좋은 착각을 해주니 고마울 따름. 그냥 이대로 아무 탈 없이 고이 돌아가주면 참 좋을텐데. 하지만 그냥 보내기엔 자꾸 눈에 밟힐 듯 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키드의 심중을 읽은 듯 한 녀석이 나서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양반 나으리... 아니, 선비님은 어딜 가시던 중이였습니까?"

"아, 저는 오늘 혼약을 위해 신부의 집에 가던 중이었습니다만....."

"안돼!!!"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 숨죽여 웅크리는 부하들과 키드를 돌아보는 선비. 키드는 제가 생각해도 부끄러웠는지 손으로 턱을 괴곤 고개를 돌렸다. 선비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런데, 이미 늦어버린 듯 하군요. 오늘은 이 곳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채로 안내해라."

 

키드의 낮게 읖조리는 말에 부하 한명이 발빠르게 나서 선비를 별채로 안내했다. 선비는 허리를 가볍게 숙이더니 남빛 옷자락을 휘날리며 사내를 따라갔다. 

 

 

* * *

 

 

유스타스 키드. 그는 일생일대의 고민거리에 부딪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해가 뜨고, 선비가 이대로 신부의 집에 간다면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원체 단순하게 생각하는 파라 머리를 쓰려니 오히려 짜증이 솟구쳤다. 칼을 뽑아 주변의 수풀에 화풀이를 하는 찰나, 뒤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늦은 밤인데 주무시지 아니하시는 군요.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서, 선비..?"

 

그 일줄은 짐작도 못했기에 놀라서 앉아있던 바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졸지에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민망해서 벌개진 얼굴을 감추려 마른세수를 했다. 조금 진정이 되어 고개를 들자 그의 코앞에 선비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다시 놀란 그가 몸을 들썩이자 그가 흥흥 거리며 웃었다. 

 

"트라팔가 로우 라고 합니다. 그대의 이름은?"

"유, 유스타스 키드라고 한다...합니다."

"그렇군요."

 

로우는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흙이 묻은 키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려 하는 키드를 끈질기게 붙잡아 흙먼지를 닦아낸 그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앞에 도로 섰다.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라는 그의 물음에 키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냥 별을 보고 있었다고 지껄이곤 금세 후회했다. 원래 배운 자들은 각종 지식에 빠삭하다고, 그 또한 그러할 것이므로. 

 

그러나 생각 외로, 로우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감탄이 담겨있었다. 

 

"대단하시군요! 그런 낭만적인 분이실 줄이야, 이런 산골에 계시기 아까운 분이군요."

"아니, 뭐... 그렇지는... 이거라도 드시겠습니까?"

"겸손하시기까지!"

 

키드는 뭔가 민망해져 제가 먹던 다과를 건넸다. 빙그레 웃으며 그것을 받아드는 로우를 보고 제가 만들어 맛이 없을지도 모른다며 꿍얼대는 키드의 위로 다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굉장히 맛있소이다! 이걸 직접 만드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어... 그렇소..만."

"세상에, 요리 솜씨가 대단합니다!!"

 

계쏙 터져나오는 감탄에 키드는 머쓱해져 머리만 벅벅 긁으며 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그가 속이 훤히 비치는 흰 속의만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로우를 처음으로 제대로 쳐다보았다는 것을 깨달은 키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 윗옷을 벗어 그의 몸에 둘러주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한 로우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밤이고, 추울까...봐..."

 

뭔 말이든 해야겠고, 할 말은 없어서 주절주절 나오는 대로 뱉고나니 다시 로우를 쳐다보기가 부끄러워졌다. 털썩 다시 바윗돌 위에 주저앉는데, 로우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유스타스여, 그대는 낭만적인 사람인데다가 겸손하며, 요리실력도 있고 마음씀씀이도 다정하군요."

".....아니 뭐..."

"소생이 찾던 신붓감은 여기 있는 것 같소."

"???"

 

로우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그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의 하얗지만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이 그의 턱을 감싸고 치켜올렸다. 

 

"나의 신부가 되어주겠소?"

 

 

 

* * *

 

 

 

"두목!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건 말도 안됩니다! 두목이 혼인을 한다면 저희가 모를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그만두실 필요가...!"

 

부하들의 강력한 반발이 빗발쳤지만 키드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그러마 라고 대답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아마 어제로 다시 시간을 돌리는 경우가 있어도 자신은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았기에. 

