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악산의 산적두목인 유스타스 키드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제 앞에 흐트러진 자세로 쓰러져 있는 말간 선비의 처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이 평소에 남색에 관심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선비의 귀에서 목덜미로 이어지는 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느끼고 키드는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에도 괄괄한 성정에 잔혹하기 그지없는 그를 잘 알고있던 부하들은 벌벌 떨며 최대한 그와 멀어지려 애쓰고 있었다.
"저... 두목, 그러시면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두고 오는게....?"
한 부하가 용기내어 말을 건넸으나 돌아오는 건 흉흉한 살기가 담긴 눈빛. 오줌을 지릴 듯한 살기에 제 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부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멍청한 놈! 이 야밤에 도로 거기에 어떻게 두고 온단 말이냐! 두고 온다 쳐도 이 유약한 사내가 들짐승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하냐! 머리란 게 달렸으면 생각을 하란 말이야!!"
그럼 애초에 기절시키지를 말던지... 부하들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이미 저지른 일. 키드는 다시 머리를 싸맸다.
'그냥 죽일까?'
평소에 살인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그러나 키드, 그는 자신 나름의 정의가 있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자를 제거할 것. 그 외에 자신의 앞길을 막지 않을 법한 이들에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절한 선비는 어딜 봐도 자신을 피곤하게 할 자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사나이의 인생이 그리 순탄히 나갈 리는 없는 법. 키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선비를 죽이려 칼을 집어들었다.
그 때였다. 미동도 없던 선비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목을 내려치려던 키드는 칼을 집은 상태에서 쩡 하니 얼어붙었다. 선비는 조금 퀭한 듯한 눈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자 그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여긴...?"
달콤한 중저음. 키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창백한 안색에 퀭하지만 어딘가 매력적인 눈. 도무지 그런 음색이 나오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에 갑작스러운 음성에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고맙소. 이런, 왜 이렇게 목이 아픈건지..."
키드는 선비가 몸을 일으키려는 걸 돕고있는 자신을 깨닫곤 빠르게 손을 빼었다. 목이 뻐근하다며 목을 문지르는데 차마 자신이 수도로 내리쳤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가 없었다. 뒷목을 주무르는 탓에 소맷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얀 팔뚝. 키드는 다시한번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ㅈ, 저, 저, 그러니까 길에 쓰러져 있어서...."
키드의 입에서 더듬더듬 거짓말이 새어나왔다. 누가 봐도 알아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선비는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이다. 그대들은 참으로 다정하군요. 소생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이다."
"어, 그런, 음... 뭐...."
키드는 볼을 긁적였다. 은혜라 하기엔... 그래 뭐든 어쩔텐가. 알아서 좋은 착각을 해주니 고마울 따름. 그냥 이대로 아무 탈 없이 고이 돌아가주면 참 좋을텐데. 하지만 그냥 보내기엔 자꾸 눈에 밟힐 듯 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키드의 심중을 읽은 듯 한 녀석이 나서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양반 나으리... 아니, 선비님은 어딜 가시던 중이였습니까?"
"아, 저는 오늘 혼약을 위해 신부의 집에 가던 중이었습니다만....."
"안돼!!!"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어 숨죽여 웅크리는 부하들과 키드를 돌아보는 선비. 키드는 제가 생각해도 부끄러웠는지 손으로 턱을 괴곤 고개를 돌렸다. 선비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런데, 이미 늦어버린 듯 하군요. 오늘은 이 곳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채로 안내해라."
키드의 낮게 읖조리는 말에 부하 한명이 발빠르게 나서 선비를 별채로 안내했다. 선비는 허리를 가볍게 숙이더니 남빛 옷자락을 휘날리며 사내를 따라갔다.
* * *
유스타스 키드. 그는 일생일대의 고민거리에 부딪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해가 뜨고, 선비가 이대로 신부의 집에 간다면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원체 단순하게 생각하는 파라 머리를 쓰려니 오히려 짜증이 솟구쳤다. 칼을 뽑아 주변의 수풀에 화풀이를 하는 찰나, 뒤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늦은 밤인데 주무시지 아니하시는 군요.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서, 선비..?"
그 일줄은 짐작도 못했기에 놀라서 앉아있던 바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졸지에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민망해서 벌개진 얼굴을 감추려 마른세수를 했다. 조금 진정이 되어 고개를 들자 그의 코앞에 선비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다시 놀란 그가 몸을 들썩이자 그가 흥흥 거리며 웃었다.