 

그러나 부하들에게 설명을 하지 못하겠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신부'며, 유약한 그 선비가 '신랑'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낯뜨겁지 않을까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왕왕거리며 시끄럽게 구는 놈들이 신경에 안 거슬릴 리가 없었다. 

 

"아, 좀 닥쳐!!!! 모가지가 몸이랑 강제 이별하고 싶은 놈들만 떠들어!!"

"이런, 나의 신부는 지도력도 있군요."

""뭐???!!!!!!!""

 

망했다. 

키드는 남빛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그를 보고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마른 세수를 해댔다. 이런 식으로 말할 예정은 아니었는데... 의자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온 로우는 다정한 손길로 키드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죄송하지만 유스타스 키드는 제 신부로 받아가겠습니다."

"장난하는거 아닙니다, 선비님."

"뭐라고? 장난하나, 양반 나으리?"

"자꾸 이렇게 굴면 재미없습니다."

 

걸걸한 부하들의 반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로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 신부님의 부하 분들께는 평생 먹고 살 자산과 아리따운 신부를 소개시켜 드리지요."

"어이쿠, 선비님. 제가 형수님, 아니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댁이 어디시라구요? 저희가 모셔가겠습니다."

 

로우가 키드의 어깨를 한번 꽉 움켜쥐며 피식 웃었다. 

 

"봤죠? 이러면 모든 것은 해결됐습니다. 그러니 어서 저의 집으로 가시지요, 나의 신부님."

"그 신부님....이란 표현, 그만 둬 주시면 안됩니까..."

 

제발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키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본 순간 그를 기절시킨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이후론...

 

"아무래도 이게 사랑이라는 건가보다..."

 

소란스러움에 묻힌 키드의 말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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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게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시부럴

한문단 정도로 쓰려 했는데.... 

 

로우키드커플 조선시대판으로 쪄봤어여.

수고했어 내 손가락 ㅎㅅㅎ

 

 

 

 

 

 

오다 고을에는 아름답고 도도하기로 유명한 선비가 하나 살았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핵심을 찌르는 화술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고을의 명망높은 사대부들과도 교류가 많았다. 

창백한 얼굴색과 달리 몸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그는 독특한 얼룩무늬의 갓을 쓰고 다녔는데, 그의 눈길을 한번이라도 받고자 모든 아낙네들 사이에서 얼룩무늬의 소지품이 대 유행을 탔다. 그의 지식을 흠모하는 이들또한 그를 찾아 배움을 청했고 갓의 흰 무늬라 하여 그를 백반선비라 부르며 따르는 이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백반선비, 트라팔가 로우는 무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길을 홀로 걷다 어느덧 머나먼 마을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런, 눈치채지 못했군."

혀를 차며 다시 마을 쪽을 향해 몸을 돌리는데 눈에 사람의 인영이 비쳤다. 

"여! 이봐~ 점박이 갓 쓴 너!"

다소 경망스러운 듯한 어투였지만 제 상징으로 취급되는 갓을 부르는 걸 보니 저를 부르는 것일 터. 로우는 갓을 올리며 느긋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가깝지는 않다 싶은 거리에서 총총걸음으로 뛰어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그는 갓을 쓴 것으로 보아 양반임에는 분명했으나 약간 비뚤어진 갓과 정리되지 않은 고름을 보며 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본인을 부르는 것입니까."
"그래, 너!"

헥헥거리고 달려온 이는 누가봐도 갓 성인이 된 듯한 풋풋한 사내였다. 상투는 올렸으나 수염자국 하나 없는 보송보송한 그의 턱에 잠깐 시선을 둔 로우는 눈을 돌리다 저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내의 눈과 마주쳤다. 

"너! 여기 사냐?"
"이 곳에 살긴 합니다만."

'성명을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건 어느나라 양반의 작태냐.'고 꾸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았지만 그것보단 눈 앞의 사내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로우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그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결정!! 너 오늘 밤에 내 수청을 들어!"
"무, 뭣?!"

티없이 웃는 사내의 말과 그에 뒤이어 따라오는 갑작스런 포옹에는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그도 말을 버벅거릴 정도로 놀랐다. 어안이 벙벙하여 그를 떼어내지도 못하고 벙 쪄 있자, 고개를 올려든 사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반복했다. 

"너, 맘에 든다고. 오늘 밤에 나의 수청을 들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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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따윈 없으니 끝. 
루피는 순수한 걸까요 순수한 척 하는 걸까요(므흣)
갑자기 루로우가 쓰고싶어져서<< 이게다 선비때무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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