"트라팔가 로우 라고 합니다. 그대의 이름은?"
"유, 유스타스 키드라고 한다...합니다."
"그렇군요."
로우는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흙이 묻은 키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려 하는 키드를 끈질기게 붙잡아 흙먼지를 닦아낸 그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앞에 도로 섰다.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라는 그의 물음에 키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냥 별을 보고 있었다고 지껄이곤 금세 후회했다. 원래 배운 자들은 각종 지식에 빠삭하다고, 그 또한 그러할 것이므로.
그러나 생각 외로, 로우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감탄이 담겨있었다.
"대단하시군요! 그런 낭만적인 분이실 줄이야, 이런 산골에 계시기 아까운 분이군요."
"아니, 뭐... 그렇지는... 이거라도 드시겠습니까?"
"겸손하시기까지!"
키드는 뭔가 민망해져 제가 먹던 다과를 건넸다. 빙그레 웃으며 그것을 받아드는 로우를 보고 제가 만들어 맛이 없을지도 모른다며 꿍얼대는 키드의 위로 다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굉장히 맛있소이다! 이걸 직접 만드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어... 그렇소..만."
"세상에, 요리 솜씨가 대단합니다!!"
계쏙 터져나오는 감탄에 키드는 머쓱해져 머리만 벅벅 긁으며 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그가 속이 훤히 비치는 흰 속의만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로우를 처음으로 제대로 쳐다보았다는 것을 깨달은 키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 윗옷을 벗어 그의 몸에 둘러주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한 로우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밤이고, 추울까...봐..."
뭔 말이든 해야겠고, 할 말은 없어서 주절주절 나오는 대로 뱉고나니 다시 로우를 쳐다보기가 부끄러워졌다. 털썩 다시 바윗돌 위에 주저앉는데, 로우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유스타스여, 그대는 낭만적인 사람인데다가 겸손하며, 요리실력도 있고 마음씀씀이도 다정하군요."
".....아니 뭐..."
"소생이 찾던 신붓감은 여기 있는 것 같소."
"???"
로우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그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의 하얗지만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이 그의 턱을 감싸고 치켜올렸다.
"나의 신부가 되어주겠소?"
* * *
"두목!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건 말도 안됩니다! 두목이 혼인을 한다면 저희가 모를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그만두실 필요가...!"
부하들의 강력한 반발이 빗발쳤지만 키드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그러마 라고 대답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아마 어제로 다시 시간을 돌리는 경우가 있어도 자신은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았기에.
그러나 부하들에게 설명을 하지 못하겠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신부'며, 유약한 그 선비가 '신랑'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낯뜨겁지 않을까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왕왕거리며 시끄럽게 구는 놈들이 신경에 안 거슬릴 리가 없었다.
"아, 좀 닥쳐!!!! 모가지가 몸이랑 강제 이별하고 싶은 놈들만 떠들어!!"
"이런, 나의 신부는 지도력도 있군요."
""뭐???!!!!!!!""
망했다.
키드는 남빛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그를 보고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마른 세수를 해댔다. 이런 식으로 말할 예정은 아니었는데... 의자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온 로우는 다정한 손길로 키드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죄송하지만 유스타스 키드는 제 신부로 받아가겠습니다."
"장난하는거 아닙니다, 선비님."
"뭐라고? 장난하나, 양반 나으리?"
"자꾸 이렇게 굴면 재미없습니다."
걸걸한 부하들의 반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로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 신부님의 부하 분들께는 평생 먹고 살 자산과 아리따운 신부를 소개시켜 드리지요."
"어이쿠, 선비님. 제가 형수님, 아니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댁이 어디시라구요? 저희가 모셔가겠습니다."
로우가 키드의 어깨를 한번 꽉 움켜쥐며 피식 웃었다.
"봤죠? 이러면 모든 것은 해결됐습니다. 그러니 어서 저의 집으로 가시지요, 나의 신부님."
"그 신부님....이란 표현, 그만 둬 주시면 안됩니까..."
제발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키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본 순간 그를 기절시킨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이후론...
"아무래도 이게 사랑이라는 건가보다..."
소란스러움에 묻힌 키드의 말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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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게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시부럴
한문단 정도로 쓰려 했는데....
로우키드커플 조선시대판으로 쪄봤어여.
수고했어 내 손가락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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